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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박서연 Feb 06. 2022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 

프롤로그


 [희망 박서연의 그림]


생각날 때마다 마음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려 이제는 폐허가 돼버린 나의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은 9살쯤이다. 

내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9살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 

세월 따라 육체는 알아서 성숙하고 익어 갔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삶의 기술을 익히며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내 감정연령은 여전히 그 시절에 멈춘 채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이 글은 부모에 대한 갈망을 분출하고 9살의 감정에서 탈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1장 사각지대에서 바쁘게 움직이다.


#01#   

  

2014년 겨울. 

난 툭하면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다. 

나는 인간의 도리나 예의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둔감하게 만드는 중이고 사람을 아둔하게 만드는 방법은 술이 최고기 때문이다. 

삼겹살을 먹는 이유는 친구가 한 말 때문이다. 

친구가 그랬다.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남에게 시비 걸고 싶을 때 있지? 그럴 때 고기를 먹어봐. 고기를 잘근잘근 씹다 보면 어느새 화가 가라앉고 맘이 편해져.” 

당시 나는 시비를 걸고 싶은 대상이 또렷했지만, 

시비는 커녕 그 맘을 감추기 위해 미운놈한테 떡하나 더 준다는 속담의 주인공처럼 매일 떡을 갖다 바치면서 살고 있었다. 

가끔 미칠 듯 시비를 걸고 싶어지면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고기를 먹어댔다. 

적을 찾기는 쉬었지만 싸움의 명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앞으로 ‘미운놈’은 ‘모비딕’이라고 부르겠다. 

미운이란 단어를 여러 번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모비딕’은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몇 개 안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불 꺼진 방에 푸르스름한 흑백 티비 한 대가 켜져 있고, 

나는 주인공이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이다가 함께 바다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이 복수심으로 고래를 찾아 나선 ‘백경’이라는 영화였다. 

한참 후 사춘기 시절 남자친구 책상위에서 ‘모비딕’이라는 책을 보았고 어릴 때 내가 보았던 영화 ‘백경’이 ‘모비딕’ 이라는 걸 알았다. 


“‘모비딕’은 거대한 놈이라는 뜻이야. 멋진 제목이지!” 

친구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시절 우리는 둘 다 인생에서 꺾을 수 없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존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비딕’을 만난 건 내 탓이 아니다. 

난 그냥 ‘모비딕’ 앞에 던져졌고 

‘모비딕’은 본능적으로 내 다리를 물어뜯은 것 뿐이다. 

나는 상처를 감추고 절름발이가 아닌 척 평생에 걸쳐 노력했다. 

하지만 동생은 에이헵 선장처럼 ‘모비딕’과 끝까지 사투를 벌였다.     


오늘은 한쪽 전면이 유리로 된 음식점에서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다. 

난 음식보다 술을 먼저 마셨다. 

창밖에 지나가던 사람이 안을 들여다보면 난 눈을 내리깔고 술잔을 잡았다. 

술잔을 넘기느라 반원을 그리던 시선이 테이블 건너편의 딸을 스치자 밥을 먹던 딸아이는 눈을 창밖으로 돌린다. 

이틀 뒤 개학이다. 

선비는 사흘만 떨어져 있어도 주변에서 몰라볼 정도로 변한다는데, 나는 두 달을 쉬고 나서도 권태감을 감출 수 없는 눈빛으로 출근하게 생겼다. 

     

사각지대


정상적인 인간의 감각으로는 볼 수 없는 곳. 

나는 내가 일하는 보건실을 사각지대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사각지대에 들어가면 먼저 창문을 열고 컴퓨터를 켰다. 

이제는 창문을 열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컴퓨터를 켜고 대기 정보를 검색한 후 메신저를 보내야 한다. 

‘오늘 미세먼지 나쁨입니다. 야외활동 주의시켜 주세요.’ 

전교에 메신저를 보내고 창문은 열지 않았다. 

1920년대는 껌을 씹다가 목으로 넘어가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문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미세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는 기사로 바뀐 것뿐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를 조심해야 한다.  

미세먼지 나쁨인 날 아이들은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뛴다. 

미세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꼭 닫아 걸고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체육시간이 끝나면 사각지대로 몰려온다. 

꽉 막힌 공간에서 뛰고 나면 따라오는 두통이나 울렁거림을 해결해 달라고… 

그날도 몰려온 아이들은 까마귀들 군악대처럼 저마다 소리를 냈고 난 단련된 지휘자처럼 하나하나 해결하며 화음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 때 사각지대의 갈색 문이 벌컥 열리고 1학년 4반 담임이 허둥지둥 아이의 머리를 잡고 들어왔다. 

순간 너무 놀란 나는 본분을 잊고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쟁반에 담긴 세례요한의 머리처럼 아이 머리만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머리통에 검은 피부, 길고 풍성한 속눈썹, 그 아래 흑수정처럼 반짝이는 눈. 

아이는 구세주 보듯 간절한 시선을 나에게 고정하고 끌려오듯 다가왔다. 

검은 패딩에 감싸인 작은 어깨는 뒤통수에서 흐르는 피로 검붉게 젖어 있었다. 

 

난 17년째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있으면서 점점 더 소심해졌지만 급할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것만은 명심하고 있다. 

병아리 보건교사 시절 빗자루에 이마를 맞은 아이가 아슈라 백작처럼 얼굴 반쪽에 빨간 피칠을 하고 왔을 때 난 응급 지혈을 하면서 호들갑스럽게 119를 불렀다. 

그때 옆 교실의 선생이 와서 상처를 확인하더니 

“머리는 혈관이 많아서 피가 좀 많이 나죠? 괜찮을 거야.” 라며 아이와 나를 위로했다. 

그때 나는 보건교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웠다. 

이후 일정 기준을 넘어선 피를 봐도 움찔, 뒷걸음질을 할 지언정 119에 전화는 자제한다. 

간혹 부딪힌 애들 중에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나중에 심각한 경우도 있고,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렀지만 별 일이 아닌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통증표현은 증상예측보다는 성격 추측 용도로 더 적합한 것 같다.   


나는 그동안 겪은 일들을 기준으로 이런저런 경험을 떠올리며 뒤통수의 상처를 찾아냈다. 

1센티 조금 넘게 찢어진 상처에 식염수를 쏟아서 세척하고 멸균 거즈로 눌러서 지혈하고 탄력붕대로 머리둘레를 단단히 감았다. 

17년 전과 비슷한 처치를 하고 이번에는 119가 아닌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추위와 두려움으로 가볍게 떨고 있는 작은 어깨를 보면서, 나는 준비된 침착함을 유지하며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할 거 같아요. 학교로 오시겠어요?” 

몇 초간 침묵. 

그리고 소리가 너무 낮아서 나보다 한층 더 침착하게 들리는 “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아이보다 더 검은 피부에 오른쪽 팔은 깁스를 한 남자가 왔다. 

붕대로 머리를 감고 있는 아들을 본 검은 눈동자가 우유에 떠 있는 올리브처럼 흔들리더니 길고 풍성한 속눈썹에 눈물이 맺혔다. 

“바께 츠워.” 

이국적 발음. 

남자가 말할 때 깡마른 목의 울대뼈가 들썩였다. 

남자는 깁스하지 않은 왼손으로 아이의 벌어진 옷을 어설프게 주먹으로 여미고 있다. 

(‘아니 왜 주먹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주먹이 아니다. 

엄지 하나만 남고 네 손가락이 사라진 주먹처럼 보이는 손이다. 

남자는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아들의 옷을 여미고 그 팔에 아이의 가방을 걸쳤다. 

그리고 깁스한 팔로 아이의 등을 감싸고 한겨울 바람 속으로 걸어 나갔다. 

[희망 박서연의 그림]


손가락이 잘리고 부러진 팔로 상처 입은 아들을 끝까지 보호하는 아버지의 위대함. 

그런 위대한 아버지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겨울바람에 맞서 학교의 언덕길을 내려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본 순간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던 태곳적 인류의 한이 출렁거렸고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다.      


오전 내내 나의 메마른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이 몰려와서 아픈 곳을 설명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울어요? 왜요?” 

우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입꼬리를 올려 봤지만 눈물은 표정과의 조화도 무시하고 계속 흘렀다. 

이상한 날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아침부터 원인 모를 슬픔의 기운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단골 아이들은 평소처럼 찾아와서 내가 더 깊은 슬픔으로 빠지지 않도록 제 역할을 다했다.


#02#     


오늘은 연말 통계 공문들을 오전 중에 처리하려고 2교시 성교육 수업도 5교시로 옮겨놓았다. 

업무사이트를 클릭하자 공지사항 세 개가 동시에 떴고, 엑스를 세 번 누르기 전에 성훈이가 들어온다. 

아침에 사과즙만 먹고 왔는데 속이랑 머리가 안 좋단다. 

갈색 물약을 플라스틱 컵에 따랐다. 

언제부터였을까? 

난 아이들의 사연을 묻지 않는다. 

계속 아프면 병원에 가보라고 로봇처럼 덧붙이고 공지사항이 떠 있는 컴퓨터로 시선을 돌린 후 한 글자도 읽지 않고 모두 엑스를 눌렀다. 

하지만 공문까지 도착하는 것은 실패다. 

메신저가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클릭! 

<시간 되실 때 전화 주세요. 4학년 5반 김나경> 

<무슨 일이신가요? 일단 메신저로 용건 말씀해주세요> 

메신저를 보내자마자 전화기가 울렸다. 

“선생님, 아이 한 명 보낼께요. 상담 좀 부탁드려요.” 

복도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쉬는 시간인가보다.      


잠시 후 새하얀 얼굴, 입술에 마른 귤처럼 하얗게 껍질이 붙어 있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낯선 얼굴. 

4학년 5반에서 보낸 아이다. 

“피곤하니? 입술이 다 텄네. 쓰라릴 텐데.” 

바셀린 묻힌 면봉을 주면서 말을 걸었다. 

“입술에 발라.” 

“어디가 아픈데? 춥니? 어지러워? 속상한 일 있어? 아침 먹었니?” 

아이는 면봉을 그대로 들고 여러 개의 질문에 괜찮다는 한마디를 던지고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앉았다. 

하얗고 표정 없는 일본귀신이 생각났다. 

잠시 후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와 야구복을 야무지게 입은 아이들이 오자 하얀 아이는 귀신처럼 사라졌다.      


태권도복은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배가 아프단다. 

“소화가 안 돼?” 

