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정약용 생가와 실학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가벼운 나들이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걷고, 전시를 보고,
그저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정약용이라는 이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실학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현대의 공학을 떠올렸다.
현실에서 출발하고,
문제를 정확히 보고,
쓸모 있는 해법을 만들려는 태도.
공학이 그렇고,
내가 하고 있는 의료공학도 그렇다.
특히 의료는
기술보다 먼저
윤리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 점에서
동양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학은
내가 일하는 방식과
의외로 잘 닿아 있었다.
그 후에
목민심서를 읽었다.
처음엔
고전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이상하게도
회사 운영 매뉴얼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권한을 쓰는 기준,
결정을 내릴 때의 마음가짐.
‘목민’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나는 종종
내가 무언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맡겨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직원들의 시간,
집중력,
하루의 대부분.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이 달라진다.
목민심서에 나오는
그 책임의 무게가
이상하게도
요즘의 회사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선택해온 방식들이
그 책을 읽고 나서야
말로 설명될 수 있었다.
왜 사람을 쉽게 늘리지 않았는지,
왜 속도를 조절했는지,
왜 저녁 시간을 지키려고 했는지.
그건 전략이라기보다
마음가짐에 가까웠다.
목민심서는
성과를 약속해주지 않는다.
다만 기준을 준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권한을 조심스럽게 쓰라.
눈앞의 성과보다
오래 가는 신뢰를 택하라.
그 기준을 잘 따른다면
적어도
잘못된 성공은 피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확신이 생겼다.
내가 하는 방식이
언제나 정답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내가 선택한 이 느린 방식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은 있다.
그래서 오늘도
회사를 운영하며
나는 가끔
목민의 마음을 떠올린다.
사람을 남기는 일이
결국 회사를 남긴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누군가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