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

누구나 하고 싶어 하고, 모두들 하기 싫어하는 그리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by 산율

내 책상 서랍에는 지금까지의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사용한 명함이 있다.

이들 명함들은 비록 얇지만, 나의 오랜 직장 생활의 응축된 모습이다. 현재 'Database Prin. Specialist SA'라는 타이틀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딱딱한 직함일 수 있으나, 내 직장생활의 그 모습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란 생존의 도구이며, 명함은 그 도구의 모양이고, 색이고, 향기이다. 지나온 나의 명함을 보다가 지금 이후의 명함에는 어떤 직함을 더 넣어야 할지 궁금해졌다. 넣어야 할 것이 아니고 이제는 비움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길어진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준비하는 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나?

직장 생활 27년 차. 인생은 길고 남은 날이 많기에 나 역시 명함의 빈자리에 들어갈 새로운 이름을 생각한다. '작가', '투자자', '책방 주인', 혹은 '1인 출판사 대표'. 이런 이름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 한구석을 설레게 한다. 지금까지의 기술적 전문성과는 결이 다른, 조금은 더 내 영혼에 가까운 일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나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의 모습이 아닌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의 모습도 느낀다.


일요일 저녁이면 월요일 아침을 기대하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 첫 직장의 팀장님은 양복 안쪽 주머니에 늘 사표를 품고 다니셨다. 그토록 원했던 일도 막상 현실로 마주하면, 그 과정은 지루하고, 때로는 비루하며, 아주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노동으로 변한다. 결과물은 빛나지만, 그 결과물을 빚기 위해서는 매일의 루틴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의 결과물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지루한 반복은 피해 간다. 이것이 일이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다.


주변에서, TV에서 많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일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들을 본다. 이들이 TV나 매체에 나오는 것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고, 모두가 일이라는 일상 속에서 허덕이지만, 누구나 원하는 일에 대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지 못함을 반증한다. 그렇다! 일을 통해 '아무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의 '민낯'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거기에는 수천 번의 반복에 대한 지루함이 있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을 붙드는 고집도 있어야 한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해나가야 하는 인내도 필요하다.


결국 일의 완성은 모두가 선망하는 그 '시작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그 지루한 과정을 통과한 뒤, 마침내 아무나 할 수 없는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일의 진정한 결말이다. 사람들은 "그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시작의 설렘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는 길은 그 설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작의 설렘이 이 사라지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 속에 포기하고 싶어 하는 그 지점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있을 때, 그 견딤의 시간이 쌓일 때 우리는 그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작가로, 투자자로 그리고 책방 주인을 꿈꾼다.

그리고 새로이 꿈꾸는 내 직함은 그 이름을 얻기까지 내가 감내할 '지루한 시간의 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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