“몰라요.” 

“팔은?” 

“겨루기하다가 성장판 다쳤어요.” 

유산균 정장제를 먹였다. 

옆에 있던 야구복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자기도 발목이 아프다고 한다. 

좀 참아보라니 못 참겠다며 얼굴을 한껏 찌푸린다. 

“어떻게 아픈데?” 

“갑자기 살짝 아파요.” 

사각지대로 오는 아이들은 주로 근육통이나 관절통을 호소한다.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하고 보낸 아이들은 다음날 대부분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샘. 성장통이래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반가워하며 웃을 수 있는 통증. 

‘어린 시절의 알 수 없는 통증을 신체의 성장으로 보답하듯, 어린 시절에 이유 없이 받았던 정신적 고통도 영혼의 성숙으로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갑자기 살짝 아픈 것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야구복은 발목에 파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 때 팔다리를 걷어 올리고 사각지대로 들어오던 아이들이 말한다. 

“아, 파스냄새 좋다.” 

관중의 반응을 읽은 야구복은 더 힘껏 파스를 분사한다. 

아이들은 공중에 떠도는 파스냄새를 맡으며 빨갛게 부어오른 모기 물린 자국을 드러냈다. 

전교를 이 잡듯 소독하고 교실마다 소독약이 근위병처럼 서 있지만 한겨울에도 모기는 보란 듯 아이들의 팔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인간들이 규칙적으로 하는 철저한 방역의 최대 피해자는 적어도 모기는 아닌 것 같다.       


조금 늦게 들어와서 뒤에서 기다리던 채현이가 배가 아프다고 약장을 흔들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체온계를 들고 직접 체온을 잰다. 

“열은 없는데…” 

체온계롤 보니 36.7도. 정말 없다. 

“언제부터 아파?” 

“학교 와서 미술숙제 하다가 아파요.” 

“아침은?” 

“먹었어요.” 

“약 먹어야 될 정도로 아프니?” 

“많이 아파요.” 

“똥은?” 

“아이 그런 거 아니에요.” 

아이는 바퀴가 달린 약 선반을 마구 흔들며 대답했다. 

소화제를 주고 잠시 서 있다가 나는 깜박 잊은 말을 덧붙였다. 

“계속 아프면 병원 가봐.” 

그리고 이젠 필수가 된 말을 일지에 적었다. 

‘계속 아프면 병원 가라고 얘기함.’ 

이 버릇은 어느 선배 보건교사에게 배운 것이다. 

머리 아프다고 보건실에 왔던 아이가 그날 밤 집에 돌아가서 죽었다. 

선배는 병원 가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평생 후회했고, 나는 어깨너머로 선배의 후회를 뼈에 새겼다.      


컴퓨터는 또 자동 로그아웃. 

다섯 번째 로그인.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했으니까 일단 웃어볼까! 

아침엔 입 꼬리 올리고 울더니 이젠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 일을 앞에 놓고 웃음을 시도해 본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웃음은 입이 찢겨져서 웃는 삐에로처럼 얼굴이 찌릿하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에너지가 바닥나 버렸다. 

이럴 때 사용하는 처방이 있다. 

커피믹스. 

한두 개로 성이 안 찬다. 

세 개를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코카콜라의 비법보다 더 신비로운 커피믹스의 비밀. 

메마른 심신이 물에 닿으면 피어나는 꽃처럼 살아났다. 

얼마 후 똑똑똑~ 차분하고 밝은 노크 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기쁨이다. 

점심시간마다 오는 아이다. 

기쁨이는 보건실에 오면 일단 창밖을 보며 장미와 인사를 나눈다. 

12월임에도 화단에는 붉은 장미 두송이가 비현실적으로 피어있었다. 

장미꽃과 인사를 나눈 뒤 기쁨이는 팔을 걷고 혈당을 체크하고 빠르게 주사기를 꽂는다. 

야무진 손놀림으로 일을 마친 기쁨이는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 애한테 오늘 칭찬받았어요. 수학시간에 제가 좀 도와줬거든요. 제가 수학을 쫌 하잖아요.” 

천일야화처럼 자기가 몰래 좋아하는 남자아이에 대한 얘기를 매일 조금씩 들려준다. 

기쁨이의 얘기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아이들이 몰려오고...  

    

그 때 전율 같은 휴대폰 진동이‘드르르륵’ 울렸다. 

익숙한 번호. 

눈을 질끈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읽은 한 줄이 떠올랐다. 

<신과 가장 빨리 만나는 방법은 눈을 감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신과 만나야 하는 순간이다. 

눈을 감아도 신은 나타나지 않고 고통의 자기장만 찌릿하게 느껴진다. 

신은 정말 위대한 작가다. 

아침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복선이었다. 

우리는 신이 맺어준 관계라서 특수한 센서가 작동하는 걸까! 

심장이 철장에 갇힌 야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나 암 재발했대.” 

나는 거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순식간에 뜨거워진 눈을 부릅 뜨고 속으로 말했다. 

‘그럴 줄 않았잖니.’ 

거울 속의 얼굴이 전투 중인 성벽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얼굴 어느 부분에서 자매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들은 숙명의 동굴을 상기시키며 나를 번번이 9살 아이로 퇴행시킨다. 

나는 동굴에서 도망치듯 시선을 거울 밖으로 돌렸다. 

가장자리를 장식하던 꽃이 떨어진 거울 모서리는 늙은 세일즈맨의 어깨처럼 딱해 보였다.


2장 수동적 격정에 휩쓸리다.  

   

#03#     


5교시는 6학년 성교육 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업무는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서 부담이 줄어드는 경향을 따른다. 

그런데 경험을 할수록 어려워진 업무가 하나 있다. 

성교육이다. 

이상하게 성교육은 할 때마다 조금씩 더 부담스러워지더니 보건교사 17년 째 되던 그 해, 피하고 싶은 업무 1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사랑 중심이 아닌 사고 중심으로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경계심부터 심어주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이 답답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비상구처럼 느껴져 서둘러 수업 바구니를 챙긴다. 

초록 바구니에는 보건 교과서와 빨간 캐스터네츠 그리고 비타민이 들어 있다. 

책 사이에는 얼마 전 여고화장실에서 사산한 아이를 발견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 끼여져 있다.      


나는 얼굴을 복어처럼 부풀리고 한 번 더 숨을 내쉰 후 전진하듯 갈색 문을 밀었다. 

그 때 매복하고 있던 적군처럼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나의 길을 막았다. 

“많이 아프니? 선생님 수업가야 하니까 많이 아프지 않으면 쉬는 시간에 올래?” 

나는 알랑거리듯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처음 본 얼굴. 

‘꾀병이 아닐 확률이 높음.’ 

내면의 계산이 돌아가면서 난 치료 모드로 돌렸다. 

“어디가 아프니?” 

“어디가 아프냐고요? 어디 보자, 음~ 머리가 답답하고 배도 아파요.” 

아이는 낮은 목소리로 영감처럼 느긋하게 대답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냐고요? 어디 보자, 음~ 어릴 때부터요.” 

아이는 말끝마다 ‘어디 보자, 음~’을 추임새처럼 덧붙이며 말하고 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아팠던 걸 지금 치료하란다. 

오늘 같은 날, 아침에는 내전을 피해 우리나라로 와서 힘겹게 살고 있는 아빠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슬픔에 젖어 있다가 동생의 암 재발 소식을 들은 날. 

인류 평화나 동생의 불치병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수업을 하러 가는 것조차 뜻대로 안 되는 현실 앞에서 충실하기만 한 자율신경계는 또 뭘 대비하려나 보다. 

심장이 뛰고 입이 마르고, 등줄기에 열감이 퍼진다.  

    

치료를 마치고 조금 늦게 간 교실은 초저녁 여름 시골 냇가처럼 활기가 넘쳐흐른다. 

온 동네 개구리들이 다 모여 합창을 해도 이보다는 조용할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이거 수업권 침해 아니에요?” 

미래 검사의 자질이 돋보이는 아이가 야무지게 따진다. 

“선생님은 치료도 하고 교육도 하는 사람인데 치료받으러 온 아이들 다 처치하고 오면 수업에 늦을 수도 있어. 보건 선생님은 학교에 한 명뿐이니까.” 

난 언제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해를 구걸하듯 혼신을 다해 변명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내 직업으로 연기자를 추천할 정도로 나의 연기력은 수준급이다. 

그런 내가 오만상을 쓰고 설명해 보았지만 아이를 이해시키는 것은 오늘도 실패다. 

‘이해받지 못한 자의 하루’라는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수업으로 들어가는 게 17년 경력의 노하우다.      


<사춘기에 남성과 여성의 성적 호기심은 당연하지만 청소년들이 어른처럼 연애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이성친구와 교제할 때 방문은 열어놓고, 밤늦게 통화하지 않고, 단 둘보다는 여럿이 우정을 유지하면서 만나는 게 좋습니다. 등등.> 

바람직한 이성교제를 설명하고 준비한 신문자료를 펼쳤다. 

화장실에서 사산한 아이를 발견했다는 기사에 놀라기는커녕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난 인내심을 발휘해서 설명을 계속했다. 

<잘못된 이성교제로 인한 미혼모 발생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설명하는 나도 죽을 지경이다.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을 설명할 때는 기가 쏙 빠져서 내 의식은 사탕 껍질에도 끌려다닌다. 

문 쪽에 떨어져 있는 비틀린 사탕껍질이 거슬린다. 

“얘들아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는 거지?” 

“쓰레기통이요.” 

“다 아네. 근데 교실에 왜 이런 게 버려져 있니?” 

침묵.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네.” 

몇몇이 대답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그 중 한명을 지적해서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보상으로 비타민을 주었다. 

나쁜 교육법이다.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기 위해 물질적 보상을 하면 다음에는 물질적 보상을 바라고 그 행위를 하게 된다. 

물질획득이 목적이 되면 물질이 끊기는 순간 그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맘으로 비타민을 주는 순간 뒷자리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키가 크고 야구복이 멋지게 어울리는 아이가 웃겨 죽을 거 같은 표정을 참다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아이들의 관심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니? 말해봐.” 

“아~ 아 아니에요.” 

내 표정이 굳어지자 눈치가 제법인 야구부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한다. 

“질외사정이요.” 

“뭐라구?” 

“질외사정하면 미혼모 문제 해결 된다고요.” 

