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전의 서막

학습하는 기계, 소비하는 인간

by 산율


수동적인 인간과 능동적인 기계 시대다.


기계는 쉼 없이 학습하고, 인간은 그 결과물을 안일하게 소비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사유'만큼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성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냉정하게 짚어보면 AI의 모습은 인간의 사유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데이터 기반의 추론, 복잡한 패턴 인식, 그리고 정교한 언어 이해는 인간 사고의 과정을 치밀하게 모방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그토록 숭고하게 여겨온 '학습'이라는 행위가, 사실은 기계가 보여주는 저 사고의 모방 과정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인류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학습 과정을 통해 문명을 세우고 문화를 일구며 역사를 지속해 왔다.




AI의 학습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방했다는 사실은, AI가 인간처럼 학습하고 사고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사유에는 '나'라는 존재와 '세계' 사이의 갈등, 고민, 마찰이 존재한다. 기계 학습에 의한 수학의 최적화 결과로 결정되는 좌표와는 차이가 있다. 인간의 사유에는 자유의지가 있고, 가치판단이 있다. 만약 우리가 기계처럼 많은 양의 데이터를 흡수만 하고, 최적화하고 나의 삶과 연결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그 뛰어난 연산장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냥 낮은 스펙의 CPU고 GPU 뿐이다.


최근 많은 IT 업계에서는 직원들을 해고한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AI라는 시대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다. 직원이 받은 해고 메일에는 "당신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없다."라는 단순한 문장이다. 직원들은 "GPU를 고용하고 나를 해고한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한다. 자동차가 나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자동차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고릴라가 나보다 힘이 세다고 고릴라와 나를 비교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정보혁명, 인터넷 혁명을 지나오며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경험을 대체했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었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ChatGPT가 나온 지금, 연산능력은 단순 연산을 넘어 인간존재에 대한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학습하는 기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아니 그 학습의 속도는 지금 것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발전하고 확장할 것이 너무도 뻔하다. 현대판 바벨탑은 계속해서 더 높게 쌓일 것이며, 그 차원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팽창할 거다. 이 거대한 기술의 해일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AI 소비의 달콤함, 그 중독적인 안락함에서 과감히 벗어나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사유의 노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사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체제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악의 평범성'이라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는 AI가 던져주는 '편리함의 평범성'이라는 늪에 빠져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정보를 받아먹고, 기계가 짜놓은 효율적인 경로를 의심 없이 따라가며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귀챦아 한다. 그리고 속으로 변명한다. 효율이 중요하다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우리가 느끼는 이 편리함과 효율의 극대화야말로, 사유의 부재로 들어가는 위험한 입구임을 자각해야 한다.


니체는 "자신에게 명령하지 못하는 자는 남의 명령을 듣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기를 멈추는 순간, AI가 던진 명령, 알고리즘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나의 자유의지라고 착각하며, 내가 생성한 것으로 인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기계가 학습한 수조 개의 데이터를 넘어, 단 한 번의 깊은 고뇌 끝에 내뱉는 인간의 '서툰 문장'이 더 위대한 이유는 그 안에 실존적 책임, 자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기계는 그 모든 데이터의 궤적을 학습하고, 추론한다. 하지만 그 정해진, 최적화의 길을 뚫고 나와 '전혀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것은 오직 사유하는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계가 학습의 정점에 도달하여 모든 것을 예측하려 들 때, 우리는 소비의 늪에서 일어나 다시금 인간다운 질문을 고민하고, 던져야 한다.


기계는 학습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체제를 모방한다. 그리고 더 발전한다.

인간은 소비한다. 그리고 기계의 사고체제를 모방한다 그리고 소멸한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 'Digital Cogito'는 사유하는 소비이고, 질문하는 소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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