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그렇다. 영화 <연애다큐>
*단편영화 <연애다큐>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교환 배우의 아버지께서 방배동에서 하시던 사진관이 문을 닫았다. 구배우의 팬이라면 삼호스튜디오는 익숙한 장소일 것이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이 연출한 <연애다큐>의 배경이기도 한 장소이고, 유퀴즈에서 늙지 않는 구교환' 짤로 유명한 증명사진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릴때부터 사진관을 하셨다는 인터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날, 삼호스튜디오 앞에 [임대문의]라는 문구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후회했다. 마음먹었을 때 빨리 가볼걸.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나, 구배우님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삼호스튜디오에서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여권사진이 아닌 증명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이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다. 배우에 대한 사랑도 내 덕질을 둘러싼 환경도 변화무쌍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
구교환(29세, 남)과 이하나(29세, 여)는 연인이다. 돈벌이가 변변치 않은 이 연인은 사전제작지원금 500만 원에 눈멀어 자신들의 셀프연애다큐멘터리 <프로젝트명 : 러브(LOVE)>를 기획한다!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사전제작지원 1차 통과! 2차 피칭심사까지 마쳐놓고는 돌연 성격과 예술성 취향 등의 차이로 헤어지게 된다. 이별 후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던 둘, 한 달 뒤 교환이 페스티벌 측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둘의 <프로젝트명 : 러브(LOVE)>가 제작지원에 합격, 사전 제작지원 500만 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교환은 전화를 받고 잠깐 좋다 걱정이 밀려온다. 잠깐, 이건 하나와 교환의 공동프로젝트 아니었던가?! 다시 돌려주기는 아깝고, 다시 보고픈 마음이 살짝 드는 교환은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연애 다큐를 찍자고 제안한다.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그 뒤의 얘기를 이어가 보자면, 하나는 다큐를 찍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둘은 다큐를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사실 하나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문화예술오타쿠'였던 하나는 EBS 제작지원 피칭심사날 전시회를 갔다가 값비싼 도자기를 깨어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큐를 찍고 돈이나 나눠갖자는 교환의 제안에 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촬영 3 회차분을 남겨놓고 나오지 않았고, 교환에게 깨진 도자기를 택배로 보낸다. 그리고 둘은 가편집 시사회날에 재회한다. 교환은 집에서 본드로 붙여온 도자기를 하나에게 건넨다.
교환 : 이걸 딱 붙여놓고 나서 이걸 딱 보니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 줄 알아?
하나 : 무슨 생각?
교환 : (도자기를 앞으로 보이며) 안 예쁘잖아.
그리고 다시 붙인 도자기를 바닥에 내리쳐 깨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연출의도] 사랑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애를 하다 보니 어찌 보면 사랑은 신의 장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 하나가 도자기를 깨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사랑은 거기까지 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우연으로 결정되는 순간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우린, 사랑 앞에 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 아마도, 아무리 우연이라도 사랑으로 지속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깨진 도자기도 붙이려면 노력이 필요처럼. 내가 너와 마주친 수많은 인연의 고비들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 순간을 되짚어본다.
최애에 대한 내 마음도 변화한다. 덕질을 연애의 감정과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부분 유사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대상에 대한 애정도 어쩌면 '신의 장난'과도 같이 우연하거나 운명적이다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오죽하면 입덕을 교통사고에 비유해 덕통사고라고 표현하기도 하지 않나. 나 역시 여전히 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지만, 마치 장기연애처럼 그의 어떤 부분이 익숙해지고, 일정 부분 편해지기도 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변수에는 정말 다양하다. 하나가 도자기를 깬 것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덕질을 하면서 다른 팬들과 교류를 많이 한 편인데, 그 우연한 사건들로 많은 친구들이 떠났다.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덕질의 인프라가 영원할 줄 알았다. 덕질을 하면서 그 좋아하는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증폭제가 된다. 사랑은 말로 표현할수록 마음이 더 커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주 가깝던 덕질 메이트들이 떠났다. 그에 대한 실망을 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면 나 역시 내 마음에 자신감이 없어지던 날도 있었다.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던 친구가 그의 창작물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팬으로 만났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아있다. 아주 좋은 추억을 간직한 채.
심지어 최애가 변하기도 한다. 구교환 배우가 잔뜩 긴장해서 부일영화상에 등장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노련하게 시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람이 변화할 수도 있고, 상황이 변화하기도 한다. 구교환 배우가 <반도>에서 대중에게 알려지고 <D.P>가 공개될 때까지의 공백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식은 이유가 되었을 수 있다. 아이돌 팬이라면 최애가 군대를 갈 수도 있고,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삼호스튜디오에 가보고 싶을 때 가볼걸. 그때 그 친구들이랑 더 많은 얘기를 나눌걸. 그때 그 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얘기할 걸
영원이란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후회 없이, 사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