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父母)

삶이라는 이름의 교육

by 산율


'나'라는 자아는 홀로 정의되지 않는다. 한 집안에서는 아들이자 막냇동생으로, 반려자에게는 남편으로, 아이에게는 아빠로 존재한다. 사회로 나가면 누군가의 동료나 조직의 구성원이다. 만약 이 모든 관계를 걷어내고 홀로 남겨진다면, 과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남아 있을까? 결국 자아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 많은 관계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어려운 이름은 부모다.


"아빠가 되다"

늦은 나이, 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아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옹알이를 처음 듣는 순간, 서툰 아장거림은 그냥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바라보며 건강하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다. '부모의 욕심'인지 나도 모르게 초등학생 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초사병을 겪은 아들에게 운동도, 학업도,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에게 말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그냥 주변에서 다하니 내 아이만 안 하면 불안해서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이게 정말 맞는 건지? 궁금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하고 하다 보면 아빠와 엄마의 관점의 차이만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빠들은 자녀 교육은 아내에게만 맡긴다. 결정권은 이미 엄마에게 있고, 발언권(?) 정도 가지고 있을까?


이번 주, 장인어른께서 대장암 수술 후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막내딸인 아내의 집에서 머무시는 동안, 장인어른의 사소한 몸짓과 말투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삼 놀랐다. 아내 또한 내게서 시어머니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부모의 모습 속에 자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부모로서 두렵기도 하다.


자녀 교육이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배워야 할 과정보다는 '부모의 삶 그 자체'아닐까? 아이는 부모가 의식적으로 가르치는 말보다, 무심코 내뱉는 말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자란다. 부모가 보여주는 선택과 행동, 그 일상의 무늬가 아이의 생활에 그대로 스며드는 것이다. 부모가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며,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가장 정직한 교육이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삶의 철학은 오직 가정에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지금의 우리보다 배움이 짧으셨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 소중한지, 삶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현명하고 지혜로우셨다. 당신들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다. 그 실천의 삶의 모습이 가장 위대한 교육이었다.


오늘 그림 속 부모님이 말씀하신다. 자녀 교육은 대치동에서, 학원에서, 대학입시가 아닌 부모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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