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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 Jun 29. 2024

별게 다 평범해

인문학의 숲 수업을 듣고 나서 - 악의 평범성

나쁜 것은 언제나 개인의 것이라고 어릴 적 동화책에서 자주 접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악당들은 늘 그냥 나빴다. 간혹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나쁜 악당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냥 태생부터 나쁜 애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최근까지도 악은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개념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나치가 잔인하게 유대인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과정의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이다. 누가 보아도 그가 한 짓은 용서받지 못할 악행이었고 그는 끔찍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재판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너무도 평범하고 오히려 치졸한 인간이었다. ‘아이히만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악인이거나 병리적 살인마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기계적 명령 수행자로 자신을 변명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도 이때 등장한다.

아이히만 같은 인간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무사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악은 개인의 악으로 인해 진행되는 것이 아닌, 생각 없는 개인이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의 일원이 됨으로써 일어난단다. 악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악이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죄의 면죄부가 되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악이 개인의 것이 아닐 뿐, 죄에는 자신의 책임이 있다.

악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별게 다 평범하구나. 환경과 분위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말 어디까지인 것일까. 나는 얼마큼 생각하고 행동해야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까. 악이 개인의 것이라는 것보다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아서(무사유) 저런 짓을 한다는 것이 더 충격이 컸다.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했다.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한다니. 죄를 지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무사유하는 나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분명 수업을 들은 직후에는 많은 생각과 고민이 들어 심란하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수업 당시 기억이 많이 휘발되어 풍성한 에세이를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11차시 수업에서는 악의 평범성 외에도 다양한 것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악의 평범성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11차시 수업은 생각 없이 사는 것이 편하고 나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믿던 내가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나는 생각하는 삶을 살 것이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답을 내고 그 답에 대해 되묻고 다시 고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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