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暗默知)

자전거로 배운 경험이라는 지식

by 산율

어머니의 그림 속에는 유독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핀 꽃, 따뜻해 보이는 집, 그리고 자전거입니다. 꽃과 나무 같은 자연은 그렇다 쳐도, 자전거가 어머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정작 저는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실 줄 아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언제 자전거를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전거는 누구나 당연하게 타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만약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분에게 안장의 높이를 맞추는 법, 발로 지면을 밀어 속도를 내는 법, 페달링의 원리를 상세히 적은 매뉴얼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여준다면, 곧장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해당 설명이나 영상은 자저거를 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자전거는 직접 올라타고 넘어지며 몸으로 익히는 '경험'의 영역입니다.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동영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오직 몸의 감각으로만 체득되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식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 말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는 많은 지식이 이와 같습니다. 지식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만, 그 지식이 삶 속에서 , 개인의 경험으로 치환될 때 의미가 확장되며, '앎'이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합니다. 지식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지식이 머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와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삶이란 터전에서 체화되지 않고, 경험되지 못한 지식은 힘이 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기술이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후 바둑이란 영역은 이미 기술이 기보를 대체한 지 오래된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막을 내린 CES에서는 복싱을 하고 쿵후를 하는 로봇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AI라는 기술은 모니터 브라우저를 벗어나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물리적 경험을 대체하려 합니다. 로봇은 인간의 동작을 학습하고 복제하며,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밀하게 그 기능을 수행해 나갈 거라 예상합니다.


CES의 장면을 보면서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복싱하는 로봇은 샌드백을 치면서 짜릿한 타격감, 시원함 같은 것을 느낄까? 쿵후를 하는 로봇은 그 어려운 동작을 하면서 기쁨 같은 희열을 느낄까? 아니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때려치우고 싶은 좌절감을 가질까? 로봇은 가장 효율적인 각도와 에너지를 계산해 움직임을 최적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 인간이라면 느끼는 벅찬 감동이나 짜증, 땀방울의 의미까지 학습할 수는 없을 겁니다.


CES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로봇을 보면서 그리고 어머니 그림 속에 있는 자전거를 보면서 기술이 닿을 수 없는 마지막 영토는 아마도 공감이란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술의 숙력도, 그 기술을 암묵지라 말하지만, 진정한 암묵지는 그 행위, 경험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의미에 더 깊이 스며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조직에서 누가 더 생산적인가를 따지는 시대는 오래가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누가 더 깊게 표현할 수 있는지,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얼마나 더 뜨겁게 공감할 수 있는지가 인간이 가지는 마지막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는 AI 에이전트 없이는 업무가 불편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이 더 잘하는 영역에서 기술과 경쟁하려 애쓰다 보면, 마치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무력감을 느낍니다.

폴 고객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제목의 질문을 우리도 던져야 할 시간입니다. 제목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AI에게 감정과 공감까지 이식하려는 연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로봇이 인간처럼 슬퍼하고 기뻐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머니의 그림 속 자전거를 바라보며, 쿵후를 하는, 복싱을 하는 로봇을 바라보며 기술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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