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잠을 잘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경험할 수 있는 때가 신생아를 키울 때다. 2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하다 보면 이게 사는 건지 마는 건지, 깨어있어도 깨어있는 게 아닌 참으로 삶의 질이 처참히 내려앉는 경험을 하게 된다.
중증 아토피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같은 경험을 몇 달에서 몇 년까지 하게 되는데 피부를 사정없이 긁어버리는 아이 때문에 밤새 보초를 서다 보면 멘탈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대다수의 아토맘(아토피 자녀를 키우는 엄마)이 수면 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 분노조절장애를 경험한다.
상담을 시작하면 눈물부터 흘리는 엄마들이 참 많다. 바로 자녀에 대한 죄책감과 케어의 어려움 때문이다.
어떤 부모도 아기를 낳기 전에 자신의 자녀가 아토피를 겪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는다. 눈앞에 닥쳐서야 인터넷을 검색하고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어떤 곳이 정확한 정보를 주는지 신뢰하기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비싼 보습제에 한약에 영양제까지.. 가계가 휘청이게 된다.
뉴스에도 보도된 바 있는데 중증 아토피 자녀를 케어하던 엄마가 우울증으로 아이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자신도 함께 투신한 끔찍한 사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상담자로부터 비슷한 일들을 직접 듣게 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베란다 난간을 밟고 뛰어내리려고 하는 찰나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와 사력으로 붙잡는 통에 살았다고 했다.
이처럼 우울증은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엔 엄마들의 깊은 우울감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부모로서 한계를 느낄 때의 절망감을 잘 알고 있다. 자녀가 아프면 부모는 다 내 탓같다. 끝없는 죄책감이 매 순간 나를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가 임신 중에 관리를 못해서 아이가 아토피가 생긴 걸까요?' 엄마들에게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탓이 아니다. 아토피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원인을 알 수 없다.'라고 답한다. 아토피(Atopy)의 어원이 그리스어 아토포스(Atopos)에서 유래되었고 '뜻을 알 수 없다'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토맘들은 다른 아기들은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아기만 피부가 빨갛고 오돌토돌한 게 너무 속상하다고 한다. 마음껏 뽀뽀해줄 수도 볼을 비빌 수도 없는 게, 남들 다 먹이는 소고기도 마음껏 먹일 수 없고 외출 한 번만 해도 금세 피부가 뒤집어져서 외출도 맘껏 못하는 게 원망스럽다고 말이다.
어찌 안 속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부모에게 필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이다. 아토피 치료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긴 여정을 헤쳐나가려면 부모가 먼저 몸과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일단 우울감이 너무 심할 때는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한다. 감기약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되어 회복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상담을 받아도 우울증이 바로 좋아지진 않지만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수면장애가 심하면 약물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아이 엄마가 우울증 증세가 심한 경우엔 남편 분과 통화해서 아이와 엄마를 당분간 분리시키길 조언하기도 했었다. 배우자나 부모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다면 잠시 육아를 부탁하고 약을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주일쯤 밤에 푹 자보라고 하고 싶다. 일주일 뒤엔 내 몸에 흐르는 활력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매일 하루 5분이라도 걷기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 내 몸 하나 건사할 힘도 없는데 어떻게 운동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 체력 하나는 정말 자신 있었는데 왜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이 들고 무기력할까. 바로 내가 우울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내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든 적도 있었고 그런 기분에 허우적거리느라 아이들이 날 힘들게 하는 존재들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활력을 되찾으니 작은 일에 감사하게 되고 행복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내 주변 환경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행동이 바뀌니 마음도 바뀌게 되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의식이 거대한 우울감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을 땐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위에 눌렸을 때 몸의 말단부만 살짝 움직여도 가위에서 풀리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서 한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그다음은 더 쉬워진다.
먼저 동네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 한잔 테이크 아웃한 다음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걸어보자. 내년 이맘때 즈음엔 아이 아토피가 많이 좋아져서 가고 싶었던 곳도 여행하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는 행복한 상상을 하다 보면 이미 당신의 마음은 치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선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배우자는 나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이다. 나의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또한 나 자신을 갉아먹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은 못한다는 생각은 버리자. 완벽한 아토피 케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각자 어떤 부분을 맡을 수 있는지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토피 케어는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에겐 신 같은 존재이며 특히 엄마는 아이에게 하늘이다. 엄마가 울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엄마가 화를 내면 하늘에서 천둥이 친다. 마음이 힘들 땐 주위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자.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내 가정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최고의 엄마가 되려 하지 말고 그냥 좋은 엄마 정도로 만족할 수 있어야 아이도 편안하다.
마지막으로 아토피는 시간이 약이다. 2할을 노력하면 나머지 8할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잘 버티려면 체력이 필수니까 아기만 A++ 소고기 먹이지 말고 엄마도 잘 챙겨 먹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었던 그때 반만이라도 나를 더 아끼고 존중해주자. 당신은 충분히 좋은 엄마이고 대체 불가이며 소중한 **이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