‘맙소사! 쓰레기를 버리고 비타민을 받아 가는 아이들이 나누기에는 너무 차원이 높은 거 아닌가?’ 

아이들의 반쯤 닫혀있던 동공이 호기심으로 확장 되더니 그 모든 시선이 이번에는 나에게로 몰렸다. 

“뭐야? 뭐래? 뭐래?” 

“선생님 그게 뭐에요?” 

행여 설명을 못 듣고 수업이 끝날까 봐 조급해진 아이들은 당장 설명하라고 난리가 났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수업이다. 

호기심으로 인한 적극적인 질문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활력 넘치는 수업. 

하지만 난 이 적극적인 제자들에게 걸맞는 선생이 되려면 멀었다. 

기껏해야 아이들이 더 흥분하지 않도록 조기 진압을 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딱딱딱’ 

독재자의 총소리 같은 캐스터네츠 소리가 교실에 퍼졌다. 

입을 닫으라는 신호다. 

‘조용히 해.’ 라거나 ‘떠들지 마.’ 라는 말을 하기 싫어서, 아니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과 정한 약속이다. 

말은 정신을 조종한다. 

감정은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해. 하지마.’ 같은 강요나 제한의 말을 하면 기분이 탁해지고 몸이 무거워지며 의욕이 사라진다. 

내가 그렇다면 아이들도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떠들지 마.’라는 말 대신 케스터네츠를 친다. 

‘딱딱딱’ 

내 기분이 탁해지지도 않으면서 개구리처럼 와글거리던 소리가 신속히 사그라지고 완벽한 수업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정적이 감돌며 60개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레이저는 잘 맞으면 엄청 예뻐지는데…

특히 영혼을 낚아채는 갈고리 같은 아이들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의학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귀중한 빛을 뿜어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감당해 낼 수 없다. 

일단 막아야 한다. 

“다 눈감아.” 

나는 오른손의 빨강 캐스터네츠를 딱딱거리며 교실 뒤쪽으로 걸어갔다. 

성교육은 보통 수업과 달라서 첫 수업 때 선서를 하고 시작한다. 

학생은 진지할 것, 선생은 솔직할 것. 

나는 아이들이 어떤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더라도 일단 솔직하게 대답할 것을 약속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사회에서 성에 대한 지식을 잘못 얻는 경우가 많으니 ‘모든 궁금한 것은 나에게 물으라’고 얼마나 멋지게 큰소리를 쳤던가! 

하지만 아이들의 물음은 거대한 파도처럼 툭하면 내 인식의 범위를 벗어났다. 

난 의욕은 앞서지만 파도는 못 다루는 아마추어 서퍼처럼 번번이 아이들의 높은 질문들 앞에서 패대기쳐지곤 했다. 


보건실에서 키 재면서 “선생님 섹스해 봤어요?” 라는 질문을 하던 여자아이도 있다. 

이런 식으로 기습 질문을 받을 때도 난 순발력 있게 “그게 왜 궁금하니?” 라고 1차 방어 정도는 했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정액이 여자 피부에 좋다는데 맞아요?” 태연한 표정으로 아이가 물었다. 

6학년이지만 또래보다 몸집이 작아서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다. 

평소 말도 거의 없지만 무슨 말을 하던 표정 변화가 없는 아이다. 

말과 흥분을 동시에 하는 나의 2차 방어는 실패다. 

어디서 그런 말을 주워들었는지 왜 궁금한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상대 자체를 피하고 싶다. 

이럴 때 쓰기 딱 좋은 단어도 알고 있다. 

‘안물, 안궁…’ 

요즘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은 뜻을 새길 여유가 없어서 감정 없이 메시지만 전달하기에 제격이다.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 라고 거북이처럼 또박또박 말하다 보면 동시에 감정이 더해져서 그런 매정한 말은 웬만해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안물. 안궁’은 단순한 소리일 뿐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말할 수 있다.    

  

성교육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키스는 몇 살부터 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 아빠 생식기는 언제 엄마한테 들어간 거예요?” 

아이들은 아무 때나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고, 난 기습 질문에 종종 휘둘렸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감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행동이 따르는 능동적 감정과 격정만 일으키는 수동적 감정. 

그리고 능동적 감정으로 살 때 인간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유인이라고 했다. 

능동적으로 질문을 하는 아이들은 자유인처럼 거침이 없다. 

반면 수동적 감정으로 꽉 찬 나는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난파선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다 툭하면 뒤집히곤 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얼마 후 수동적인 학교도 발칵 뒤집혔다. 

능동적으로 정액의 영양가를 궁금해하는 여자아이와 질외사정으로 미혼모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야구부가 사귀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야구부 아이는 내 책상 앞에 서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질외사정’이라는 단어는 PC방에서 중학교 형들한테 들었다면서... 

“선생님한테 뭐가 죄송한지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수업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하단다. 

“수업시간 방해하는 애들은 너 말고도 많거든? 근데 누구도 선생님한테 와서 죄송하다고 하지 않던데?” 

아이는 인정도 저항도 아닌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보고만 있다. 

“너어~ 지금 심정이 어떤지 그리고 진짜 뭐가 죄송한지 천천히 생각하면서 적어봐. 그리고 정리되면 샘한테 갖고 와.” 

아이를 보냈다. 

10분도 안되어 야구복은 축구선수들이 골을 방어할 때 보이는 자세를 하고 다시 왔다. 

표정으로 환자로 왔음을 알리면서.    

  

그 사이 환자가 된 사연은 이랬다. 

교실에 올라가자 궁금함을 참지 못한 아이들이 야구부 주변으로 달라붙었다. 

누군가 뒤에서 매달렸고 그 위를 흥분한 아이들이 엉켜서 뒹굴고 난리가 났다. 

그 난장판에 야구복이 깔렸는데… 

하필이면 중요한 부위가 눌려서 너무 아프다며 생식기를 움켜쥐고 있다. 

중요한 부위? 

나는 잠시 혼돈에 빠졌다. 

성교육 시간에 우리는 수영복으로 가리는 부분을 중요한 부위라고 지칭하며 특별대우를 한다. 

왜 생식기를 중요한 부위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걸까? 

그리고 몸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위는 어딜까? 

생각에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중요한 부위를 확인하고 온 아이는 붓거나 빨갛지는 않지만 욱신거린다고 했다. 

담임이 출장 중이어서 야구부 코치한테 연락했다. 

코치가 오자 아이는 찌릿하고 욱신거렸는데 지금은 괜찮단다. 

코치는 뭐 이런 걸로 자기를 부르냐는 듯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04#     


난 갈색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작고 무능하게 느껴지는 나 스스로에게 지쳐 주저앉고 싶은 그 순간 경종처럼 나를 깨운 문자소리. 

기쁨이다. 

“선생님, 눈와요.”

창밖을 보니 세상 밖에서 눈이 팡팡 내리고 있었다. 

난 거대한 갈색 문을 밀어 제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메마른 화단에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피어있는 붉은 장미 두 송이는 눈꽃송이에 휩싸여서 더 아름답게 보였다. 

누가 그랬다. 

‘아무리 세상에 화가 나서 미쳐 날뛰고 욕을 하다가도 꽃을 본 순간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은 짧은 시간 안에 무서운 속도로 내렸고 화단에 하염없이 눈이 쌓이고 있을 때 교내방송이 들렸다. 

“우리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차를 몰고 퇴근 중에 언덕길에서 충돌사고를 냈습니다. 길이 많이 미끄럽고 위험하다고 합니다. 교내에 계신 선생님들은 이점 참조하시어 퇴근길 안전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대부분 선생들처럼 차를 학교에 두고 두 발로 정문을 나섰다. 

경사진 언덕길 중간에 전봇대를 들이받은 차가 그대로 멈춰 있다. 

차 안에도 밖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라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마치 어린 시절의 경험처럼 뇌의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각인되기 때문이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초조히 모여 있었다. 

시민을 구하는 영웅들처럼 버스 몇 대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뒤쪽으로 가서 앉았다. 

버스는 점점 사람들로 채워지고 내 앞에는 한 의자에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었다. 

엄마는 몸을 45도 틀어서 다리를 바깥쪽으로 내놓고 아이는 앞좌석 등받이와 엄마 사이에 서 있어서 가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예쁘게 화장을 한 엄마의 옆모습을 보면서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눈이 와서 더 신이 난 걸까!’ 

아이는 신나는 목소리로 엄마한테 자기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아이에게 형편없는 엄마가 한마디 한다. 

“좀 조용히 해. 침 튀잖아. 지저분하게…” 

엄마는 네일아트가 돋보이는 손으로 얼굴을 닦는다. 

손톱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는다고 형편없는 엄마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형편없는 엄마가 확실하다. 

짧은 순간 아이의 표정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처럼 창백해지더니 고요할 만큼 조용해 졌다. 

난 두 눈을 감았다. 

신이 오기를 바라면서…     


수치심은 한번 새겨지면 평생 그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다. 

어릴 때 새겨진 수치심은 수두처럼 신경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대상포진으로 나타나듯 사랑이 고갈된 그 곳에서 고통스럽게 나타난다. 

나의 어린 시절 버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새처럼 조그만 그 시절 버스에서 멀미를 했고 그때 나의 보호자였던 ‘모비딕’은 안경 너머 차가운 눈빛으로 지저분하다며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아직도 나는 안경 쓴 사람들한테서 그런 눈빛을 문득 느끼면 멀미가 난다. 

집에 오는 내내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이의 눈동자가 진자운동처럼 아른거리고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편의점으로 향했다. 

자기 경멸 같은 쓴 읏음을 지으며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모비딕’도 평생 막걸리를 마셨는데. 


시원한 요구르트 빛깔의 막걸리가 온몸으로 흡수되면서 아늑한 고요함이 나를 현실에서 멀리 데려가 주었다.

나는 배가 불러도 먹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술과 함께 몸속에 밀어 넣었다. 

술은 속수무책인 육체와 혼돈스러운 정신을 싸잡아 깊고 푸른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대가는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오롯이 내 몸으로 치러야 했다. 

겨울이라 더 뻣뻣해진 의족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며 식탁 밑에 놓여 있는 슬리퍼를 발에 끼워 넣었다. 

심장은 끝까지 제 도리를 다하고자 탁한 몸에 피를 뿜으며 숭고하게 뛰었지만 영혼까지 도달하기는 역부족이다. 

길이 좋지 않으니 출근길 조심하라는 얘기와 밤새 일어난 사건사고를 알리는 TV소리는 무방비 상태의 정신에 한 번 더 게릴라식 공격을 가했다.      


