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기다리며
프롤로그
제주도 테마공원에 간 적이 있다. 화장실에 갔는데 너무 어두웠다. “입장료도 꽤 비싼 곳인데 조명이 너무 어둡네” 못마땅 해 하며 손을 씻으며 보니 거울 속의 난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색안경,
라오스라는 한 국가를 단기간 여행하고 색안경을 쓴 채 그 나라에 대한 글을 썼으니 섣부르고, 편견이 곳곳에 있을 것이나 사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 출발 전부터 라오스의 천혜 환경을 찬미하기보다는 생활상 측면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아울러 이 글은 라오스를 멸시,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연민과 애정의 발로 임이 분명함을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 라오스를 가다.
지난달 짧은 기간의 라오스 여행을 다녀왔다. 여섯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여 심리적으로 조금은 멀어 막연하지만 미지, 신비함이 있을 듯한 라오스를 택했다. 이후 라오스에 대한 각종 정보를 검색해 보니 과연 여행지로 적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너무 후진국, 빈민국이고 광고처럼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 추억을 살리거나 저렴한 물가, 친절하고 순박한 국민성의 매력, 그들에 비해 우월감, 느림의 힐링 말고는 별게 없었지만 이런 나라를 잠깐이라도 탐색하고 싶은 호기심이 강렬했다.
라오스를 이해하기 위하여 개략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면적은 남북한의 1.1배, 사회주의 국가, 불교 국가, 중국,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국이다. 내륙국이어서 국가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 수출입이나 항공 통행에 옆 나라의 승인, 비용 지불, 통제를 받아야 한다(중국과 러시아의 통제를 받는 내륙국 몽고도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인구 8백만, 1인당 국민소득 약 2천 달러, 월평균 20만 원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에티오피아 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빈곤 국가이다. 문맹률이 높다.
1893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1953년 독립했다. 60여 년 간 프랑스 식민통치 기간에 프랑스가 남긴 인프라 등 외형적인 유산은 거의 없다. 투자는 없었고 수탈만 당한 것 같다. 그 흔한 철도 하나 남겨 놓은 게 없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와 비교되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은 예민하여 구체적 내용을 표현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일제의 식민통치 후 남겨진 철도, 도로, 철교, 제련소, 수력 발전소, 댐, 비료 공장 등 남북한에서 아직도 활용되고 있는 기간산업과 비교된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대륙 진출, 농산물, 광물 수송 등 자국을 위한 인프라 건설이지만 미몽의 조선에 신산업, 신기술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농지 개량, 호적법 등 법률 정비, 노비제 폐지 등 근대적 제도 마련은 인정해도 되지 않겠는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기고 문명을 도입한 일본의 통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 식민지 근대화론‘을 입에만 올려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분위기는 지양되었으면 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수긍할 건 수긍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러나 ‘식민지근대화’ 까지는 일정 인정한다 해도 일부 극우 언론인, 학자는 아예 ‘식민지 수혜론’을 공공연히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이 철도를 만들어 주었다” “일본이 도로, 공장을 만들어 주었다” 보릿고개에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그 시절, 일본의 과학적이고 개량된 농법으로 “조선인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등일본 덕에 우리가 혜택을 받은 양 주장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 1일 차 - 저가항공기 여행
무릇 대부분의 동남아 패키지여행은 3박 5일간 진행된다. 인천공항에서 밤비행기를 타고 5시간 걸려 비엔티안에 있는 왓따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밤비행기라서 기내식이 제공되는 줄 알았는데 없었다. 물을 요청하니 종이컵에 한 잔, 저가항공기라서 그렇다. 지루한 시간 낙서도 하고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1일 차가 지났다.
■ 2일 차 - 불상공원과 소금마을, 허술한 관광지
새벽 0시 30분경 왓따이 공항에 내렸다.
1층은 입국장, 2층은 출국장이고 한국의 대도시 버스터미널 규모이다. 입국장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있는 한국인 관광객, 역시 대한민국이다. 코로나 이전 스페인에 다녀온 딸은 관광지에 한국인이 너무 많아 아는 사람 만날 것 같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베트남 다낭은 오죽하면 ‘경기도 다낭시’라고 할까?
