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讀書)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훈련

by 산율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주에는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내주신 그림 속 계절은 아직 가을이다. 늦가을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 소파에 편히 기대어 책장을 넘기는 남자. 차가운 날씨지만, 어머니 그림 속 두 사람의 시간은 여전히 가을이다. 계절만 다른 것이 아니다. 현실이라면, 그림 속 남녀가 책을 읽는 것보다는 핸드폰을 바라보는 모습이 좀 더 자연스럽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가끔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차 안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핸드폰을 바라본다.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 너무도 희귀한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은 책을 읽는 모습이다.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공부를 하면서 무언가를 읽는 모습은 여전히 익숙한 모습이지만,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읽는 아날로그 인간의 모습은 정말 희귀하다.

나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전자책, 오디오북이지만,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읽지 않는다. 읽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읽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을 넘어 사고와 이해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AI 가 모든 것을 요약해 준다. 리서치 기능을 활용하면 그 영역의 해당 전문가 못지않은 보고서를 작성해 준다. 그 보고서가 너무 길어 읽기 힘들면 더 분량을 줄어 요약해 달라고 말한다.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 이해하기 힘들면 , 이해하기 쉽게 다시 작성해 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명령하고 그 결과를 소비만 한다. 과정이 사라졌고, 그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는 내가 아닌 GPU가 담당한다. 그리고 그 소비하는 과정에서 앎이라는 것 자체가 훼손된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깊이가 없다. 사고에 대한 확장이 없다. 물론 그 사고에 대한 확장도 또 질의하면 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루프로 질의하며 확장한다. 그리고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확장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읽는다는 것은 과정, 그 자체이다. 하나의 문장을 읽고, 감동해 밑줄을 긋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느껴보고, 문장과 문장사이의 여운을 느끼는 과정이다. 온전히 나 스스로 텍스트의 처음과 끝을 소비하는 과정이다.


어머니의 그림을 보다가 AI 시대의 독서를 생각하다니. 이것도 직업병인가 보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본다. 늦가을 벤치에 앉아 책에 빠진 여자,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남자. 왠지 이들은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저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을 것 같다. 계절이 바뀌어도, AI가 모든 책을 읽어주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들의 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쩌면 AI 시대, 독서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훈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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