지하철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학교앞의 언덕길을 오르지 않고 서성거리고 있다. 

여기서 비탈진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학교가 나타난다. 

내가 단호히 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유는 커피, 커피...

커피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술과 커피! 

나에게 이것들은 뭘까? 

술과 커피를 안 마시고 어떻게 사냐며 매일 즐기는 대학후배가 있다. 

이 후배는 새벽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자기는 술 마시려고 건강관리를 하는 거라고 동네방네 떠벌리며 술도 운동도 당당하게 한다. 

우리는 만났다 하면 술을 퍼먹지만 술을 대하는 마음상태는 극과 극이다. 

이성적이고 중독적인 후배에게 커피와 술은 애정이 깃든 적극적 선택이지만 감정적이고 중독적인 나에게 커피와 술은 애증의 갈등이다. 

절제와 억압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나의 평생 과제다. 

억압은 물리적인 짓누름이라 일시적이지만 절제는 믿음이라 영원하다. 


나는 ‘내일부터 끊어야지. 오늘이 마지막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맥도날드 안으로 들어갔다. 

노랗고 거대한 유방을 가진 맥도날드는 현대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대리모 역할을 하느라 이른 아침에도 분주했다. 

구겨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시키고 한 손으로 쟁반을 들고 돌아서다가 나와 살짝 부딪혔다. 

쟁반 위의 커피가 출렁이고 햄버거가 움직일 뿐 사람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남자는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한 채 의자에 앉아서 능숙하게 햄버거를 물어뜯었다. 

나도 커피를 받아서 구석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향기롭고 씁쓸한 원하면서 원치 않는 따뜻하고 검은 것이 텅 빈 위장으로 들어갔다. 

천 번의 키스보다 더 감미로운 커피. 

짜릿한 속 쓰림과 함께 무심하게 뛰던 심장은 십대 때의 풋사랑이라도 만난 듯 동동동 뛰었다.     


목에 뱀을 두른 듯 끔찍했던 표정이 후퇴하고 전지적 능력을 가진 아이처럼 밝은 눈빛이 얼굴 밖으로 나오자 나의 핑크색 패딩부츠는 계속 쌓여가는 눈밭에 발자욱을 찍으며 가볍게 언덕길을 올랐다. 

드디어 나타난 운동장! 

내가 사진작가나 화가라면 운동장을 제일 먼저 담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가 기운이 없고 우울하다고 느낄 때, 학교 운동장을 보는 치유법을 왜들 개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영원의 시간동안 보고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뛰고 있는 운동장이다. 

우리 학교 운동장은 아프리카 초원처럼 멋진 질서가 있다.      


운동장의 왕자 6학년 남자아이들은 중앙의 골대를 차지하고 정상적으로 축구를 한다. 

다음 웅덩이가 없는 모서리는 5학년이 차지하고 스탠드 쪽으로 볼을 몰아서 달린다. 

그리고 4학년 아이들은 진흙 구덩이가 있지만 그래도 뛸만한 구석에서 공이 진흙에 들어가지 않도록 살펴가며 축구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겨우 벗어난 3학년은 학교 건물 뒤쪽 주차장과 화단 사이에서 뛰어야 한다. 

운동장 법칙을 모를 때, 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긁힌 팔다리를 나에게 내밀 때마다 화단 쪽에서 하지 말고 넓은 운동장에서 하라고 도대체 왜 화단 근처에서 축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나를 답답하다며 각별한 3학년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 참~ 운동장은 형아들이 차기 때문에 우린 여기서 해야 돼요.” 

우주의 원리처럼 완벽한 그 법칙.

[희망 박서연의 그림]


오늘같이 눈 오는 아침 각별한 그 아이는 우주 전체를 누비며 거침없이 공을 찬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유롭게 공을 차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순간 공이 뒷문 근처 맨홀 쪽으로 굴러오고 아이가 공을 쫓아 달려왔다. 

맨홀? 

내 머릿속에 맨홀과 연관된 사고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동시에 말이 흘러나왔다. 

“맨홀 미끄러우니까 뛰면 안 돼. 위험해. 뛰지 마. 동철아~ 맨홀 쪽으로 공차지 말라구.”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치는 순간에도 ‘정말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말은 계속 뿜어져 나갔다. 

내가 직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조심해’ 와 ‘하지마’ 이다. 

이 두 말은 굶주린 늑대 주둥이에 흐르는 타액처럼 무시로 분출된다. 

그렇게 맨홀 주변이든 운동장이든 신나게 달리는 아이에게 실속 없이 혀를 놀리고 나서 나는 사각지대로 향했다. 


3장 사각지대를 벗어나다   


[희망 박서연의 그림]


#05#     


특별실만 있는 본관 2층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학교는 특이한 기운이 감돈다. 

아이들의 영혼이 여울거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공포 체험도 귀신의 집보다 작은 비상등이 켜있는 학교의 빈 교실이나 과학실, 도서실 이런 곳이 더 무섭다.

복도 끝에 과학실은 리모델링 예정이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기척이 느껴졌다. 

여울거리는 그런 막연한 느낌이 아니다. 

복도 쪽에 쌓아 놓는 사용하지 않는 수납장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현관 중앙으로 달려가서 8개의 스위치를 모두 올렸다. 

복도가 밝아지고 조그맣고 새하얀 아이가 총총총 다가왔다. 

어제 본 꼬부랑 아이다. 

어제와는 달리 허리를 꼿꼿이 펴고 없는 사람인 척 지나간다. 

내 입에서 또 ‘그 쪽은 위험해’ 라거나 ‘구석에서 뭐 하지 마’ 라는 말이 분비되기 전에 나는 몸을 사각지대로 돌렸다.     

 

컴퓨터를 켜고 전교에 메신저를 보내자 하나 둘 어슬렁거리며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이도 왔다. 

좀 전에 못 본 척 내 앞을 지나간 아이, 하얀 아이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소리 없이 들어왔다. 

아이는 말없이 뒤돌아서더니 옷을 어깨까지 올렸다. 

하얀 등 여기저기 붉고 푸른 멍이 드러났다. 

“어… 아프겠다. 어쩌다 이랬어?” 

“엄마가요.” 

패스츄리처럼 결이 갈라지는 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난 메아리처럼 엄마라는 말을 되뇌면서 등 전체에 타박상 연고를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펴 바르고 다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느릿느릿 옷을 내렸다. 

끝내 아이에게 해줄 말은 떠오르지 않고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트레스를 받은 엄마 곰이 졸졸 따라오는 자기 새끼를 갑자기 물어뜯는 장면이...


그때 컴퓨터 메신저가 깜박거렸다. 

보건교사들끼리 주고받는 미스리 메신저다. 

발신자 문수정! 

대학병원에서 10년간 근무하다가 3년 전부터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근무 중인 후배 보건교사다. 

수정이 보낸 메시지는 인사도 없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요즘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힘들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죠. 

막상 보니 힘든 정도가 아니에요. 

보건실에서 만나는 애들은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위태롭게 느껴져요. 

요즘 저는 다시 응급실 간호사가 된 기분입니다.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쓰러지는 아이도 있고요. 

급히 오라는 호출을 받고 교실로 달려가니 아이가 창백한 얼굴로 실신하기 직전이더라구요. 

과호흡인데 상태가 안정되지 않아서 119까지 불렀습니다. 

어제는 눈이 오고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아이를 3명이나 병원 이송시켰어요. 

병원에 있다가 학교로 와서 나이트 근무 없다고 좋아했는데 어디가 불편한지 말도 안하고 인상만 쓰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지쳐가고, 환자 없는 틈틈이 보건교육, 주번지도, 자율학습지도까지 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학교라는 게 참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편하게 학교생활 하는 법도 터득했어요. 

애들이 오면 스핑크스처럼 험악하게 질문을 해서 애들을 다 내쫓고 보건실을 전용 사무실처럼 쓰는 경우도 봤거든요. 

보건교사로 3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제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어요. 

근데요. 오늘 정말 무서운 일이 생겼어요. 

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힘드네요. 

이 자리에서 감당해야 하는 전문적인 업무의 기준은 어디까지 인가요? 

십년 넘게 이 일을 하신 선배님께 묻고 싶습니다. 

직업으로서 보건교사만의 자부심은 있으신가요?

     

수정의 메신저를 읽고 난 마음이 심란해졌다. 

무섭다고 말한 게 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건교사들은 웬만해서 무섭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수백명 이상의 아이들이 모인 장소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저 그런 자잘한 날들 속에 목숨이 걸린 문제를 치른 무용담 한두 개쯤은 다들 갖고 있다. 

학교에서 일인 의료인으로서 모든 결정을 홀로 내리고 혼자 움직이는데 그럴 때 허둥대며 어린애처럼 굴면 자부심은커녕 자괴감만 밀려온다. 

세월이 흐를수록 옆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까지 축적돼서 얼굴은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찌그러지고, 나를 향해 오는 소리는 모두 사이렌 소리로 들리는 정신적 장애가 생겨도 겁먹은 티는 내지 않는다. 

가끔 술기운을 빌려 직장이 너무 무섭다고 칭얼대다가 잠이 드는 내게 후배가 묻는다. 

십년을 넘게 근무한 보건교사로서 이 일에 자부심이 있냐고?     

 

나는 오늘 해야 할 일 목록 맨 아래 ‘수정샘 전화’라고 적어 놓고 식당으로 갔다. 

사각지대는 점심시간도 남모르는 속사정이 있다. 

남들처럼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면 융통성 있는 누군가가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많이 오니 식사를 좀 일찍 하시죠?” 라는 제안을 한다. 

4교시에 밥을 먹고 있으면, 원칙이 철저한 누군가가 “선생님. 점심시간 좀 지켜주시죠?” 라는 요구를 한다.

나는 보건교사 17년 차에 자부심은커녕 부적응만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축구하다가 귀를 맞은 아이가 괴로운 표정으로 왔다. 

공 맞은 아이는 언제나 오지만 무엇을 해줘야 할지 17년 내내 고민이니 이것도 부적응. 

그리고 다리에 쥐가 났다며 5학년 남자아이가 절뚝거리며 왔다. 

부적응자는 그런 아이들이 오면 읽어보라고 코팅해 놓은 것을 건네 주었다.   

  

【성장기 어린이들이 쑥쑥 잘 자라기 위해서는 칼슘과 마그네슘 섭취가 중요합니다. 