찌든 가난에서 악착과 근면으로 부유해진 한국인, 머리 좋은 한국인들은 이번 여행에서 라오스와 자주 대비 될 것 같다. 라오스를 폄하하거나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이 나라에 비해 우월감과 자신감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새벽에 들어간 5성급 호텔, 넓기는 하지만 더위 탓인지 퀴퀴하다. 당장 에어컨을 틀었다. 호텔에서 밖을 보니 불빛마저 잠잠하다. 대부분 국가의 수도에 위치한 5성급 호텔에서는 휘황한 야경을 볼 수 있는데 이곳 비엔티안의 새벽은 차분하기만 하다. 모든 것이 멈춰 있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마저 들릴 듯하다. 저녁 열 시가 되면 상점들은 모두 셔터를 내린다고 하니 통행인이 없다.
이날의 룸메이트 친구는 거실 소파에서 잔다고 했다. 아마 코골이가 있어 미안한가 보다. 예전 제주 여행에서도 같이 잤는데 코골이에 몇 번이나 잠을 뒤척인 적이 있다. 나는 이갈이가 심해 미안할 거 없는데,,, 트윈 침대는 정갈하여 깊은 잠을 이뤘다.
불상공원
아침 식사 후 9시경 불상공원으로 향했다. 벌써 덥다. 불상공원(붓다파크, 씨엥쿠안)은 불교와 힌두의 전설과 원리를 형상화 한 조각 200여 개가 공원 안에 있다. 길이 50M 높이 12M의 와불상(臥佛象)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가이드는 여행지의 의미, 조형물의 역사성 등에 대해 기본 안내가 부실하다. 단편적인 내용 몇 마디 하니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 35도 정도의 더위에 공원 산책은 멈추고 끝부분으로 가니 메콩강이 보인다.
메콩강
책에서나 봤던 메콩강, 건너편은 태국이다. 메콩강이 국경을 분할하고 있으며 그 폭은 한강과 비슷하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메콩 강은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고 10번 째로 유수량이 많은 강이다. 길이는 4,020km, 중국 칭하이 성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메콩강 대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라오스는 메콩강 수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여 태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빈곤 국가의 특성으로 사람들이 전기를 아껴 쓰니 남는 전기는 수출하는 것이다. 라오스의 방송국은 한 개인데 주로 뉴스 등 재미없는 공적 내용을 방송하므로 드라마 등은 태국 방송을 시청한다고 한다. 언어가 비슷해 가능하다. 그늘에서 사탕수수 한잔씩 하며 시간을 보냈다.
‘소금마을 반꼬아’
기가 막힌 여행지였다.
라오스는 내륙국이라서 바다 소금을 생산하지 못하지만 이 소금마을의 지하수를 끓이거나 염전에서 자연 증발 시켜 소금을 생산한다. 이 지역이 고대엔 해수면이었다고 한다.
염전은 비위생적이고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여행으로 갔던 전남 신안의 정리되고 깨끗한 염전과는 비교가 안된다. 왜 이런 곳을 왔지? 관광지가 그렇게도 없는 건가? 옆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도 서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런 데를 관광지라고 데려 온 거야?”
예능에서 선풍 일으킨 방비엥을 향하여
점심은 한국인 식당에서 마치고 곧장 방비엥으로 향했다. 이곳은 2014년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에서 소개된 이후 우리에게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얼마 전 외국인 관광객 6명이 방비엥 호스텔 바에서 메탄올이 든 라오스 보드카를 마신 후 사망하여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동남아 일부 국가는 값싼 메탄올 밀주를 만든다고 한다. 지난 8월에도 태국에서 메탄올 밀주를 마신 8명이 숨졌다.
방비엥은 배낭여행의 성지이다. 경관이 중국 계림과 비슷해 소계림 이라고도 한다. 카르스트 지형의 독툭한 산봉우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순하고 착하며 포근한 풍경이다.
예전엔 수도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버스로 4시간 거리였으나 2020년 중국 자본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지금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왕복 4차선이며 이용 차량은 거의 없다. 이십여 대의 차량을 본 것 같다. 라오스는 휘발유 값이 한국과 비슷하고 톨게이트 비용은 한국보다 조금 비쌌다.
예전 남포에서 평양 갈 때 고속도로가 생각났다. 남포-평양 간 고속도로는 왕복 8차선이다. 중앙분리대나 분리선이 없어 군사용으로 더 적합하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땐 40여분 간 차량 세대를 보았다.
