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해 보일 만큼 버텼던 순간들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수학 성적은 대략 30~40점으로 기억이 나고, 1학년 전교생 대략 450명 중 내 석차는 390등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중학생 때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려고 게임에 올인하여 공부에 손을 놓았던 것을 고1 때 다시 시작했던 것이다. 야자시간에 함께 남아있던 같은 반 친구들은 고2 고3 수학을 선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중1 개념원리 책을 피고 기초를 잡았다. 중학교 수학 수준의 집합(합집합, 교집합) 같은 개념도 몰랐으니까. 그때 당시 나에게 "그동안 뭐 하고 살았냐, 이제 와서 중1 수학을 한들 뭐 되겠냐"라는 말을 하는 친구들은 없었었다. 당시에 그런 말을 했던 같은 반 아이가 없었던 것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참 다행이었고 복이었나 싶다.
그런데, 같은 반 애들을 보면 야자 한답시고 얘기하거나 장난치며 놀거나 잠을 자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나는 그런 애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뭐 내가 누구를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쟤들은 뭐를 믿고 저렇게 내신을 안 챙기고 놀고 있는 거지? 성적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닌데?'
나는 그런 행동들이 당시에 꼴 보기 싫었어서 한 달 신청했던 야자 기간만 채우고 바로 야자는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공부를 하려 책상에 앉으면 너무 졸렸다. 그 졸린 것을 버티느라 하루가 다 가고 순 공부시간은 전혀 확보가 안되었다. 나는 나의 체력을 인정하고 나만의 방법을 찾았었다. 그 시절 나의 하루는 대략 이랬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방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 7시까지 잠을 잤다. 그 후 밥을 먹고 나면 8시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공부하였다. 그리고 3시간을 자고 등교를 하였다. 한 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 10분 무조건 자습 (인강을 1.5배속으로 듣거나)을 하였다. 그 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보았고, 다른 과목은 기억 안 나지만, 수학은 85점으로 기억하고, 전교에서 16등 정도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서워. 이렇게 단기간에 오르는 사람을 처음 봤어."
나 스스로를 위해 갈아 넣은 시간이었지만, 누군가가 인정해 주는 것을 처음 느껴본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이후로도 고2 고3이 되면서도 대부분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나보다 앞서나간 또래애들이 많기에. 나는 그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수업시간에는 절대 졸거나 잠을 자지 않았고, 수업 후 쉬는 시간이나, 방학 기간이나, 주말이나, 인강을 들으며 자습을 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거나 학교를 오는 시간에는 영단어 소책자를 보며 다녔다. 단 한순간이라도 쉬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까지 공부를 놓았었던 나는, 수시 내신 성적우수자전형으로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에 입학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는 인서울, 명문대, 최상위급 대학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인생을 한번 갈아 넣어서 세상에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기에 공부에 미쳤었고 공부에 재미를 들였던 것이지, 사실상 성적이 상위권에 있는 또래애들처럼 효율적으로 공부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3년간 피와 살을 갈아 넣었던 시간들을 통해 들어간 대학교였기에, 나는 나의 학교를 사랑하였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그러한 나의 노력과 습관들이 있었기에, 대학교 학점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여러 번의 성적장학금도 받고 4.01/4.5로 만족스럽게 졸업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가 거의 없다. 합쳐서 2명 남짓이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는 내 내신점수와 내 학점 챙기기에 바빴었다. 그럼에도, 지금 31살의 나는 그때 그 시절들이 후회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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