칼슘과 마그네슘은 성장에도 중요하지만 근육 수축에도 중요하니까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칼슘이 세포 안으로 들어와 근육을 수축한 후 마그네슘이 들어와야 칼슘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근육이 이완되는데 만약 마그네슘이 없다면 칼슘은 오도 가도 못하고 세포 안에 갇혀서 과도한 근육 수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쥐는 근육경련인데 심장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면 아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칼슘은 저장하지만 마그네슘은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마그네슘이 풍부한 녹색채소와 등푸른생선, 콩을 매일 섭취해야 합니다.】  

    

아이가 소리 내서 읽는 동안 나의 왼쪽 눈 밑이 서너 번 경련이 일어났다. 

마그네슘이 고갈된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밥 먹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속이 허전하다. 

냉장고에서 파인애플이랑 코코넛 건과일 봉지를 꺼냈다. 

파인애플 한 봉지를 다 먹었는데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코코넛도 뜯었다. 

입을 열고 코코넛 쪼가리를 봉지째 털어 넣자 널브러져 있던 정신이 형체를 추스렸다. 

난 고무장갑을 끼고 컵을 닦기 시작했다. 

두 개 정도 닦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2학년 2반 이유진. 

자기 발목을 보여준다. 

복사뼈가 건조해져서 하얗게 일어났다. 

버슬거리는 것이 아픈 모양이다. 

고무장갑을 벗고 가느다란 발목에 핸드크림을 발라주었다. 

평소 오후에는 아이들이 잘 안 오는데… 

설거지 하거나 양치를 하면 아이들이 온다. 

유명한 머피의 법칙이다.      


그리고 올 것이 왔다. 

따릉따릉~ 짧은 교내벨소리. 

“선생님. 바쁘시죠? 소독 언제해요? 정수기 주변에 벌레가 있어요. 업체 오면 얘기 좀 해주세요. 수고하세요.” 

상냥하게 말하고 끊긴 전화. 

나는 ‘오늘 이 순간은 영원할 것이다.’ 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의도적으로 떠올렸다. 

벌레가 있다는 것을 소독업체에 말해 달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해도 이 순간을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모습인가?      


나는 차이코프스키 베스트 곡을 틀고 아이들 방문기록을 보건전산일지로 옮겼다. 

전교생 1200명. 

오늘은 72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고 갔다. 

병원에 갈 이유는 없지만 케어가 필요한 사각지대 유형의 아이들이다. 

유튜브 화면아래 좋아요 73,840, 싫어요 2,208 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나는 2,208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물론 차이코프스키의 베스트 곡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태여 유튜브까지 찾아와서 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척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권태롭고 긴장된 시간이 흐르는 모순적 공간에서 자부심은커녕 적응조차 힘에 부쳤다.     

 

나는 오늘 할 일 마지막 목록에 적혀있는 일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눌렀다. 

수정은 문자로 답했다. 

“지금 경찰서에 있어요. 정리되면 연락할께요.”  

난 수정을 만나기 전까지 자부심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부심! 자기와 관련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보건실이라는 공간에서 자부심을 뚜렷이 느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컨트롤할 수 없는 문어발식 업무들 때문이다. 

보건이라는 광범위한 단어에 교묘하게 얽힌 업무들은 서로를 수시로 방해 하며 나의 뇌를 일시 정지시키곤 했다. 

나는 나에게 할당된 업무분장표를 들여다보았다. 

【응급처치 및 외상치료, 보건위생교육, 성교육관련업무, 약물오남용, 금연교육, 감염병관리, 양성평등, 학생건강기록부관리, 학교안전공제회, 학교행사업무, 예방접종, 각종검사, 정수기수질검사, 학교소독, 공기질 관리, 부상자후송, 보건관련 나이스작업, 체격, 체질검사 등】 이라고 적혀있는 업무분장표를 떼었다. 

뒷면에 새하얀 무한한 공간이 드러났다.   

   

내 나이 마흔다섯. 

누구나 세상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는 직장을 그렇게 내 인생에서 떼어냈다. 


#06#     


일주일 뒤 수정과 만났다. 

수정은 유럽 귀족의 서재 분위기가 풍기는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청보라색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은은한 상아색 원피스가 보기 좋은 수정의 몸을 감쌌다. 

날씬한 허리에는 골드펄이 반짝이는 벨트가 느슨하게 매어 있다. 

“다행이다. 여전해서.” 

난 수정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는 칵테일을 한잔씩 시켰다. 

수정은 코스모스를 난 코스모폴리탄을. 

‘코스모스’는 복잡한 우주를 간단하게 설명한 칼세이건의 책처럼 칵테일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선보이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바텐더가 설명했다. 

코스모스를 마시면서 우주의 조화와 신비로움을 느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정이 길쭉한 유리잔에 초록별처럼 반짝이는 코스모스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코스모스와 코스모폴리탄이라… 칵테일 이름이 거창하네요. 

지금까지 좋거나 슬픈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한 번도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은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독주도 마실 거 같아요.” 

“그래? 서른아홉 되도록 맨 정신으로만 살았단 말이야?” 

“전 취중진담이란 말 믿지 않거든요.” 

“고대 수메르인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술 마시면서 의논을 했대. 

그리고 다음 날 맨 정신으로 한 번 더 결정을 내린대. 

그 얘기 들었을 때 음~ 고대 문명 발상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어. 

참 지혜롭지 않아?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를 알고 있었던 거 같아. 

근데 샘은 술이 왜 그렇게 싫은데?” 

“술이 싫은 게 아니라 또렷한 게 좋아서 그래요. 

술은 뭔가를 흐릿하고 추하게 만드는 거 같거든요. 

근데 선생님은 어떤 때 술을 마셔요?” 

“음… 가슴을 열고 밑으로 쭉 내려가고 싶을 때… 

오로지 술만이 잠겨 있는 내 가슴을 열 수 있는 부분이 있었거든. 

난 술을 통해서 연애도 하고 싸움도 하고 우정도 나누고 그렇게 살았어. 

수정샘도 가끔은 술에 가슴을 좀 맡겨봐. 그 일은 잘 해결됐어?” 


수정은 대답 대신 코스모스가 담긴 칵테일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난 코스모스를 한 모금 마셨다. 

테킬라의 풀향과 감귤향이 뒷맛을 향긋하게 남겼다. 

수정은 칵테일 잔의 가느다란 스템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이 집 분위기 어때요?” 

“음~~주인이 보르헤스하고 단테를 좋아하는 사람 같아. 

천국 그곳은 도서관과 같을 거라고 했던 보르헤스… 

그리고 단테가 지옥문 앞에 ‘여기 들어가는 자 희망을 버릴 지어다.’라고 붙어 있다고 했잖아.” 

나는 서재처럼 꾸며놓은 실내 분위기와 ‘이곳은 천국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입구에 적혀 있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근데 이 집 주인 참 재치 있지 않아요? 

희망 하나로 천국을 만들어 버렸잖아요.

‘여기 들어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 지어다’ 

지옥 앞에 붙어 있다는 그 말을 

‘여기는 천국이니 희망이 있는 사람만 들어 오시오’ 라는 말로 바꿔서요. 

천국과 지옥을 희망으로 결정한다는 생각이 참 심플하고 멋져요. 

지옥의 조건. 희망이 없는 것. 

반대로 말하면 희망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지옥이 아니라는 말이잖아요. 

누구나 지옥을 피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왜 희망을 갖지 않고 지옥에 사는 걸까요?” 

“희망이란 게 갖고 싶다고 맘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대. 

희망이 없는 사람. 희망이 있는 사람, 희망은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 

“희망은 있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어떻게 희망이 있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을 수 있죠?” 

“글쎄. 생각에 힘이 없어서 그렇겠지. 

생각에 힘이 없으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수정은 새싹 같은 빛깔의 잔을 들어 올리고 빤히 쳐다보다가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저 요즘 지옥에서 일해요. 

요즘 고등학교는 지옥이거든요. 

희망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있어요. 

희망이라는 무형의 자산은 정신력으로 소유하는 건데 설마 아이들이 자기 의지로 희망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지옥에 있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누가 아이들의 희망을 뺏은 걸까요?” 

“글쎄. 그 아이 입장에서 가장 파워 있는 사람이겠지.” 

“그 때… 일주일 전에 우리 학생이 자살을 했어요. 

가끔 보건실에 와서 잠도 자고 얘기도 하고 그러던 앤데… 

별다른 정서행동 상의 문제는 없었거든요. 

제가 경찰서까지 갔던 이유는 저한테 쪽지를 남기고 가서 그런 거예요.” 

수정은 중간 부분이 매직으로 검게 가려진 편지를 내밀었다. 

“발견했을 때부터 그렇게 칠해져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문수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재훈이예요. 

샘이 자살예방 담당이시라면서요? 

비만예방에 성폭력예방에 자살예방까지… 

그런 것들이 교육으로 예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샘 골치 좀 아프시겠어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 샘이 상처 받지 않길 바래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거든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이렇게 탈출하는 저를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 줄이 검은 매직으로 그어져 있었다. 

샘한테 진짜 당부드릴 게 있어요. 

선생님은 결혼하실 때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하세요. 

제가 어른들을 보니까 학벌, 재산 이런 조건들 보고 결혼한 사람보다 서로 취향이 통하고 성격이 맞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거 같아요. 

서로 계산하듯 맞춰서 결혼한 사람들은 부모가 돼도 자식한테 계산을 하거든요.  

샘은 빨간 머리 앤에서 앤과 길버트처럼 집 앞에서 서로의 관심에 대해 한참 동안 서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어요. 

저는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유능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휘해 봅니다. 

그러니 이것을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마시길 바래요. 

안녕히 계세요.

       

“빨간머리 앤?” 

“그거 기억나요? 

작년 봄에 우리 도서모임에서 ‘빨간머리 앤’ 했던 거? 

그 때 재훈이가 저랑 그 책에 관해 얘기 좀 했거든요.

재훈이는 앤 마니아였어요. 

시리즈가 총 10권인데 그걸 원서로 다 읽었더라고요. 

근데 그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끝이 안 좋다고 해서 좀 충격 받았는데… 

재훈이까지 그렇게…” 


4장 드림캐쳐를 넘겨받다     


#07#     


2015년 2월. 

사각지대에서의 마지막 날. 

