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대립물의 균형 속에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 뿐만 아니라 낡은 운동화에도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이 들었다는 표현은 둘 간의 영혼에 그만큼 교감이 많았다는 걸 뜻할 수 있다. 그냥 쓰레기통에 매정하게 버리기보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큰 아이가 6살쯤 됐을때 태어나기전부터 타던 자동차를 어느날 중고차 업자가 와서 가져간 일이 있었는데 이후 큰 아이가 며칠을 목놓아 우는 통에 다시 그 차를 사올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니 아이는 차의 영혼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날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내다버리는 어른들이 얼마나 매정하게 생각됐을까.
예전 기독교 그리고 서구 계몽가들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보다 극닥적인 경우엔 백인 남성에게만, 하느님이 영혼을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동물이 채찍에 맞을 때 내는 울음이나 종을 때릴때 나는 소리나 영혼이 없기는 매 한가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의 울음소리나 개의 울부짖음이나 바람 소리나 절과 교회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나 보이는 세계 이면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같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닮은 로보트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내 신발을 학대하는 건 그런 점에서 내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신발아 그동안 나를 위해 더러운 먼지를 마다하지 않고 내 발밑에서 잘 버텨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