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 유토피아 철학과의 단절

by 한수산

순리, 유토피아 철학과의 단절

순리는 문명전부터 인류가 자연 속에서 느낀 생각들이다. 평범한 일상의 철학이지만 그 안에 자연 원리가 있고, 그걸 이해하는 게 순리의 철학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상낙원의 달콤함으로 인류를 곤경에 빠트렸던 유토피아 철학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지난 2500년간 인류는 지상낙원을 꿈꾸어왔으며, 위정자는 앞에서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깃발의 색깔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깃발로 싸웠다. 싸움에는 승자가 있었다. 승자의 말은 지상낙원으로 가는 길로 승인받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은 따랐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류의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많은 색깔의 유토피아 로드맵을 실천했으나 실패했다.

그 과정을 복기하며 냉정한 시선으로 깃발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머릿속 상상력이 만든 유토피아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향에 대한 꿈을 배척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것 역시도 삶의 일부다. 대신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 색안경을 벗어야 민낯의 자연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유토피아를 제외할 경우, 근대 이후 영향력이 컸던 사회 이념적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다. 각각의 이념을 신봉하는 이들은 본인들이 설계한 길을 갈 때 유토피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언제나 푸른 ‘그’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둘은 상대를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했다. 절대 정답의 세계에서 두 개의 정답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가 정답이면 다른 건 오답이고 정답의 길을 방해하는 훼방꾼에 불과하다. 상대 진영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둘 다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그들이 꿈꾸는 체제를 완성했다고 선언한 순간 심각한 문제와 함께 고꾸라졌던 경험 때문이다. 목이 칼로 베이는 아픔이었다.

순수한 사회주의는 비효율과 가난 등으로 문을 닫은 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시장에 모든 걸 맡겨야 하는 순수한 자본주의 역시 더는 세상에 없다. 시장이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시장 실패를 방어하기 위한 국가 역할을 받아들인다. 독점 규제, 경기 불황 방지, 빈부 격차 해소를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역할로 인정하고 있다.

이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토피아는 이념적으로 머리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과 현실이 불균형에 빠진다.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 각자 머릿속 상상대로 현실을 뜯어고치려고 애쓴다. 그러다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 뻔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이제는 반대로 가 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설계도대로 현실을 뜯어고쳐 건축물을 완성하려던 습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고 이를 바탕으로 풍경의 영상을 찍어보아야 한다. 이 같은 풍경화가 순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