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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Aug 09. 2023

이번 생에는 성덕이 되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사고를 당했다. 덕통사고

2021년 9월의 어느 날, 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전의 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워커홀릭'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 여의도 직장인 3년 차인 나에게 야근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이었고, 주말출근을 하루만 할지 이틀을 다 해야 할지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한평생 올빼미로 살아왔음에도 새벽출근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일을 제외하면 수면 밖에 남지 않는 나날이었다. 숱한 야근과 주말출근 중 대다수는 인정욕구에 의한 것이었으며, '보여주기식'으로 남아있던 날도 많았다. 인스타스토리는 온통 내가 하고 있는 고생이 훈장이기라도 한 듯 야근하면서 법인카드로 먹은 저녁, 야근하다 찍은 야경, 퇴근 시간이 찍힌 퇴근길 사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덕통사고를 당했다. 운명처럼 나타나 내 심장을 때린 주인공은 구교환 배우였다. 입덕한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의 인생이 구교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의 선물> 중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최소 덕질에서 만큼은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따라서, 나에게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써내려 보고자 한다. 방구석 덕후에서 부산영화제에서 최애가 참석한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의 모더레이터로 기획과 진행을 하기까지. 결혼적령기의 30대 여성이자 직장인으로서 덕질을 하며 얻게 된 선물, 단상 그리고 경험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그 시작에 대해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최근 그의 차기작인 <D.P2>가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2년 전 그때의 초심을 돌아보고 입덕 계기를 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통사고'도 빈틈이 있어야 나는 것 아니겠나. 일로 가득 차 빈틈없던 내 일상에 그 빈틈은 다름 아닌 '백신 휴가'였다. 입사 3년 차, 서른이 된 그 해에 회사에서 승급을 하기 위해 해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불면증과 싸워가며 여름을 다 바친 끝에 어느 정도 일단락되어서 '미루고 미뤄왔던' 백신휴가를 쓰게 되었다. 오랜 기간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부담도 내려놨던 때였고, 백신도 맞아서 어딘가 가기도 애매하고, 급하게 할 일도 없고,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재밌는 시리즈물을 정주행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게 된 시리즈가 바로 <D.P: 개의 날>이었다.



밀리터리물을 좋아하지도, 주연 배우에게 딱히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터라 <D.P>를 보게 된 건 의외의 일이었다. 입사 전에 나름 영화, 드라마를 즐겨봤고 취향이 확고했던 터라 <D.P>는 내가 선택할 시리즈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P>를 보게 된 계기는 SNS에서 보게 된 한 쇼츠 때문이었다. 극 중 내무반에서 안준호(정해인 배우)가 황장수(신승호 배우)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나타나서 안준호를 구해주는 씬이었는데,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린다"라는 황장수에게 한호열이 "한마디."라는 대사를 하며 새우깡을 먹는 장면에서 '오? <꿈의 제인>, <메기>에 나왔던 그 배우 아니야?' 하는 호기심에 <D.P>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약기운에 잠에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D.P>의 6화를 마치자, 새벽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기분 좋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한호열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빠져버린 것이다. 그의 몸에 붙지 않는 옷만큼이나 유연하고 어딘가 부족한 거 같지만 안준호가 위험에 쳐했을 때 ‘구원자‘로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매 순간 어딘가 몸에 힘이 들어간 나와 다르게 자유로운 캐릭터.  무거운 극의 전개에서도 한호열의 등장과 함께 유쾌해졌다. '한호열이 아닌 구교환의 원래 모습도 저렇게 재밌고 자유로울까?' 반전 목소리만큼이나 뉴타입, 새로운 느낌의 배우. 구교환 배우가 궁금해졌다. 어떤 것이 궁금하다가 아니라 뭐라도, 그에 대한 거라면 모두 알고 싶었다. 검색 엔진과 유튜브에 '구교환' 이름 석자를 검색하고 닥치는 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의 인터뷰, gv 영상, 팬이 찍은 영상, 필모그래피를 보자 더 빠져들었다. 그의 연기를 할 때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방식이랄지 인생관이 담긴 인터뷰에도 그 만의 유머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마치 짝사랑을 할 때처럼. 심장이 아프다는 게 이런 건가. '구교환 앓이'가 시작되었다. 이 마음을 감당하기가 힘든 나는 백신 접종 이틀 차에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에서 용산 CGV까지 달려 모가디슈를 보러 가기에 이르렀다.



그때 당시 백신휴가에서 복귀를 하기 전날, 인스타스토리에 "앓다 죽을 40세 구교환... 연휴를 함께해서 즐거웠어... 난 내일 회사를 가볼게..."라고 쓴 걸 보면 당시에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와 함께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 인스타 게시글에 '구교환은 이제 독립영화의 아이돌이 아니라 진짜 스타가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어떤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 역시 그처럼 발견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은 시시각각 무럭무럭 자라서 어딘가 털어놓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팬들이 올려놓은 그의 과거의 발자취들과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다른 마음들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출구는 없는 그를 향한 마음. 그렇게 나는 덕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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