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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윤상학 Sep 03. 2024

오롯이 몸에

몸을 중심에 두고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 너머 남실대며 들어오는 바람은 한결 가볍고 산뜻하다.


양치를 하고 한 컵 가득 천천히 물을 마신다. 이어 팥으로 만들어진 안대 모양의 눈찜질 주머니를 전자레인지에 넣다. 30초 딸칵 알 들리면 꺼내어 눈 지그시 감고 눈두덩이에 올린다. 5분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종료음이 울린다. 빠르게 눈 세안제로 눈을 닦은 후, 감은 눈 위를 손으로 꾹꾹 눌러 찜질 후에도 남았을 속눈꺼풀의 염증을 짜낸다. 그리고 또 세안제로 닦아낸다. 그리고 점안액을 넣는다. 5의 간격을 두고 또 다른 점안액을 넣는다. 안구 건조증 의사 처방을 따라 열심히 치료과정을 밟는다. 과정는 어떤 의심도 주저도 없다. 마치 노련한 제사장이 늘에 제의식을 치르듯 치른다.


한 차례 기계적인 의식 후 소파로 온다. 누워 두 팔, 두 다리 들어 올려 팔, 다리 흔들기를 한다. 1분에 맞게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하나 둘, 60까지 헤아린 후 올린 사지를 내린다.

그리고 묵묵히 아침 상을 차린다. 삶은 계란 2개, 김치, 김, 오이, 삶은 단호박, 사과, 견과류를 꺼낸다. 조각낸 계란에 김치를 얹어 김으로 감싸 먹는다. 4등분 한 사과  중 2 조각을 먹고, 덤벙덤벙 썬 오이와 한 입 크기의 삶은 단호박 3~4점을 먹는다.

 수저를 놓고, 영양제를 먹는다. 탈모에 좋다 하여, 혈관에 좋다 하여, 눈에 좋다 하여, 뼈에 좋다 하여 먹고, 몇몇 치료제도 먹는다.

 

양치를 하고 설거지를 한 뒤. 소파에 앉아 느긋이 tv를 보며 커피 한잔하고 싶은 마음 억누르며, 두 다리 어깨너비로 벌리고, 몸 꼿꼿이 세워 스트레칭에 들어간다. 좌우로 쭉쭉 뻗기, 빙빙 돌리기, 앞뒤 쭉쭉 어 손뼉 치기, 천천히 좌우, 위아래 목 돌리기, 팔 올려 허리 뒤로 젖히기, 팔 허리 뒤로 뻗, 발레리나인 듯 허리 굽혀 이 다리, 저 다리 교대로 올리기를 한 뒤, 마무리로 매트를 깔아 요가 동작 3~4가지를 한다.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물 흐르듯  떠받드는 과정들 모두 마친 , 냉장고 문을 열어 원한 캔커피 톡 따서 소파로 간다.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검색한다.


하루의 오전 일과이다.

머릿속 여러 요소들이, 생각들이 때로는 질서 정연하게 흐르지, 때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맥락 없이 마구 쓱쓱 나오고 흘러가듯, 그렇게 오전 일과는 무의식 속에 흘러간다.


나름 바쁘다.

일련의 순서 마칠 때까지 쉴 틈 없이 전개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고, 그것도 내 '몸'을 위한 시간이다. 정신이 몸을 우습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체의 건강에 투자하는 것을 경멸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영양제, 저 영양제, 인삼, 홍삼 챙기는 소위 어른들, 여름이면 보신한다며 보신탕 드나드는 남자들을 경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었고.


그런데 오로지 몸에 충실하고 있다. 떠받들었던 정신은 어디로 보내놓고, 오로몸에만 충실하고 있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왜 이게 되었나.


어쩔 수 없다. 결론은 그렇다. 늙었다는 것이고, 늙었다는 것은 몸이 노화되었다는 것이고, 노화는 바야흐로 질병이 전개되는 시기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 나는 늙었고 노화를 겪고 있고, 질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생활에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저곳 아프다. 이 원 저 병원 순례하듯 방문하고 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아이 낳양육하고, 연로하신 시어른 봉양하고, 저질러 놓고 도망친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지칠 줄 모르고 해내며, 헤쳤던 그 몸은 어디로 가고, 쇠약해진 몸에 하나 둘 병을 앓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 정신 잠시 뒷자리로 놓고 있자. 몸부터 챙기자. 내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언젠가 생길 손주도 돌봐줘야 하잖아.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챙겨줘야 하잖아.


물론 알고 있다. 딸과의 동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애들 봐주러 온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받아하던 친구도 봤고, 유유자적하던 생활 접고, 손자 봐주러 서울 올라간 시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내려가고 싶다고 호소하더니, 어느 날은  연예인들도 산다는 그 고급진 빌라촌에서, 딸한테 당한 설움에 북받쳐 한밤중에 베란다로 뛰쳐나가 엉엉 울었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딸 낳은 엄마로서의 숙명 아니겠는가. 각오는 되어 있다. 그래도 시누처럼 울음 울 때도 있을 테지. 그렇다고 딸애의 도움 요청을 외면할 재간은 내겐 없다.


그래서 몸 튼튼히 잘 챙겨 할 끝날 때, 떠나도 하낱도 미련 없을 때, 그때까지 살아내야 하아.

경리 선생님 말씀처럼 '버리고 갈 것이 없어 홀가분하다'가 될 그날까지.


오늘도 오전 의식을 잘 치렀다. 

조금만 더 몸에 집중할 것이다.

거의 무아지경에 이를 정도로 집중이 된 후엔, 뒤로 미뤄 둔 을 챙겨야지.

아니 벌써 챙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삶이고 싶을 앞으로 당겨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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