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夫婦)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

by 산율

아버지는 장성, 어머니는 광주가 고향이다. 어렸을 때 나는 당연히 두 분은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시다가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하신 걸로 알고 있었다. 중학교 들어가서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일찍이 서울로 올라와 고모가 하시는 요꼬공장(편직공장)에서 일하셨고, 그 외에도 막노동을 포함한 다수의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광주에서 생활을 하셨는데, 어떻게 두 분이 만나셨을까? 나중에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아버지가 친구분들을 만나로 광주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어머니를 보게 되었고, 그런 어머니가 좋아 무작정 따라다니셨다. 당시 아버지는 서울에 근거를 두고 있어 어머니를 계속해서 만날 수 없으니, 그때 당시 처음 나온 여성 잡지책을 어떤 쪽지도 없이 어머니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셨고, ( 나중에 어머니 말로는 잡지책 안에 아무 쪽지도 없는 부분에 아버지에 대한 괜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하신다.) 친구들에게 부탁해 어머니가 혹시 다른 남자와 중매를 보는지 감시하다가 낌새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단다. 어느 날 외 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중매를 보라고 하셨고,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와 어머니 집 근처에 거주하면서 줄기차게 대시를 하셔서 결국 외할아버지에게 승낙을 얻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셨다. 참 로맨틱한 이야기이다.


로맨틱은 여기까지!!!


결혼 후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의 삶은 고난이었다. 결혼 전 광주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던 어머니는 가족보다는 주변 사람을 더 챙기는 아버지와 불안한 경제문제로 인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 놓였고, 누나 셋 그리고 나를 낳은 후에는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생활을 하셨다. 사실 이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려서이기도 하고,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항상 맛난 빵을 사가지고 집에 오셨고,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뭔가 불편한 삶이 내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기억을 하는 데는 세 명의 누나들의 희생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무슨 80년대 드라마에 나오는 아들 하나 있는 집의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그랬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난 그런 아들이었다.

"사랑은 무지개 빛이다. 사랑은 빨간색의 열정으로, 주황의 따스함으로, 보라의 신비함으로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색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며 다른 빛깔로 번져가는 것을 사랑이 사라졌다. 착각한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다.


돌아보니 부모님의 사랑은 무지개 빛이었다.

빨간색의 삶의 열정으로, 연민의 녹색으로, 우울한 파란색으로 때로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이 아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진흙 같은 어둠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다른 빛깔로 번져가는 삶의 현장에서 두 분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같은 곳을 보고 오셨고, 이 동행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사랑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 애증, 연민, 믿음 다른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부모님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의리다. 어려웠던 순간, 기쁜 순간 그 모든 삶을 같이 한 상대에 대한 예의이고, 그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이에 대한 의리다.


결혼 후 아내와 많이 다투었다. 다행인 것은 그 다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다툼의 빈도가 줄어듬에 있다. 다툰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이유는 한 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아내'와 '아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 간극 때문이다. 이 간극은 기대에 대한 실망과 잘못된 방향으로 오해를 만든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다.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실망보다는, 그 다름을 벗 삼아 같은 곳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서로를 의지해 나아가는 것, 그 끊임없는 협상 그리고 팀플레이가 필요한 것이 부부다. 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듣는 마음'이다. 우리 부부를 포함한 모든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서로를 향한 듣는 마음이다.


부부는 그런 존재다. 때로는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불편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멀어 외롭다. 부부의 거리는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 무한 반복 속에 고무줄의 탄력이 줄어들 때면 그 거리가 고정된다. 그렇게 같이 늙어간다. 그게 부부다.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것이 부부다. 이 세상 모든 부부가 그림 속의 거리였으면 좋겠다. 딱 이 정도 거리였으면 좋겠다. 손잡을 수 있는 거리, 안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고개 돌리면 서로의 얼굴을 맞대어 바로 볼 수 있는 거리였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기대어 같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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