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머니의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었다.

by 산율

10여 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이른 아침 항상 그렇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는 맛난 국과 여러 가지 반찬으로 아침이 준비된다. 새벽예배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항상 출근하는 가족을 위해 가장 바쁘신 시간을 보내신다. 그런 어머니가 오늘은 방 한구석에 등을 돌리고 누워 계신다. 오늘 어디가 많이 피곤하신가? 눈치 없는 아들은 늦었다는 이유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 회사로 출근했다. 뒤늦게 누나에게 들은 소식이지만 그날 새벽 어머니는 새벽예배를 가시기 위해 일어나셨다가, 몸의 이상을 느끼시고 , 얼굴의 움직임이 평소와는 다름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 움직임이 어눌한 얼굴을 보이기 싫으셔서 등을 돌리고 있으셨다. 빠르게 병원으로 모셨고, 진단결과는 뇌출혈이었다. 감사하게도 위치가 위험한 곳이 아니었고,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하여 일주일 후 어머니는 퇴원하셨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도 부모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쯤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재주가 참 많으셨다. 어려서는 누나와 내 옷을 다 직접 만드셨고, 뜨개질은 거의 선수 수준이어서 , 뜨개질을 통해 가방을 포함한 못 만드는 것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림도 너무도 잘 그리셨다. 그 재주 많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시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고, 예전에 경험한 뇌출혈이 두렵고 무서워서였다.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다가 문득 슬픔이 몰려왔다. 두꺼워진 손마디, 거친 피부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내내 흔들리는 손을 바라보니 내가 아는 그 강한 어머니의 모습은 없었다. 너무도 약하고 약한 한 노모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렇다.


어머니가 늙으셨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강하고, 강한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많은 재주를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희미해져 가고, 지금 내 눈앞에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어머니는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깎여 힘없이 서 있는 할머니였다. 그런 슬픔이 차오를 때 어머니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그 그림에는 행복이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그 갸녀린 , 흔들리는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에는 어머니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경제적인 고단함도, 삶의 서글품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그림에는 기쁨과 희망이 있었다.


어머니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그리신 그 그림을 통해 가족, 자연 그리고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가 때로는 웃음으로 , 때로는 슬픔으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지금 부모가 된 입장에서 바라보니 여전히 나는 어머니에게는 어린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