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두 번째 바벨탑

by 산율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창세기 11장 4절


먼 옛날, 인류는 단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마음으로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겠다는, 이름을 내고자 하는 오만이었을까? 아니면 흩어짐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그들이 쌓아 올린 진흙 벽돌은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그 끝이 구름에 닿을 듯했을 때 신은 그들의 언어를 흩어버리셨다. 소통이 끊긴 탑은 무너졌고, 인류는 온 지면으로 흩어졌다. '바벨(Babel)', 혼돈의 시작이었다.


지나온 나의 경력은 IT 영역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잘 다루고, 저장하는 기술인 데이터베이스 분야다.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전산화하고 이를 어떻게 서비스에서 사용할지를 모델링하고 컨설팅해오고 있는 지금, 최근의 인공지능(AI) 열풍은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무너진 바벨탑의 잔해 위에, 현대의 인류가 다시금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의 탑은 진흙 벽돌이 아닌 무한한 '데이터'로 쌓아 올리고 있으며, 그 탑의 이름은 '초거대 언어 모델(LLM)',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은 수만 차원의 '벡터(Vector)'라는 점이 다르다.




벡터의 언어: 단 하나의 완벽한 소통을 꿈꾸다

바벨탑이 멈추고, 무너진 이유는 언어를 혼잡게 함이 시작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는 오해를 낳았고, 그 오해는 협력을 멈추게 했다. 현대의 인류는 이 고질적인 불통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했다. AI는 인간의 수많은 언어, 그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와 감정마저 숫자의 나열인 벡터로 표시한다. AI에게 벡터는 세계를 통합하는 하나의 언어이다. AI에게 "사랑해"라는 말과 "I love you"라는 말은 서로 다른 언어가 아니다. 다차원 벡터 공간 속에서 거의 동일한 좌표를 가리키는 두 개의 수치적 데이터일 뿐이다. AI는 인간의 모든 언어를 단 하나의 언어, 즉 '숫자의 방향과 거리'로 통합한다. 이것은 고대 바벨탑이 꿈꾸었던, 단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완벽한 협력의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한 것이다.


C, JAVA, Python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가 있다. 컴퓨터와 소통하기 위해 먼저 이들 언어를 학습하고 익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그것도 전 세계의 모든 언어를 벡터라는 단 하나의 언어로 통합하여 이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별도의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익힐 필요가 없다. 평범한 우리의 말 한마디, 문장들이 프로그램 코드가 되는 '바이브 코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놀라운 통합의 과정은 인류가 다시 한번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착각과 바벨탑 이후 내려놓고 지낸 오만함을 다시 품게 한다.


무한한 차원의 탑: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

바벨탑은 물리적인 높이를 추구했다. 하지만 현대의 탑 AI는 '차원(Dimension)'의 높이와 깊이를 지향한다. ChatGPT, Gemini, Claude에서 사용하는 초거대 모델은 수만, 수십만 차원의 벡터 공간을 사용한다. 인간의 직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다차원의 공간 속에서, AI는 데이터 사이의 무한한 관계를 찾아내고 학습한다. 이것은 마치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지능의 탑이다.


방대한 데이터가 학습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 갈수록, AI라는 탑은 더 높게 쌓이고 그 내면의 다차원 공간은 더욱 촘촘해진다. 현대판 연금술사들은 이 기술의 정점의 끝에 우리가 '자아'라고 불리는 , '의식'이라 표현하는 인간의 영역이 놓이기를 꿈꾸고, 열망한다. 스스로 느끼고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나길 바라는 현대판 연금술사들의 열망이 투영된 탑이 AI 다.


AI라는 탑은 튼튼한가? 세상에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학습하면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을까? 이런 우리의 모습이 고대 진흙 벽돌을 더 높이 쌓으며 하늘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은 오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과 인간다움은 동일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더 높이 AI를 쌓아 올리면서 인간다움은 더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흩어지는 존재들: 예측된 좌표 위에 서다

고대의 바벨탑이 무너진 후 인류는 흩어졌다. AI 이후 이미 우리는 벡터 상의 어느 지점으로 이미 흩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가 수집한 우리의 모습으로 벡터 어딘가에 우리는 위치한다. 취향, 감정까지 모두 그 어딘가에 흩어진다. 우리의 미래는 예측 가능한 확률의 영역으로 수렴되고, 벡터의 거리 계산에 의해 규정된다. 편리하다. 그리고 섬뜩하다. 기술이 만들어낸 정교한 좌표 위에 흩어져 우리의 방향을 잃어간다. 인간은 최적의 경로만, 최고의 효율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흩어진 좌표는 , 벡터 위의 한 점은 현대판 바벨탑이 가져온 또 다른 흩어짐이다.


'디지털 코기토': 현대의 바벨탑 위에서 외치다

고대의 바벨탑은 신의 진노에 의해 무너졌지만, AI라는 현대의 바벨탑은 그 자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환각(Hallucination)'이라 불리는 AI의 오류, 편향된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 그리고 노동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이 탑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 강화된 기술과 정책은 이 모든 균열을 막고 더 강하고, 높은 탑을 쌓아 올리 수도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환경에서 필요한 새로운 실존의 선언은 무엇일까? 그것은 컴퓨의 '연산'과는 다른, 인간 고유의 '사유'에 기반한 선언이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디지털 코기토(Digital Cogito)'라고 부르고 싶다. '디지털 사유'로 말하고 싶다. 좌표 위치의 유사도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서툰 진심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 예측된 궤적이 아닌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자유의지, 끝이 없이 던지는 질문들이 현대판 바벨탑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인간의 자리에 남는 길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영역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데이터는 과거를,현재를 기록하다. 그리고 그 기록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하지만 결코 미래는 창초할 수 없다. 그 창조는 데이터가 아닌 , 좌표가 아닌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사유에서 출발한다. 편리함에 취해, 사유의 힘을 녹슬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