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

가장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케미(Chemi)

by 산율

위키백과에 따르면, 가족은 대체로 혼인, 혈연으로 관계되어 일상생활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을 의미한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 속에서는 경험하는 그 일상의 경험을 담기에는 참 건조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긴 후에야 비로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부부라는 관계는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사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놀랍도록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경악할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연예 후 결혼한 부부들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그 교집합과 여집합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부딪친다. 이런 반복적인 에너지를 소비 후 결국에는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제3의 무언가로 흔히 말하는 가족으로 통합된다. 구성원으로 가족을 말할 수도 있지만, 서로 모난 부분이 깎여나가고 , 새로운 결합으로 가는 이 일종의 화학반응도 가족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아들을 바라볼 때도 동일한 느낌이다. 아내와 내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온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너무도 무서울 정도로 닮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정말 '누구세요?'라고 묻고 싶을 만큼 낯선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몸에 숨어있던, 나도 몰랐던 DNA의 한 특징이 아들에게서 보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자라면서 독립된 자아가 형성되면서 나오는 또 하나의 화학반응이 간 싶어 멍하니 바라볼 때가 있다.


AI 환경하에서 우리의 삶은 눈부신 기술발전을 통해 편해져 가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편의를 누리는 시대에서 이제는 음성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풍요한 삶 속에서 우리 삶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의 풍경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이 깊고 촘촘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자주 길을 잃고 더 깊은 갈등으로 힘들어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일구어 나가는 그 지극히 평범했던 과정이 이제는 유독 힘겹고 고단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환경도 힘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족에 대한 우리 내면의 태도가 아닐까?


삶의 깊은 경쟁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도감 때문인지,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어떤 모습이어도 품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지 우리는 가족에게 유독 실수를 많이 한다. 밖에서는 낯선 이에게 건네던 최소한의 예의와 친절을,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 편'이라는 이유로 생략한다. 하지만 관계의 밀도가 높을수록 그 반응은 더 예민하고, 강렬하다.


가족을 저절로 완성되어 판매되는 완제품이 아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맞춰 원하는 모양을 쌓아 만들어가는 레고와도 같다. 타인에게는 웃어넘겼을 사소한 말 한마디가 가족에게는 쌓아 올리고 있는 레고를 허물고 다시 쌓게 할 수도 있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은 행복감과 충만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울타리의 크기만큼 우리는 책임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세상은 가족이라는 화학작용을 위한 작은 실험실이다. 서로의 다른 점 그리고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메어가며 가족이라는 물질을 만들어가는 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실험실이다.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등 성경을 읽다 보면 가족에 대한 많은 구절이 나온다. 가족 그 자체에 대한 축복, 감사도 있지만 구성원으로 해야 할 책임 및 행동에 대한 언급을 더 많이 강조한다. 구성원으로 해야 할 이 책임 및 행동, 이 작용과 반작용의 화학작용이 가족이다.


그 아름다운 케미(Chemi)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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