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좋아하는 골프를 같이 치게 되니 태국까지 오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이역만리 태국땅에서 숙박하면서 긴 날을 골프를 친다. 한국의 골프비와 비교되는 태국의 마이다 cc를 알게 되어 현재까지 1주일을 보냈다.
작년에 함께 하게 된 분들과 다시 조인하여 골프를 치는 동안 그들과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고 그들만의 세계를 깊숙이 이해해 나갔다.
우리 팀원들은 다들 은퇴한 60대 중반의 가르치는 일만 한 사람들이다. 모두 다 가르치는 데 전문가인 교수들이자 교사들이다. 그중엔 나이가 칠순이 된 젠틀한 정교수님도 계신다. 그들 중 가장 어린 나는 59세의 교사출신이다. 작년 그린 cc에서는 다들 한물간 사람들만 모인 세계에 내가 끼어든 것 같아 낯설고 이질감이 많이 생겼었다. 그곳에서 2주간 골프를 치는 내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나 역시 다 늙어 버린 패물은 아닐까 하는 서글픈 생각이 문득문득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제 퇴직하고 남은 건 '무덤뿐이다'라는 서글픈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리고 하얗게 센 머리를 원망했었다. 언제가 잡지에서 소개해준 색다른 공포 영화인 <미드소마>의 한 장면이 자꾸 떠 오르고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갑자기 그린 cc에 뚝 떨어졌었다.
배정받은 숙소와 더불어 이른 새벽시간부터 골프를 치며 그들의 세계에 합류했다. 첫 티를 치는 1번 홀(강을 건너야만 하는 홀)에서 팀별로 한 명씩 티를 치고 나가면서 그들의 뜻밖의 저력을 보게 되었다. 점심 식사시간에는 풍성한 열대 과일들 특히 노란 망고와 잘 익은 수박을 먹으며 오늘의 골프와 태국의 더운 여름 속에서 한국의 맛난 음식을 즐기게 되었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얘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니 식탁엔 언제나 얘기 꽃이 피었고 태국의 시원한 맥주는 빠질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골프를 원 없이 치고 맛난 점심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상당한 축복인 것을 알게 되었다. 건강하기에 이곳까지 와서 골프를 치는 노익장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식탁에 핀 꽃은 자연히 그린 cc 사람들과 함께 피어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조금씩 알게 된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우리도 그린 cc에 물들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들 일행 중에는 40대 초반에 댄스에 미쳐 20년 동안 전국을 돌며 춤을 즐긴 최교수님이 계셨고 댄스를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젠틀한 정교수님이 계심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도 댄스를 배우게 되었다. 오전 시간엔 골프를 친 뒤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댄스를 배웠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그의 성의는 강의 교본과 제법 무게가 나가는 엠프까지 들고 올 정도로 엄청났다.
순전히 취미생활에서 출발해 댄스 강사 자격증까지 있는 최교수님의 열정과 마인드에 감탄하며 한 동작씩 배워 나가니 그래도 조금씩 춤이 되었다.
올해 이곳 마이다 cc에서도 똑같은 루틴대로 골프를 치고 난 뒤 '차차차'를 배워 나갔다. 하지만 작년 내게 붙은 별명은 '뻣뻣녀'였다. 나름 젊었을 때 "무용 좀 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이 있었는데 춤이란 게 이렇게 어려울지는 몰랐다.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해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뇌의 일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가르치는 교수의 입가엔 하얀 게거품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올해도 6명이 우리 팀이 되어 2주 동안 35도가 넘는 열기 속에서 골프를 친 뒤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온갖 이유를 달아 식사시간에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작년 8월에 오나 올해 5월에 오나 덥기는 매 한 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아직 우기가 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건조한 필드에 잔디는 말라 흰 민머리를 드러낸 곳이 여기저기였지만 우리의 목표는 골프였기에 상관없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정교수님을 중심으로 작년에 처음 만날 때 보다 친밀감이 더 많이 생기고 있었다. 사실 우리 부부를 빼고는 모두 다 30년은 족히 되는 친분을 잇는 대단한 팀이었다. 우리 부부가 생뚱맞게 초대되어 그들의 향연에 묻히게 된 것이었다.
왜 그들이 정교수님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는지를 단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나라를 걸치면서 배우고 익힌 박사 학위 관련 에피소드는 정교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결속할 수밖에 없는 풍성한 에피소드를 들으니 지난 시절 걸어온 나의 무대가 참 좁았고 단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길 인생 33년 동안 오로지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한 순수한 국내파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