학교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의 핫 플레이스인 보건실은 여전히 분쟁적이고 중복적이며 권태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소염제를 먹어도 가라앉지 않던 염증과 몇 달동안 파들거리던 눈떨림이 사표를 내고 완전히 사라졌다. 

금이 간 모서리에 붙여놓은 약장의 투명 테이프는 끝이 조금 더 벗겨졌고 가장자리 꽃이 떨어진 거울도 여전히 벽에 걸려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한순간만 나의 것이었던 그것들에 의해 나는 피로했고 우울했나보다. 

비록 자부심도 찾지 못하고 떠나지만 만약 이일을 다시 한다면 꼭 필요한 소명은 무엇일까 정도는 정리하고 싶다. 

후배들이 이 직장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안녕 후배님들! 

난 3년만 기다리면 연금이 나온다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는 선배 보건교사야. 

난 말이야~ 친근함을 표현하고 싶을 때 말을 놓는 습관이 있어.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가까운 사람의 조언으로 들어줘. 

보건실은 몸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곳이야.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0차 의료기관이라고나 할까? 

아프지 않아도 심심하거나, 불안하거나, 불편한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다가 여기로 오기도 해. 

아이들이 오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거 같아. 

나 고등학교 때 생리통이라고 하고 난생처음 보건실에 갔는데 그때도 진짜 이유는 생리통이 아니었어. 

거기에는 청소년 소설 한 권정도 나올 만큼 섬세하고 미묘한 설명이 필요해. 

그걸 느꼈는지 보건선생이 얼마나 쌀쌀맞게 대하는지 이후 졸업할 때까지 가지 않았어. 

여기서 일하는 동안 정말 아픈 아이보다 그런 복잡한 심리가 감춰진 아이들이 훨씬 힘들었어. 

아마도 인간이 영혼이란 걸 가진 존재라서 그런 거겠지. 

신규 때는 몇 학년 몇 반 이름이 뭐니? 어디가 아파? 소리를 내서 하나하나 물어봤어. 

많을 때는 하루에 백 번 정도 어디가 아파? 이름이 뭐야? 라고 묻다가 어느 날 목에 볼록한 혹이 생긴 거야. 

그걸 치료하고 목에 밴드를 붙인 다음 날 방명록을 만들었어. 

그 때부터 아이가 오면 ‘일단 적어.’ 라고 낮은 소리로 한마디만 했지. 

아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고 치료를 한 적도 많아… 

나무늘보와 비슷한 속도로 이름을 적고 나서 아픈 곳을 적지 않고 빤히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그 작은 칸에 다 적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교 보건실에서 꼭 필요한 소명은 기다려 주는 것. 

보호자 없이 오는 아이들이 자기표현을 충분히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능력이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자주 오는 애들 대부분이 일상적인 안정이 안 되는 아이라서 사실 조건 없이 그냥 잘 해주고 싶지만… 

너무 자주 오면 슬슬 지겨워질지 몰라. 

언젠가 딸아이가 그러더라. 

“엄마 보건실에서 정말 신경 써야 하는 애들은 그 애들 아니야? 정말 아프면 병원을 가겠지.” 


두 번째 소명은 판단 없는 수용. 

판단 없이 수용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에 버금갈만한 심리적 기술이 필요해. 

근데 잡다한 업무분장과 그 많은 공문을 앞에 두고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야. 

보건실에서 일지에 적는 순간 부모와 담임에게 알람으로 그 내용이 전달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을 거 같아. 

그럼 아마 꾀병쟁이들이 대폭 줄어들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멘탈갑! 

사람은 자기가 직접 처한 세상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의 행복이나 불행을 예측하기도 해. 

늘 아프다는 애들만 보다 보면 온 세상이 병든 것처럼 어느 순간 정신이 침울함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그러니 보건교사는 우울함에 전염되지 않는 맨탈이 필수. 


여기까지가 보건교사를 할까말까 갈등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선배로서의 조언이야. 

그리고 여담들… 

평소 보건실에서 휴식을 자주 하던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내가 사표 낸 것을 걱정하며 조언을 하시네. 

3년만 버티라구… 

사직서를 냈을 때 나는 또래 선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어. 

하지만 연로한 인생 선배들은 방향이 다르더라. 

이 좋은 직장을 왜 관두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난리였지. 

같은 결정이라도 나이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다른걸 보고 내가 나이 들면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걱정이 잠시 엄습했지만… 

문제는 이 순간이 너무 힘들다는 거야. 

동료들과 당분간 이런 대화를 해야 할 텐데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우선 거침없이 맘 속을 말해볼께. 


“일이 나랑 안맞았거든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외로웠어요. 

다들 일이 편해서 좋겠다고 할때마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꼈거든요. 

부책임자한테 미안해서 일이 있어도 조퇴도 못하고 점점 복지와 건강관리 수준은 높아져서 해야 할 일은 불어나는데 전문가가 해야 한다며 건강과 관련된 온갖 일 다 시키지만 진짜 전문가로 인정받는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이제와서 말인데 이 세상에 건강과 관련 없는 일이 몇 개나 있겠어요. 

코걸이 귀걸이 모든게 건강과 연결되잖아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런게 점점 더 힘들더라구요.” 


이것이 팩트. 

하지만 핑계투성이 같아 끝인사로 맘에 들지 않는다. 

혼자서 이런 저런 대답을 하다가 이렇게 말하기로 했어. 

“그냥 놀고 싶어서요.” 

대답을 하고 나니 심플하고 멋진게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네. 

복잡한 세상을 심플하게 사는 방법은 이거였나봐. 

심플하게 말하기!

후배님들! 

보건실은 외롭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어. 

하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백만번이나 있는 축복받은 공간이기도 해. 

그러니 일하다가 여기저기 치여서 문득 자기굴욕감이 느껴져도 마음의 문을 너무 세게 닫으면 안돼.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늘 있거든.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뒤뚱거리는 오리 같은 2월. 

해가 빠지고 수묵화처럼 사물이 흐릿해지면서 학교는 고요함에 휩싸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보건실 갈색 문을 잠그고 돌아섰고 순간 몸이 오싹해지면서 움츠러들었다. 

복도 끝에서 눈 오는 날 아침처럼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놀란 나와 달리 복도 끝 인기척은 기다렸다는 듯 성큼 다가와서 한쪽 눈이 감겨 있는 고양이를 대뜸 내민다.

등이 시퍼랬던 하얀아이다. 

“선생님! 나비가 아파요.” 

“무슨 고양이니? 고양이 눈이 왜 그래?” 

“눈은 원래 이래요. 나비가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요. 좀 고쳐주세요.”  

“네가 키우는 거니? 엄마한테 얘기해서 동물병원 데려가야지.” 

“안돼요. 학교에서 몰래 키우는 거예요. 엄마 알면 큰일 나요. 엄마는 고양이 손도 못 대게 한단 말이에요.”

“어디서 키우는데? 너, 설마.” 

아이는 과학실 사물함에 고양이를 넣어 놓고 아침마다 밥을 주면서 키우고 있었다. 

사물함이 더러워지면 옆으로 옮겨가며 키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이제는 당신 차례라는 듯 고양이를 내게 들이밀고 있다. 

그 때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채워놓고 다니는 뒷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난 최근 통화기록을 찾아 버튼을 누르고 지금 상황에 대해 낱낱이 보고했고 동생은 유능한 해결사처럼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했다. 

“데리고 와.” 


나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인 운동장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리고 17년 동안 편해서 좋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으나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던 직장을 벗어났다. 

조수석에 웅크린 외눈박이 고양이를 보면서 앞으로는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으며 살 것을 맹세했다.      


#08#     


도로는 계속 먹어야 하는 저주를 받은 사람의 내장처럼 꾸역꾸역 밀려드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머리 위에는 두꺼운 회색 구름이 바위처럼 육중하게 떠있고 독특한 구름 때문인지 거리는 우주전쟁이 나서 피난길을 떠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햇살 한줄기 없는 흐린 날이었지만 난 음식점 문을 열기 전에 선글라스를 썼다. 

동생은 한쪽 팔로 수저를 놓고 있다. 

마비된 왼쪽 팔은 썩은 생선처럼 늘어져서 동생이 움직일때마다 살짝 출렁거렸다. 

“몸은 어때?” 

“그냥 그래. 한쪽 팔로 살다 보니 좀 불편한 정도?” 

유방암이 겨드랑이로 퍼져서 팔이 마비된 것을 담담하게 말하는 동생을 보면서 난 선글라스 쓰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운전은?” 

“그냥 천천히 했어. 

예전에 운전 느리게 하는 사람들 엄청 욕하면서 다녔는데. 

지금 욕먹으면서 운전하는 그 느린 차가 바로 내가 돼버렸어. 

세상이 얼마나 앞뒤가 맞게 짜여졌는지… 

살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죽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이해할 일이 생기는거 같아. 

고양이는?” 


고양이를 말할 때 동생의 표정이 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차에. 키울 수 있겠어?” 

“그럼, 나 고양이들 엄마잖아… 

나 요즘 마음이 아주 편해. 

아무 걱정이 없어. 처음이야. 

이렇게 마음이 편했던 시간들은…

그동안 뭘 그렇게 걱정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어. 

어제 아빠한테 갔다 왔어. 

내가 한손으로 꾸물거리니까 답답하다고 짜증내시더라. 

그럴 거면 오지 말래.” 

“말도 안 돼. 그게 암에 걸린 딸한테 할 말이니?” 

“아빠도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내가 병에 걸린 게 나보다 더 무서워서 보기가 힘든 거지. 

아빠가 그러는 거 이해할 수 있어. 

화가 잔뜩 난 불안한 어린애니까. 

아빠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멈춰있기 때문에 온 세상이 끝없이 자기만 이해하고 사랑하길 요구하는 거야. 

애정 결핍이니까. 

암에 걸린 딸도 예외는 아니지. 

우리도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만만치 않잖아.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한테 그 상처를 퍼붓고 있을 거야. 

그 대상은 자기거나,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도 아니면 불특정 다수가 되겠지.

애정결핍이 그렇게 무서운 거야.”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과 가까워진 동생은 모든 걸 이해하고 초월한 철학자처럼 편안해 보였다. 

덩달아 맘이 편해진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빈속에 알코올이 식도로 넘어가면서 황홀감이 솟아오르고 술은 능숙하게 우울함을 밀어냈다.  