중간에 유일한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는데 라오스 건축 양식의 휴게소는 건물과 주차장만 있을 뿐 휴게공간이나 식당, 판매대 등이 없어 공실인 채 구석에는 잡초가 오손도손 모여 있다. 이용 차량이 드문하니 운영을 못하는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차량을 이십여 대 봤을까?
방비엥 시골길
고속도로에서 나와 방비엥 시내로 가는 길은 도로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라오스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다. 울퉁불퉁 한 붉은 흙길, 패인 곳이 많아 승용차는 펑크 나거나 차체 하부에 상처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SUV가 좋을 것 같다.
철도는 2009년 처음 개통되었다. 캄보디아가 1932년, 베트남이 1936년 개통한 것과 비교된다. 프랑스는 식민통치하면서 이 나라의 단물만 빨아먹은 건가?
고속철도 역시 2021년에야 중국 자본으로 건설하였다. 중국 쿤밍 시까지 연결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제대로 코가 꿰이고 있다. 중국은 동남아 진출의 허브 기지로 라오스를 활용하고 있으며 고속철도 건설 대가로 라오스 땅 일부를 양도받았다고 하니 점차 중국의 속국이 되어가고 중국이 손목을 살짝만 비틀어도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앞으로 위안화가 통용될 수 있겠다. 이 나라는 지금까지 무얼 해왔고 대통령, 국회, 언론 등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한국인의 저돌성, 창의성, 근면성과 비교된다. 국민들은 현실을 천명이라 생각하고 유유자적하며 저항심이 없는 사람들인가?
길가에는 개들이 한적하게 제 갈 길을 다니고 풀어놓은 소들은 차량에 익숙한 듯 도로를 어슬렁 거리고 있다. 여물을 따로 안 먹이고 자연 방목해서인 지 모두 갈비뼈가 드러 나 있다. 논밭은 옛날 우리네 고향의 풍경을 닮긴 했으나 불모지가 많은 것 같다.
시멘트, 벽돌집에서 동물들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이방인에겐 자연스럽고, 나름의 질서가 있는 듯 편안해 보이지만 결코 목가적이진 않다. 시골에선 취사 연료로 장작이나 나뭇가지를 쓴다. 느림의 현장이다.
우리도 예전엔 장작이나 왕겨를 이용해 취사를 했었지만 60년대부터 연탄 사용이 늘고 석유곤로를 사용하면서 취사용 땔감에 혁명을 가져왔다.
사회학자 막스 웨버(1864~1920)는 그 시절 “시골 중국인의 삶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라고 했다. 가난과 높은 문맹, 관리․지주의 착취, 오리나 닭을 부엌에서 키우는 등 극복하기 어려운 후진성, 부정부패, 비문화, 비위생 등 중국의 정체(停滯)를 지적했다.
라오스 경찰은 외국인 운전자에게 어떻게든지 핑계를 대어 뇌물을 받는다. 위반 사항이 없어도 마냥 잡아놓고 시간을 끈다. 빠져나가려면 6천 원 정도의 뇌물을 주어야 한다.
한반도보다 배 이상 면적이 크지만 토지가 척박하고 80%가 산으로 이뤄져 있다. 생활 수준은 낮아도 북한처럼 굶어 죽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방비엥 중심지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우선 마사지 샾에 내려놓았다. 아재들에게 마사지는 거부할 일 없는 여행 옵션 중의 하나이다. 편안하게 누워 전신 곳곳을 마사지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만 그 비용 구조는 못마땅하다. 2시간 전신 마사지에 30달러, 한화 4만 2천 원.
업주에겐 1만 6천 원 정도 돌아가고 2만 6천 원은 가이드 몫이다. 업주는 1만 6천 원 중 4천 원을 마사지사에게 지급한다. 여행객은 팁으로 3천 원을 더 지불하니 마사지사에겐 7천 원 정도 수익이 된다. 이런 구조를 알고서도 앞으로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건지 좀 찜찜하다. 그러나 이런 옵션을 들어줘야 가이드의 일당이 채워지니 유별나게 거부하기도 힘든 노릇일 거다. 여행은 여행일 뿐 즐기면 그만인데 이런 걱정을 하는 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