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동전처럼,
자살하고 싶었던 마음과 살고 싶었던 마음을
항상 들고 다니는 책가방
그 깊은 구석 끝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2024년 12월 초 29살 당시, 나는 너무나도 버틸 것이 필요했다.
24년 1월, 직장을 퇴사한 후 12월까지 모아둔 돈은 -60%가량 손실이 나있는 상태였고, 이전 직장의 직무를 통해 사는 삶은 더 이상 희망하지 않아서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직무에 대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직전 연봉보다 희망연봉을 36% 정도 낮추며 해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었던 일에 이력서를 넣어왔다. 자살예방센터, 심리상담센터데스크 업무, 총무 업무 등 심지어 채용공고가 올라오지 않았던 회사에도 메일과 이력서를 넣으며 고립은둔의 시기를 보내왔지만 마음처럼 연락은 오지 않았다(아마도 연락이 오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이력서에 문제였었겠지. 그때는 너무 세상 탓을 하며 불행한 나의 운명이 속상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공시생이었던 친구가 공시 공부 제안을 하였고, 하고 싶고 하기 싫은 반반의 마음을 갖고 그렇게 시작을 하였다. 즉, 직업적인 어떤 사명감이 생겨서 공무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내가 해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었던 취업자리는 계속해서 알아보았다. 카페 면접을 보았고, 대학교 지식재산권 관리 교직원 직무에 이력서를 넣는 등.
즉,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멋진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하고 싶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나의 삶의 원칙에 있어서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고립은둔시기를 버틸 힘이 없었기에 기댈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공시생이라는 조직감(?)에 기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살기 위해,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 5일 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날까지의 단기간 공시생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공과 대학 학사 졸업을 하여서 이와 관련된 전공이 포함되어 있는 기술직 9급 공무원을 선택하였다.
(국어 / 영어 / 한국사 / 기술직 관련 과목 2개)
공무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서, 나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였다.
과거 국/영 수능점수는 4등급
토익 수준은 대략 500점 후반 때
역시나 공무원 9급 기출문제를 풀어보니 점수는 각각 30점 35점이 나왔다.
한국사도 사실상 아는 것이 없었으며,
기술직 관련 과목도 물론 관련 대학 전공을 나왔지만 기출문제를 보니아는 단어와 지식은 있었지만, 문제 자체를 아예 손댈 수 없을 정도였고, 까먹은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수준을 파악하고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고등학생 때의 그 미련했던 공부방식(고집)을 버리고, 나 스스로를 합격할 수밖에 없는 방법과 환경 속으로 강제로 집어넣자"
고등학생 때는 공부에 재미를 들였던 것이지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였다. 수학문제를 풀 때도 풀이를 글씨체 예쁘게 하나하나 써 내려가는 거에 집중하고, 다른 과목 오답노트를 정리할 때면 틀린 이유를 빨강/파랑/초록 볼펜으로 예쁘게 써 내려가는 거에만 집중을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하는 공부를 하였으니 성적이 좋았을 리가... 그 당시에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남은 4개 월남짓의 시간을 무조건 효율적으로 활용하였다.
나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에 아주 잘 부합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복습을 제일 중요시 여겼다.
아침 8시 30분 기상 후 12시까지 국어/영어 실전모의고사를 1회씩 풀고, 풀었던 문제를 분석하였다. 문제 푸는 시간은 실제 시험시간보다 10분 더 빠르게 알람 리미트를 정해놓고 풀었다. 틀린 문제는 당연히 다시 돌아보고, 맞추었던 문제였어도 그 문제 속에서 헷갈렸던 부분이나 심층적으로 더 끄집어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정리해 두었고, 그다음 날 모의고사 문제를 풀기 이전에 정리해 둔 것들을 빠르게 훑어본 이후에 문제를 풀어나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반드시 좋아하는 영화의 힐링장면, 혹은 유튜브 힐링 쇼츠 영상 등을 보았으며 혹은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동기 부여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남는 30분 정도는 무조건 9급 공무원 시험 관련 영단어를 보았다. 어제, 엊그제, 지난주 보았던 단어는 무조건 오늘 다시 보았다.
1시 30분까지 항상 집 근처 투썸플레이스로 갔다. 저녁 5시~6시까지 한국사 개념을 공부하였다. 진도를 나가기 이전에는 무조건 그 전날까지 공부했던 내용들을 짧게라도 빠르게 훑어서 복습하였다. 나의 한국사 최종 목표는 국가직 시험 시작 직전에 시험범위 전체를 10분 만에 빠르게 훑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시험 1달 전까지는 실전 모의고사 문제를 풀지 않았고, 오로지 진도를 나가고, 매일 복습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투썸플레이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7시쯤까지 투썸플레이스로 다시 돌아왔다. 기술직 공부는 개념을 하나하나 파기에는 시간도 없고 비효율이라 생각하였다. 최소 10개년 기출문제를 모두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기출문제를 시간을 재면서 푸는 방법을 하지는 않았고, 문제 하나하나 10분이 걸리든, 1시간이 걸리든 그 문제에 보여있는 모든 개념들을 정리하고 공부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10개년 기출문제를 모두 분석한 후 7급 기출까지 일부분 분석을 하였다. 그렇게 국가직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모든 기출문제들의 풀이법이 보였다.
저녁 10시부터 1시간 혹은 1시간 30분 정도는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조금 부족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복습하였고, 필요한 부분은 더 분석하였다.
그렇게 나는 3월 나의 생일도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살아왔고, 끝내 9급 국가직 필기시험 합격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필기를 합격했던 건 물론 열심히 한 것도 있었지만, 분명 그 운과 타이밍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필기 합격을 하였지만, 합격했던 그 순간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공무원 면접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금은 다시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러한 선택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기준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의미 없는 순간은 없고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있다.
공무원 면접을 과감히 포기했지만, 그 절실했던 4개월의 공시생 기간은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줬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공부라는 것을 나의 의지로 선택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준 그 옛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지나고 돌아보는 지금, 나는 그때보다 돈도 더 없고 특별히 나아진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그땐 왜 그리 힘들어했을까. 내 지금의 순간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지나고 돌아보면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생각이 될 것 같다.
지금 삶이 힘드신 여러분,
그 어떤 것도 의미 없는 순간은 없습니다.
힘든 일을 겪을수록 겪은 만큼 얻어지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최선의 결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힘든 순간은, 되돌아보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순간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을 즐기고 살아가세요.
All is well.
김휘게 올림
Instagram : @hygge___lyk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