게으른 완벽주의자로 포장한 오만한 겁쟁이
내가 본 것 중 가장 세련된 독촉이었다.
판 벌이기 장인이지만 수습은 잘 못 하는 뒷심 약한 내게 '꾸준함'이라는 덕목은 오랜 아킬레스건이다. 그래서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나의 브런치 피드엔 작가 신청글로 제출했던 첫 글 홀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 신청 후 혹여나 안 될까 하는 걱정과 작가로 선정됐을 때의 은근한 기쁨, 마음껏 글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브런치에게 좋은 글로 보답하겠다는 호기는 이미 무색해졌다. '써야지, 써야지' 글감만 모아 두고 생각만 하며 미루다가 브런치의 세련된 독촉 덕에 그나마 이렇게 마음잡고 글을 쓰고 있다.
이토록 유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런저런 생각 후 '자만'으로 최종 결론을 지었다. 처음 내린 결론은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글쓰기라는 것이 아무래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라 완벽한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니 내가 감히 완벽을 논할 위인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람이 완벽할 수 있겠냐고 생각해왔으면서도 나에게는 대입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이면서 완벽해야 하는 사람, 흠을 보이면 안 되는 사람, 안 좋은 평가를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부여하고 엄격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저 비겁한 변명이 될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도 사치다. 오히려 완벽이라는 보기 좋은 핑계 뒤에 숨은 '오만한 겁쟁이'가 어울린다. 겁쟁이인 나는 완벽하지 않은 내가 인정이 안됐나 보다. 아니, 아직 그릇이 작아 완벽하지 못 한 나까지 인정을 못 해주나 보다. 글에 서투른 나도 나인데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니까 내가 아니라며 외면하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만 예뻐해 주며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자존이 아니라 확증편향을 가진 자만이었는데.
오케이, 이제는 인정.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고, 완벽을 핑계 삼아 도전하지도 않은 겁쟁이였다. 이제는 시도하지 않아 실패하지도 않는 겁쟁이보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실패 확률 0%인 전자보다 실패 확률 100%일지라도 후자가 더 멋져 보이지 않는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온통 실패해도 그게 더 멋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완벽이라는 상태는 내가 신이 되지 않는 이상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계속 도전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며 정제될 나의 모습은 완벽과 몇 발자국 정도는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처음부터 완성돼있던 완벽보다 분명 더 아름다울 것이다.
나의 글솜씨가 하루아침에 좋아져 당장 내일의 글이 오늘의 글보다 좋아지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개월 후의, 1년 후의 글은 오늘의 글보다 훨씬 좋아져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는 꾸준한 시도에 있다는 것도 이제는 더 깊이 알 것 같다.
그렇게 브런치의 격려처럼 꾸준함이 나의 약점이 아닌 재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 독자들에게 조금 더 잘 쓴 몇 개의 글만 보여주는 것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글을 통해 나의 글이 발전하는 과정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하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지. 번듯한 대기업 회사원보다 갓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근한 옆집 언니, 혹은 동생이 더 매력적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