창밖에는 빗물이 삶의 비애를 수긍하는 여인의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죽음을 선고받을 때 나오는 첫 번째 반응은 부정과 분노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마치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사람처럼 만족해했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비로소 악몽에서 벗어나 삶에 안도하는 사람이 바로 내 동생의 슬픈 자화상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슬픔이 올라오지 않도록 술을 한 모금 더 밀어 넣었다. 


잠시 후 동생은 비닐 가방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안에는 하얀 깃털과 보라색 깃털이 매달린 동그란 드림캐쳐가 들어있었다. 

“인사동에도 있더라” 

동생과 함께 여행을 갔던 곳. 

발리에서 처음 본 드림캐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이미 많은 기념품들로 꽉 찬 가방에 드림캐쳐의 자리는 없었다. 

동생은 ‘발리에서 놓친 드림캐쳐를 인사동에서 잡았다’며 내 앞에 놓는다. 

비장하고 독창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동생이 나에게 넘겨주는 삶의 가치인걸까? 


나는 드림캐처의 부드러운 깃털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언니 너는 또 다른 인생 시작이잖아. 

좋은 꿈은 좋은 꿈을 꾸게 할 거야. 

과거에 매몰되지 말구 진짜 원하는 꿈을 이루길 바래. 

꿈은 이루어진다잖아.” 

“넌 꿈이 있었니?” 

“그럼, 나 원래 작가가 꿈이었어. 고등학교 때 몰래 써 논 멜로 소설도 있었는걸.”

정말 몰랐다. 동생에게 그런 꿈이 있는 줄…

슬펐다. 

말문이 막힌 내 머릿속에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떠올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입술 사이로 다음 노래 구절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노래와 슬픔은 중간에 목구멍에서 술에 쓸려 내려갔고 술은 고통스러운 영혼 사이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내 몸은 지금 아픈 데가 없다. 

평소 나는 과로와 고통을 피하려고 철저하게 계획한다. 

근데 이 고통은 어디서 온 걸까? 

모르겠다. 

한잔 더. 

나는 비범하고 매혹적인 술잔을 든 채 동생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잔을 통해 마주한 우리 얼굴에서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나왔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기로 맹세까지 했지만 행복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니 이 방법 말고 아는 게 없다.

우리는 제법 많이 웃었다. 

술은 죽음에 대한 승리였고 무력함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화사한 색채의 마술이었다.      


25년 전 엄마는 유방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생겨서 한쪽 유방을 완전히 제거했다. 

한쪽 유방이 없어도 엄마는 아마존 여전사처럼 힘차게 살았다. 

5년 이내에 재발하지 않으면 안심해도 된다는 5년이 되는 해. 

안심하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 엄마의 눈동자가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희비극처럼 유방암 재발을 면하는 행운과 췌장암 발생의 불운이 나란히 엄마에게 다가왔다. 

죽을 때까지 삶을 움켜쥔 엄마는 처절한 육체 싸움만 하다가 1999년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 해에 장렬히 전사했다. 

다행히 지구멸망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의 수호천사만 희생의 제물로 사라졌다. 

난 달리는 차 안에서, 건물 비상구 계단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면서 상실감을 견디다가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 가지 기술’을 읊조리며 애도식을 치르고 평소처럼 먹고 살았다.     

-한 가지 기술-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라…>  


이후 반갑지 않은 암세포가 툭하면 우리 집 여자들에게 들러붙었다. 

첫째 난소암과 자궁암, 둘째 난소암, 막내 유방암. 

딸 다섯 명 중 세 명이 모두 40대에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해치웠다. 

넷째인 나는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그 막강한 유전적 소인에 대한 주의를 들어야 했지만 사실 우리 자매들에게는 유전보다 강력한 행동패턴이 있다. 

우리는 목구멍에 유리조각이 박힌 사람들이라서 언제나 마취제가 필요했고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 어른이 되자마자 스스로를 마취시키며 사는 버릇을 들였다. 


행복한 사람에게도 불행한 사람에게도 가을은 언제나 기품 있게 인간을 찾아온다. 

나는 말티즈 테리와 근처 호숫가로 새벽 산책을 나갔다. 

그 때 맞은편에서 오던 개가 갑자기 전력을 다해 도망가더니 ‘위험! 진입금지’ 경고가 붙어 있는 공사 중인 다리에 자리 잡고 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줄을 놓친 주인은 애타게 불러보지만 공포심에 사로잡힌 개는 군데군데 부러진 다리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딱히 잘못한 거 없이 미안해진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서럽게 울고 있는 개를 안타까움으로 지켜보았다. 

내 곁의 테리는 미안함은 커녕 바닥에 있는 나뭇가지에 코를 박고 식물 연구 중이다. 

산책만 나오면 테리는 다른 개들은 본체만체 나무와 돌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 위대한 몰입을 존경하는 맘으로 나는 테리를 ‘박사님’이라고 부른다. 

[테리]


개를 놓친 주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개를 무서워해서 그런 거예요.” 

나는 연구논문이라도 쓸 기세로 그루터기를 탐색하고 있는 박사님을 끌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지만 한참동안 개 울음소리를 들으며 걸어야 했다. 

곡소리처럼 서러운 개소리가 호숫가 전체에 스며들었고 난 슬픈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눈물이 솟구쳤다. 

거짓 공포를 피하려고 목숨이 위험한 곳으로 도망친 그 행동이 너무 친숙해서 특별한 노력 없이 나는 그 개의 행동을 이해했다. 

두려움을 피해 탈출한 마지막 비상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를 다리 위라니… 

나는 혼비백산 도망가서 울고 있는 개를 보면서 아무도 도울 수 없는 곳에서 홀로 떨고 있는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을 만나면 동생의 이름, 나이, 질병명까지 정확히 말하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보다시피 나는 명백한 유신론자다. 

나같이 신을 만나지 못한 유신론자가 제일 안타깝다. 

불운한 유신론자는 차선책으로 신 다음 파워가 있는 질병에 끌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질병과 종교는 비슷하다. 

질병도 두려움을 없애주고 현실의 무거운 짐을 충분히 덜어준다. 

그래서 평생 거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살던 동생이 도망간 곳이 질병의 처마 밑이다. 

그렇게 질병은 사이비 교주처럼 우리 자매들에게 신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5장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09#


2016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동생과 나는 병원입구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병원주차장 입구가 꾸역꾸역 모여드는 차들로 막혀있는 걸 보면 우리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한참 후 주차장을 벗어나면 진료를 기다리느라 또 한참을 보내야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황금 같은 시간에 병원 지붕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다니. 

평일 낮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의학의 첨단을 달리는 대학병원이라면 호모 사피엔스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사회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동생이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우리는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찜질방으로 갔다. 

그날따라 그곳은 아픈 사람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었다. 

타오르는 황금빛 꽃불에서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며 사람들은 앞다퉈 환부를 노출했다. 

동생도 자연스럽게 마비된 팔과 가슴을 드러냈다. 

옆에서 검게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쬐고 있던 노인이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됐냐며, 애는 없냐며 안타까워했다.

“애 없어요.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한 게 있다면 애를 낳지 않은 거예요.” 

가늘고 떨리는 소리임에도 확신이 묻어났다.      


암세포들은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지 빠른 속도로 동생의 온몸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동생은 쇄골 아래 마약패치 3장을 붙이고 평상 위에 눕더니 약기운이 돌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오래 살고 싶단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 

시간의 길이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근데 돌이켜보니까 하루도 온전한 감각으로 산 날이 없는 거 같아. 

단 하루라도 건강하게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렷하고 여성스럽게 살고 싶어. 

언제부턴가 난 여성스러움 자체를 거부하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까 여성스러운 게 가장 위대하고 신비롭게 보여. 사는 내내 만취 상태에서 역주행을 한 느낌이야. 

허구헌날 이미 지나간 것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느라 단 한 번도 내 앞에 있는 게 뭔지 또렷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세상은 그저 그 순간인데… 

정말 후회되는 건 살면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못했다는 거야. 

억지 사랑으로 질투심에 미치고 결혼까지 해봤지만… 

결혼해서도 오로지 내 고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을 나누는 게 내가 사랑을 확인하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난 사랑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 

근데 지금 나더러 선택하라고 하면 건강하고 혼자인 기나긴 평생보다 짧아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할 거 같아.”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모든 걸 포기한 상황에서 가늘고 흰 머리카락을 꽃불 바람에 날리며 동생이 마지막까지 탐을 낸 것은 오로지 사랑이었다.


2016년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11월 29일. 

난 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한손은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그곳으로 가고 있다. 

핫플레이스도 아닌데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이 모이는 곳. 

대학병원.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고 동생은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동생은 육지와 사랑에 빠진 물고기처럼 창밖을 향해 입술을 뻐끔거렸다.   

<아티스트 송연주 그림>     

 

시간이 촉박하지 않은 내 눈에도 이 세상 어느 구석을 보아도 정겹지 않은 곳이 없다.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반짝거리고 세상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이었다. 

한 달 전 갑자기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나타나서 대한민국은 다른 때보다 어수선했지만 혼돈과 부조리마저 삶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서울대 응급병동에서 의사가 동생의 심장에 찬 물을 빼고 나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할 거 같다고 조언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를 하고 있었다. 

난 짧은 담화를 보고 나서 국립중앙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으로 갔다.      

호스피스 병동 의사는 동생의 폐에 있는 거대한 암세포 사진을 보더니 입원자격이 된다고 말하며 서류를 꺼냈다. 

나는 동생의 연명치료를 포기하는 사인을 하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더니 병원 현관쯤에서 그 뜨거운 것은 온천이 터지듯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난 현관 앞에 주저 앉아서 어린애처럼 소리 내서 울었다. 

얼굴에선 눈물이, 몸에선 식은땀이 순식간에 솟아서 온몸이 한바탕 젖었다. 

잠시 후 뜨거움은 오한으로 바뀌고 난 덜덜 떨며 자매들이 있는 서울대 응급병동으로 갔다.     


동생은 통유리로 만들어진 복도에서 휠체어에 앉아 꾸벅 졸고 우리 자매들은 휠체어 옆에 쪼르르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햇살이 야경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있었다. 

왼쪽에 낙산공원의 돌담길에도 불이 켜졌다.

“저길 걸어보고 싶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늘어선 불빛을 보며 동생이 말했다. 

막내가 내일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 

언니들의 가슴과 머리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별다른 말이 없다. 

막내는 심장에 찬 물을 빼내서 한결 살만하다고 느꼈는지 앞으로 아무것도 후회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고 살겠다고 한다. 

‘앞으로?’ 

