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분열된 이방인
인간의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거대한 신경 섬유 다발인 뇌량(Corpus callosum)이 절단되거나 손상되어 양쪽 뇌가 서로 정보를 교환하지 못하는 상태를 분리뇌(Split-brain)라 한다. 정보교환이 단절되고, 동작 및 인지의 독립성 - 즉 좌뇌는 언어 중심, 우뇌는 시각/공간 정보를 처리하는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두 뇌가 서로 다른 행동하는 증상이 발생한다. 마치 신체 내에 두 개의 독립적인 의식이 존재하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위 설명은 구글링 해서 찾은 분리뇌(Split-brain)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컴퓨터 분야이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등 분산 시스템 내에서 두 개 이상의 서버 간 통신이 단절되어 서로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상태, 데이터의 정합성이 깨지는 장애를 말할 때도 이 분리뇌(Split-brain)란 용어를 사용한다.
인간의 사유는 학습으로 얻은 명시적 지식과 다양한 삶의 궤적을 통해 체득한 암묵지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해석하는 활동이다. AI 가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원치 않는다. 사유는 불필요한 비용이고, 성가신 마찰이다. 잘 정제된 프롬프트와 맥락이면 AI는 그 어떤 전문가보다 매끄러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결과가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정적이 소모가 없다. AI는 짜증도 내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다시 작업한다. '토큰'이라 불리는 지불수단으로 추가 비용만 치르면 된다. 이 압도적인 편리함, 생산성을 거부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 불가능한다.(impossbile)' 다.
이미 AI는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거부할 수 없는 생존의 조건이다. 핸드폰에서, 컴퓨터의 브라우저에서, AI가전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을 AI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의지로 잠시 거리를 둘 수는 있을지언정,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문명의 도구를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며 걸어온 과정이다.
"도구는 인간 존재의 확장이다." 말한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히 인간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닌, 자신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보았다. AI 역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도구이다.
이 도구는 인간의 뇌와 아주 흡사하다.
탈부착이 자유롭고, 이동성이 뛰어나며, 그 크기와 능력도 각양각색이다.
구글, OpenAI, 앤트로픽, 아마존 등 수많은 기술 거대 기업들이 저마다 성능과 기능을 갖춘 모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구축한 지능의 탑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확장하고 있고, 그 경이로운 학습 속도를 인간이 따라잡는 것은 이미 불가능에 가깝다. 학습이라는 임계점에서 지능의 주도권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이 거대한 지능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는 키보드, 브라우저 그리고 스마트폰 같은 투박한 장치에 머물러 있다. 머지않아 AI는 아주 작고 단순한 엣지 디바이스의 형태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 것이며, 결국은 인간의 몸속에 이식(Embedded)되는 단계를 밟게 될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뇌와 AI라는 기계적 뇌는 물리적 거리를 지우고 하나의 망(Network)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도구의 확장, 인지의 확장을 넘어서 존재의 융합이다.
AI라는 거대한 뇌가 우리 몸의 일부가 될 때, 그 신경망을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유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라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인간의 존재는 학습된 데이터 양이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는 각자가 던지는 그 학습된 데이터를 거슬러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힘에서 나온다. 사유라는 생산적인 활동을 AI에게 내어 주고, 오직 소비영역에만 머문다면, 인간 본연의 뇌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지 궁금하다. 생물학적 좌뇌, 우뇌는 위축되고 반면 그곳에 연결되어 기생하는 AI 모델들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고, 비대하게 확장되는 풍경 이것이야 말로 디지털 시대 '인지적 분리 뇌(Digital Split-brain)' 현상이다.
디지털 코기토(Digital Cogito)는 단순한 구호도 개념도 아니다. 미래 생존을 위한 선언이다. AI가 학습을 전담하니 인간은 그저 활용의 기술만 익히면 된다고 믿는 순간, 우리 안의 모든 감각은 끊어진다. 신체라는 하나의 몸 안에 기계의 의식과 퇴화한 인간의 의식이 동기화되지 못한 채 동거하는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읽고, 쓰고, 고민하는 사유의 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티브잡스는 'Connecting the Dots'이란 표현을 통해, 과거의 경험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연결되어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 표현을 데이터 관점에서 바라보면 AI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과거의 점들을 찾아내고, 그 점들을 정교하게, 최적화된 선으로 연결하는데 인간보다 탁월하다. 하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Connecting the Dots'은 그 점을 지우고, 기존의 경험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사유의 능력이다. 확률의 궤적 안에서 선을 긋는 것이 아닌, 그 궤적을 이탈하여 기존의 논리, 기존의 데이터로 말할 수 없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창조다.
현재 AI는 생성형 작업을 뛰어넘어, 일상의 업무들을 수행하기 위한 에이전트(Agent), 멀티 에이전트(Multi-agent) 등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AI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생산성을 압도하고 경이로운 결과물들을 쏟아낼 것이다. 생산성이라는 달콤함, 편안함이라는 감미로움을 빠져 '사유의 능력'을 잃어버린다며, 읽고, 쓰고, 고뇌하는 모습이 사라진다면, AI의 매끄러운 정답에 길 들여 저 자신이 왜 그렇게 해동하고 판단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나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유의 등불을 끄는 순간,
내 안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분열된 이방인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