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지 않아도 돼.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인사동에 간 날, 곳곳에 걸린 이름 없는 화가들이 그린 민화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발 디딜 틈 없이 웨이팅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MMCA에서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론뮤익의 해골을 보면서 아무 감흥도 못느꼈으므로 나의 예술적 감각은 역시 사춘기를 졸업하며 죽어버렸던걸까하고 슬퍼하던 찰나,
한 블럭을 걸어 다다른 인사동 길거리를 걷는동안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그림
또는 해와 달이 함께 산봉우리 위에 바듯하게 걸린 일월오봉도가 새삼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말간 백자 도자기들도 그날따라 왜 그리 청순하고 고아해 보이던지, 집에 와서도 며칠을 내내 상사병에 걸린 것 마냥 고민하다, 마침내 인터넷에서 민화 그리기 키트를 주문했다.
그중에서도 리뷰가 가장 안 좋은(사실상 테러 수준인) 일월오봉도 그림 그리기 키트를 주문했는데, 그토록 후기가 안 좋은 이유는 너무나 세세하게 표현된 탓에 컬러링 넘버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그에 비해 채색할 구획은 수없이 많아 완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주소비자층이 최소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임을 고려했을 때 근시안을 더욱 악화시키는 버릇없는 그림인 셈이었다.
카트에 담고, 주문 버튼을 누르기 전.
나는 또다시 예의 나. 다. 운. 고. 민. 에 빠져들었다.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 이 스킬을 개발해야 하고 그럼 이쪽으로 먹고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미국에 언제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민을 가게 된다면 오리엔탈 무드를 듬뿍 풍기는 이런 그림을 타투로 갖고 싶어 할 미국인들이 많을지도 몰라. 그럼 타투를 배워야 하나? 민화를 먼저 배워야 하나? 근데 홍보는 어떻게 하지? 요즘 K-pop이 잘 나가니까 뭔들 잘되지 않을까? 이게 돈이 될까?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내가 먹고 살 능력을 굳이 갖춰야 하나? 남편이 돈을 잘 버니까 하우스와이프로 살아도 될 텐데. 아냐 또 이혼하면 뭐 먹고살래? 그래 여자도 자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 역시 믿을 건 나밖에 없어. 돈 벌자. 돈. 나를 지켜주는 건 돈이야.'
읽으면서 도대체가 이 사람은 모든 사고회로가 돈인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전담 심리상담사인 교수님도 늘 나에게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나는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이유인 즉슨,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 본연의 목적은 ‘돈’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호사스러움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의 평안과 나를 사랑해주는 마음을 사고 싶은 데에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사랑하는 원가족, 그러니까 철없고 애틋한 엄마아빠와 늦게 철이 든 언니와 애잔한 남동생이 기대어 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삶도.
한마디로 돈은 나에게 애정이자 사랑이다.
가족, 그리고 아프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매개체이다.
단돈 3만 원이 없어서 아빠가 몇 년간 모은 돼지저금통 배를 갈라 돈을 빼가는 엄마.
또는 커다란 눈망울과 부드러운 털끝에 길거리의 때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길 위의 생명들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유기견 봉사를 하더라도 그러했다. 당장 입에 넣어줄 사료와 예방접종에 드는 ‘돈’이 필요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알뜰한 보살핌을 건네지 못하는 성격 탓에 알량한 돈으로 열심히 마음을 보여줬다.
그 알량한 돈의 가치마저 그들에게는 소중한 탓이었다.
나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애정을 좇았다.
내가 돈과 교환한 유형의 물질들을 전해줄 때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눈망울이 빛나던 순간들.
그것들이 모여 나를 소진할 때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지 나를 소진하는데 그치지는 않았다.
나는 행복했다. 정말로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돈에 집착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무튼, 다시 이 이상한 그림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벌건 주황색의 해와 청아한 달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이끌려 이 그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사극 드라마 속 임금님의 어좌 뒤 병풍에 늘 비치는 일월오봉도.
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표상하고 우뚝한 다섯 산봉우리는 음양오행과 우주의 질서를 나타낸다는 애초의 의미와는 다르게, 산기슭 사이로 폭포가 흐르고 사슴이 뛰어놀 것만 같이 생생하고도 오색찬란한 이 그림은 내 눈에는 그야말로 신비한 에너지를 품은 이상향처럼 보였다.
어찌 됐건 이 위용 있는 그림은 왔고, 나는 차마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아 포장을 이틀이나 뜯지 않고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현관문 앞에 내팽개쳐놨던 택배상자를 후다닥 들고 들어왔고, 누가 볼세라 포장을 뜯어 조심스럽게 설명서를 읽었다.
티끌만 한 크기의 붓과 함께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것만 같은 사이즈의 컬러링 넘버가 나를 압도한 것도 잠시, 곧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이 그림을 누구에게 보여주려 그리는 것이 아닌걸’하는 생각이 붓을 밀고 나가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월오봉도 그리기는 이주를 넘기지 못했다.
고질병이 된 목디스크에 그것만큼 안 좋은 취미도 없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책상도 아니고 좌식 커피테이블 위에 캔버스를 놓고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리는 행위는 며칠도 못 가 목에 담이 걸리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7번과 13번으로만 칠해진, 그것도 가이드라인 셈으로 프린팅 된 밑바탕 선을 한참 넘어가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엉망으로 채색된 그림을 현관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랑스럽게 전시해 놓았다.
물론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벽에 건 것도 아니고 바닥과 벽의 경계면에 대충 세워놓은 캔버스를 전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은밀하게 보란 듯 놓아둔 것이므로 그것은 엄연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모든 것을 ‘미완’으로 두었다. 특히 내가 애정을 쏟는 것일수록 더더욱.
회사에서 복지서비스로 해 본 기질검사 결과를 수화기 너머로 들려주던 어느 심리상담가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위험한 수준의 충동성과 그에 반해 평균을 한참 밑도는 인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의 미완성들을 비밀병기로 여기기로 했다.
끝내지 못한 게 아니라 미완으로 남겨둔 것이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껴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부터 일월오봉도를 완성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그저 순수하게 나의 즐거움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고, 그것으로 소정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것이다.
백지의 캔버스를 옥색의 물감으로 덧칠할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다고 믿었고
심지어 때로는 쾰른의 대성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기억처럼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건함까지 생겨났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한낱 값싼 싸구려 그림 그리기 키트일지라도, 그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 꽤나 큰 위로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곱씹어보면 이런 비루한 나라도,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손끝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즐겁게 했던 것 같다. 모처럼 나의 존재가 쓸모 있게 여겨졌으므로.
잘 그렸다고 평가할 사람도, 이게 뭐냐며 비웃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더라도 나만은 그걸 자랑스럽게 여길 것만 같았다.
그동안 세상을 백지같이 텅 빈 눈으로 보던 나에게 색색깔 유형의 무언가를 빚는 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값어치가 있었다. 누군가의 평가나, 목적이나 심지어 결심도 없이 그저 한 줄 한 줄 집중해서 선을 긋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은 그래서 나에게 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붓을 댄 지가 어느새 일곱 달이 넘어가는 지금, 남편은 어쩌다 한 번씩 그 그림이 눈에 밟히는지 요즘 왜 그림을 안 그리는지 또는 언제 완성할 것인지를 책망하듯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릴 거야.”라고 대답을 하곤 돌아서서 미소 짓는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다시 붓을 쥐고 이 그림을 더 채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나를 안도하게 한다는 것, 그것은 곧 나의 즐거운 비밀이므로.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