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윤상학 Aug 27. 2024

까치 소리

기다림


철컥 철컥...


까치 소리가 들린다. 설거지하다 고개 들어 창 밖을 내어다 본다. 아파트 단지 정원수 이리저리로 찾아보아도 까치는 보이지 않는다.


철컥 철컥.... 까치 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고개 들어 어디 있는지 이리저리 찾아본다. 더불어 아득히 먼 옛날이 함께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어느 날, 엄마는 동생과 나를 시골 할머니 댁에 놓아두고선, 내가 고등학교 진학으로 다시 부모님 집으로 합가 했을 때까지, 6년 여의 세월 동안 다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동안 딱 한번,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은 곧 데려갔었는데, 그때 한번 방문 이후는 발걸음을 뚝 끊었었다.


우리를 두고 가거나, 동생을 데려가면서 언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이나, 무슨 다짐을 하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니던 학교는 그 길로 중단되었고, 갑자기 홀로 할머니 댁에 떨어진 매일매일을 목이 빠져라 엄마를 기다렸었다.

너른 논으로 이루어진 넓은 들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툇마루에서 까치발을 하며, 마음 급한 날에는 동네 어귀에 있는 당수 나무로 달려가서,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할머니 댁 담장 앞에는 키 큰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 감나무에는 종종 까치가 날아와 철컥철컥 울어대곤 했었다.

특히 그런 날엔 드디어 오늘 엄마가 오나 보다 하고선, 어김없이 툇마루에서 까치발을 하였었고, 마을 어귀로 달려가 저 멀리 산 모퉁이로 사라지는 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길에서 엄마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어쩌다 그 길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엄마가 아닌 걸 확인할 때까지, 그 사람을 지켜보았다.



까치 소리는 내겐 기다림이다. 6년여의 세월 동안 까치 소리에 엄마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애타는 기다림' 자체였었다. 엄마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매번 까치 소리에 속고도, 울면 또 엄마를 기다렸었다.


TV,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와는 동떨어진 세계, 무속신앙이 지배하던 1970년대 초반의 시골이었던, 할머니댁에서 넘쳐나던 미신속담과 전설을 진실로 알고 있었던 10살 꼬맹이는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포기하고 있다가도 까치가 울면 또 기대하고, 또 속고, 그러한 나의 기다림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극에 달한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절상차림으로 경주시내를 출입하는 할머니 발걸음만큼 분주하게 나의 마음은 엄마 만날 기쁨에 설레었다.

명절 며칠 전부터는 밤잠도 설친다. 어쩌다가 까치라도 울라치면 이번엔 틀림없다며, 더욱 설레어 기쁜 마음을 어쩌지 못하였다.


명절 전날, 아직 엄마는 오지 않고, 경주시내에서 옷가게를 하는 큰 숙모, 역시 경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은 숙모가  바리바리 손에 무언가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반가운 가운데, 눈은 계속 그들 어깨너머로 대문 쪽을 향하였다.

엄마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무슨 일 있어서 오늘은 못 오고 내일 아침에 오려나 보다 하고, 다음 날을 뜬눈으로 기다린다.


명절 당일, 큰 작은 할머니, 막내 작은 할머니, 숙모들이 콩나물 다듬기서부터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수북이 마련해 둔 것을, 할머니와 숙모들이 부엌과 안방을 드나들며 차례상을 차린다. 옆에서 일손을 거드는 나의 시선은 대문을 놓치지 않는다.

예쁜 옷을 사들고 환한 웃음 지으며 나타날 엄마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물러나지 않는다.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들, 삼촌들, 그리고 여러 오촌 아재들이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상을 물릴 때까지 끝내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기다림에 원망이 포개진다. 기다림과 원망으로 복잡해진 마음에 어른들의 이야기들은 어지럽게 흘러간다.

어느 누구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러다 지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었다. 혼자 상심한 마음을 안고 명절을 그렇게 허탈과 원망과 그리움으로 보내었었다.


까치 소리...

애타게 엄마를 기다렸던 아득한 어린 시절의 나,


까치 소리가 싫다. 안 들렸으면 한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애달피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가 너무 애처롭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마음으로 또 애타고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매일매일 애타게 목이 져라 엄마 기다렸다고. 왜 오지 않았느냐고 원망 섞인 말을 하였었다.

자식 안 보고 싶은 에미가 어디 있느냐며, 못 가는 내 마음은 어떠했겠느냐며, 엄마는 답변을 해주셨다.

그러나 미안하다, 니 마음을 내가 못 헤아렸다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말 한마디 듣고 싶었는데, 끝내 엄마에게서 그 말은 못 들었다.


경주시 대지주 집안의 딸로 자라났으나, 잘못 만난 남편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얌전하고 허용적이셨던 어머니는 갑이 넘은 나에게 날씨가 추우면 춥다고 전화해 오시고, 더우면 덥다고 전화해오셨으나, 어린 시절 자식의 마음 애끓게 하신 그 죄로 어머니는 충분히 형벌의 세월 살다 가셨다.


내 일 내 잘 알아서 하는 다 큰 어른한테 쓸데없이 전화하지 말고, 어릴 때, 엄마가 세상 전부이던 그 시절에 나를  잘 챙겼어야지 하며, 애타게 기다렸던 마음 팽개친 엄마를 외면하는 것으로 나는 되갚았다.


철컥철컥..... 까치가 운다.

애타게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 옛날의 꼬맹이는 또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다.


엄마 미안해. 용서해 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지금 또 엄마가 보고 싶어.

작가의 이전글 여름이 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