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기를 재우고 굴 따러 가야 한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1989년 발표된 가요 ‘칠갑산’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대 히트했고 노래방의 애창곡이었다.
칠갑산은 청양에 있다. 충남 청양은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산세와 공기 좋은 곳이다. 이 노래와 청양 고추 덕에 청양은 전국적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노래 가사를 짐작컨대 1960~1970년 대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하는 시절 산골 마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상과부는 개가하며 홀로 남겨질 시어머니 생각에 가슴 절절한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콩밭 매는 아낙네,,,
시골 태생인 나에겐 이 구절 만으로도 산등성이 밭에서 수건을 동여매고 땀 흘리며 밭을 매는 아낙네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그려진다.
멀지도 않은 그 시절, 평범한 우리들의 아낙네는 초인이었다. 6~7명 자식을 출산하고 밥 해 먹이랴, 학교 보내랴, 빨래, 밭일에 집안 청소까지 온통 일에 묻혀 살았다. 그녀들은 가정과 자식에 관해서는 남자보다 책임감이 강했다. 아낙네는 아플 틈도 부족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남자가 밥을 하거나 걸레 들고 집안 청소 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동요 ‘섬집 아기’에서도 엄마는 아기를 재운 채 굴 따러 가야 한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형편에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문명의 이기가 곳곳에 갖춰진 지금, 우리들의 아낙네는 얼마나 편하고 행복해졌을까?
풍요한 시대이지만 보통 아낙네들은 맞벌이를 해야 한다. 아낙네도 직업을 갖고 소득을 늘리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체적인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데 가만히 있으면 상대적 빈곤감이 생긴다. 하루 세끼와 잠자리 있는 것으로 충족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낙네는 지금도 바쁘다. 자녀 양육, 집안 살림, 직장 생활 등 저녁에는 피곤함을 어깨에 지고 집으로 온다. 직장에서 회식을 해도 집안일에 마음이 편치 않다.
전철이나 버스, 출퇴근 시간이 그나마 자유와 휴식 시간이다. 시대가 바뀌어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준다 해도 한정적, 보조적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의 고달픔은 시대에 따라 변형되고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가정과 가족을 지탱하는 본능에 책임감과 강인함은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저녁상을 물린 다음 드라마 한 편에 하루를 잊으며 잠이 든다. 고마우며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