그날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하루 전날이니 앞으로 라는 건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 이런 것도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래전 내가 동생을 속인 내 기억속의 가장 슬픈 거짓말이 떠올랐다.      


1977년 3월. 

내 인생 첫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다. 

그 날은 오후반 수업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동생과 단둘이 집에서 놀고 있다가 나는 가슴에 매달린 손수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학교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12시 30분이 되면 동생을 두고 가야 한다. 

난 그게 너무 싫어서 그 시간이 오지 않도록 막기로 결정하고 

동생한테 시계는 쳐다보면 안가니까 계속 쳐다보고 있으라고 시켰다. 

언니 말이면 무엇이든 믿는 동생은 시계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시 내 어린 생각에 시곗바늘은 보고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안 보고 있을 때 후딱 지나가 버린 경험을 바탕으로 시계는 지켜보고 있으면 안 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의 시계는 우리가 버젓이 보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지나갔고 비정한 12시 30분이 되었다. 

난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동생을 두고 울면서 학교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반대다. 

동생이 나를 속이고 있다. 

희망이 있는 한 죽음이 오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시간을 멈추기 위해 시계만 쳐다봤듯이 죽음을 멈추기 위해 희망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도 단호하게 지나가는 시간처럼 희망으로 버티고 있어도 죽음은 다가왔다. 

마치 움직이지 않으면서 지나가는 시곗바늘처럼 기척 없이 죽음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6년 12월 24일. 

어제 사람이 죽어 나간 후 앙칼지고 모진 소독약 냄새가 온 병동에 퍼졌다. 

사람이 죽었지만 병동의 크리스마스트리 전구는 하나도 빠짐없이 켜졌다.

여기서는 사람이 죽어도 놀라거나 요란스럽게 동요를 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해가 지듯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 전날부터 더 건강하게 살 것을 맹세한 동생이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나 개 같지?” 

“나나?” 

암세포가 목의 임파선까지 꽉꽉 채워서 턱선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우리는 동시에 피터팬 만화에 나오는 머리에 레이스 두르고 아이를 돌보는 커다란 개 나나를 떠올렸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 유머였다. 

동생은 아름다운 손거울을 잡고 퉁퉁 부었지만 나나처럼 귀여운 거울 속의 얼굴에게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잘 버텼다. 그치?”     


그 병원에서 제일 좋은 방에는 ‘마리방’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누워 있던 환자들은 마지막에는 모두 ‘마리방’으로 간다. 

동생도 결국 ‘마리방’으로 갔다. 

그런데 내 동생 이름이 박마리다. 

마리는 ‘마리방’에서 바람결 같은 마지막 숨결을 내쉬었다.

그렇게 동생은 역사를 마무리했다.     


#10#     


2016년 12월 28일 하나의 혼돈이 끝났다. 

한겨울이었지만 날씨는 봄날처럼 포근했고 평소보다 맑고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었다.

‘잘 가. 마리야. 귀여운 내 동생. 다른 세상에선 잘 적응하고 맘껏 사랑하면서 살아. 우리 이런 슬픈 인연으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난 동생에게 영원한 작별인사를 했다.      


2017년 2월 14일 

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떠난다는 49일째, 남은 자매들이 다시 모였다.

마리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 전날 밤 대학로 낙산공원 불빛을 보며 나눴던 삶에 대한 각오, 그로 인해 우리는 슬픔 대신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슬픔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희망에도 골든타임이 있었으니. 마리가 떠난 자리는 자식처럼 키우던 개와 고양이 앞에 흩어진 사료통, 꽉 차있는 옷장과 신발장 그리고 열려 있는 화장품 파우치가 남았다. 

이것이 마리가 아닌 모르는 사람이 남긴 자리라면 난 아마도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서 떠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으나 무덤에 싸들고 가지 못한 재산은 마리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가 차지했다. 

삶을 정리하는 시간과 맞바꾼 인스턴트 희망의 결과는 그렇게 최악의 에필로그로 막을 내렸다.      


살아있는 인간들의 사회는 혼돈의 시대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순실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언론과 특검의 패악질에 분노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미성숙한 열정은 자기가 받는 것이 관심이든 모욕이든 상관하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죽기 전에 동생은 선각자같은 어투를 많이 썼다. 

“‘인간은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새겨진 형상을 지우고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 대.” 

책에 밑줄까지 쳐가며 나에게 강조한 그 말이 유난히 내 가슴에 남는다.     


동생이 떠난 뒤 많은 상념과 함께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의 강물은 2019년 봄이 한창일 때 내 또래의 여배우가 자살했다는 슬픈 기사가 났다. 

그 분위기를 틈타서 어떤 사람이 TV에서 45세부터 49세의 나이는 여성이 가장 불행을 느끼는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갱년기란다. 

갱년기 

【명사.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다.     


난 1970년생이다. 

갱년기다. 

어린이도 청춘도 노인도 아닌 갱년기는 사랑스럽지도 않고 나약하지도 않아서 지긋한 위로의 눈빛 한번 받기 힘든 사각지대 나이다. 

하지만 사각지대에도 꽃은 피는 법. 

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를 곱씹다가 무시하기로 결정하고 나만의 갱년기를 다시 정의했다. 

갱년기! 

다시 시작하는 해. 

그동안 나는 나를 바꾸고 싶어서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공부도 했다. 

옷을 사고 머리를 바꾸고 이름도 바꿨다. 

하지만 타성에 젖은 소심한 마음을 품은 상태에서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선명히 알 수 없었다.      


“엄마는 그동안 동굴에서 살았어. 

앞으로 정말 멋지게 살고 싶은데. 

이 동굴 안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왜냐면 계속 메아리 소리가 들리거든. 

벗어나고 싶어. 

그런데 이 동굴을 탈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식탁 맞은편에 앉은 딸에게 말하고 있다. 

언제나 반복되는 주제. 

올해 성인이 된 딸아이는 ‘엄마가 또 시작이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순간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감정연령 9세인 여자가 딸을 20살까지 무사히 키운 자체가 기적이니까. 

“너 키우면서 엄마도 같이 큰 거 알아?” 

딸아이는 알 듯 모를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때 벨이 울리며 오래전에 입력해 놓은 번호가 떴다. 

“너 미령이 맞니? 

이혼 안하고 잘 살고 있어? 

혹시 이름 바꿨니? 

너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지 알아?” 

대학시절 친구가 반가움과 걱정이 포함된 궁금함을 섞어서 속사포 같은 질문을 퍼붓는다. 

“어. 오랜만이다. 웬일이니?” 

“지금 우리 과 애들 모여 있는데. 영상통화 할까?” 

“아니, 나중에…” 

난 갑작스럽게 나타난 친구들에게 낯을 가리며 맘을 웅크렸다. 

“10월에 89전체 모임 있으니까, 그땐 꼭 보자. 밴드도 가입하고.” 

입학 3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연락이 시작된 모양인데 내가 직장도 관두고 이름도 바꿔서 나를 찾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카톡에 뜨지 않아서 연락이 끊겼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요즘 카톡을 하지 않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카톡에 번호가 뜨지 않아 없는 사람이 된 모양이다. 설마하면서 예전 번호를 눌렀는데 연락이 된 것이란다.      


밴드 안에는 지금은 갱년기가 된 고려대학교 간호학과 89학번들의 대학시절 사진들이 있었다. 

나를 찾았다고 반가워하는 메시지. 

【미령아 진짜 반가워. 새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우리에게 넌 그냥 박미령!!!!!이야 소중한 이름 박미령 올해까지만 부르고 내년부터 Brand new name을 사용해 보도록 하자. 진짜 보고 싶었어. 미령~~~!♡】 

한동안 사라졌던 박미령이 부활했다. 

【아냐~ 그냥 미령이로 계속 불러. 그렇게 박미령도 남아 있는 게 좋아】 라고 응답을 했다.      


포크로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있던 딸아이가 나의 대학시절 모습을 한참 쳐다본다. 

“대학생일 때 엄마가 이렇게 생겼구나. 

내 나이 때 엄마 보니까 진짜 신기하다. 

근데 엄마 이름은 왜 바꿨어? 

미령이도 좋았는데…” 

“글쎄…” 

나는 10년 전에 ‘아름답고 영리한’ 미령에서 ‘함께 끌고 가는’ 서연으로 이름을 바꿨다. 

왜 바꿨을까? 

미령이는 가시 박힌 젖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처럼 늘 아프고 불편했다. 

그래서 어딜가도 까칠하고 예민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 스스로 그런 내가 힘들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바꿨고 이름도 그래서 바꿨다. 

이름은 옷이나, 여행, 책 이런 것들 보다 파워가 있다. 

“엄마가 이름 바꾼 다음 백팔십도 바뀐 게 있어. 

옛날에 미령이는 어딜 가든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이 한두 명씩 있었는데, 

요즘 서연이가 가는 곳에는 너무 좋은 사람이 한두 명씩 있다는 거.”

“와 신기하다. 이름 바꾼다고 그런 게 바뀐다구? 

근데 난 지금 내 이름이 너무 좋은데…” 

진아는 애기 때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로 말했다. 

“엄마도 미령이란 이름을 싫어한 건 아니야. 

단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좀 바꾸고 싶어서 그랬어.” 

어떤 기억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다른 조명을 받으면 같은 기억도 다른 느낌이 된다. 


“진아야. 엄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인스타도 하고 유튜브도 해보고…” 

“헤헤~~카톡도 정신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유튜브를 한다구? 

엄마 꼭 의욕 넘치는 하룻강아지 같아.” 

“그래? 잘됐다. 

이제부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한번 살아봐야겠다. 

내 뒤를 봐주는 호랑이들이 좀 있거든.”

내 입에서 나간 그 소리는 신성하고 낯선 목소리로 나에게 다시 돌아와, 어둠 속 터널을 뚫고 내 맘속 보물 상자를 하나씩 열었다. 

그 안에서 꺼져가던 불꽃은 다시 타올라 내 주변을 온통 아름답고 온화한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채워나갔다.       

에필로그      


초여름, 비가 한바탕 내리고 햇살이 한풀 꺾인 한적한 거리의 오후 시간 

쾌락주의자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다. 

눈앞에 수천 개의 활짝 핀 해바라기 들판이 펼쳐졌다.

초록색 초원을 지나갈 때 바람이 속삭인다.

‘안아 드립니다.’ 

난 저항 없이 순수한 품에 안겼다. 

육신의 다정함을 외면하지 않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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