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ok. It's not ok'
'Enough'. 'Not enough'
문득,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마터면 어쩔 뻔했을까. 아득해지고 깜깜해진다.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든든한 빽도 없고, 특출한 재주도 없는데, 그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아니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잘 사는 현이 있잖아.
고3 자율학습 시간에 늘 뺑뺑이 치고, 겨우 전문대 들어가 뽀글이 머리에 애연가였던 현이는 잘만 살고 있잖아. 박정희 정권 시절만큼의 위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한 위세의 국가 기관의 고위직에 있다 퇴직한 남편에 의사 출신 딸에, 아버지와 같은 길 가는 아들에, 쭉쭉 빵빵 잘만 살고 있는 현이도 있네..
그러나 그건 현이 인생 몫.
삼신할미가 점지해 준 내 몫의 인생에는 그런 운은 없는 듯하니, 오히려 자칫 더 나락으로 갈 수 있었던 길을 다행히도 이 정도의 길로 가게 된 것은 오로지 나의 성실함으로 얻게 된 것일 터.
그래서 이나마 살아가게 된 것에 한숨을 돌린다.
설거지를 하고 요가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수영을 하고 여행을 하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벗들과 이런저런 인생사 나누고...
생계에 휘말려 쫓기지 않고, 누구 구속도 없이 온전히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여유롭게 이런 날들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물론 풍족한 삶은 아니다.
계열사 26개 거느린 그룹 회장 사모인 미옥이처럼 미술관 같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다섯 안에 드는 기업 그룹의 이사인 남편 두고 있는 혜련이 처럼 수억 원씩 하는 유명 리조트 회원권을 몇 개씩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재계 손꼽히는 계열사 기업의 사장 사모인 수경이 처럼 해외 나들이를 동네 마실 다니듯 하는 모습은 아니다. 친구들이 참 부럽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보면 나와 여러 방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비록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다른 친구들도 집안이 고만고만했다. 미옥이는 부모님이 중학생 때 모두 돌아가셔서 언니 두 명과 살면서 학교를 마쳤고,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와 교사하다 연구원이던 남편 소개받아 결혼하면서 직장 그만두었다.
혜련이는 시골 할머니댁에서 지내던 때인 중학교 3학년 때 짝꿍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 소개로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지내고 있고, 여고 2년 때 앞자리에 앉았던 수경이는 아버님이 철도 공무원이셨는데, 역시 나와 같은 대학 들어가 사귀게 된 남학생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아, 시골서 잠깐의 교사 생활 후 결혼과 더불어 미국으로 발령 난 남편 따라가면서 가정에 충실한 주부가 되어있다.
모두 비슷한 서민의 집안에서 자랐고, 고졸인 혜련이를 빼고는 모두 직업도 나와 같았다. 오히려 여고 시절의 학업 성적은 내가 훨씬 나았고, 대학의 학과도 미옥과 수경은 좀 낮은 계열로 선택하였다. 외모도 넷 모두 비슷하여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경제적 수준의 차가 어마무시하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제 삶의 몫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들의 엄청나게 차별화된 삶 따윈 내 사고의 바운드리에는 없다. 그저 그네들의 삶을 TV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모습 정도로 볼뿐이다
그래서 나의 삶이란 이 정도가 최고였으며, 이 삶조차도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해 삼신할미가 가여이 여기는 마음으로 던져 준 것이 아닐까 하고 있고, 그래서 현재의 소소한 이러한 생활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이므로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물론 약간의 더 여유 있는 삶이면 더 좋겠다
파리에서 남프랑스 해변으로 이탈리아로 알프스로 이어지는 여정을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다. 그리스에선 넋을 잊고 옛 신화 속에 빠져 보고 싶고, 독일, 오스트리아 돌며 헤르만 헤세도 만나고 괴테도 만나고 바흐도 쇼팽도 흔적 닳아 없어지도록 느끼고 싶고....
그저 왔노라 보았노라 식의 살짝 발만 담그고 그치는 관광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많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재빨리 현실로 돌아온다. 사지 멀쩡하고 오감각 아직 살아있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미세한 햇살의 기운도 알아차리고, 요란한 여름 풀벌레 울음 속에서도 귀뚜라미 울음 구분해 내어 가을이 오고 있음도 느낄 수 있다. 사그라 들어가는 햇살과 그 아래 어느새 생기 잃은 풀잎에서 나는 건초 냄새에서도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살갗에 닿는 바람의 무게로도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아챈다.
지금의 삶 괜찮나...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됐어. 충분해
'It's ok.' 'Enough'
요즘 자주 중얼대는 영어 표현이다.
욕심을 멈춘다. 만족한다. 분에 넘치는 욕망을 거둔다.
분에 맞게 적당히 멈춘다. 그리고 좋아. 잘됐어. 충분해를 마치 주술 걸 듯 되뇌인다.
끝없이 비교하며 낙심하고 들끓는 욕망에 힘들 때가 있었다. 가볍게는 유행하는 패션에서부터 더 나아가서는 완장과 명예까지도 따라가고 싶어 애 끓이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갈려고 애써 보지만 어느새 희망은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게 벌어져 있었고, 고개 떨구며 낙심했던 날들이 있었다.
이젠 패션도 놓았다. 완장도 명예도 모두 놓았다
그저 내 분수에 맞게, 정갈하게 의복 정제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좋아하는 것을 조용히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친구들의 경제적 풍요가 부럽긴 하지만 그것은 곧 나만의 즐거운 취미로 호환된다. 이제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 외피에 흔들리지 않는, 그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는 단단한 나만의 세계가 구축되었다. 단단한 내면이다.
이제서야 구축되었다. 옛사람들은 사십을 불혹이라 했던가. 그에 비하면 한참이나 늦었다.
그래도 이제서라도 구축되었으니 다행이다.
조업에 끌고 나온 어선보다 큰 거대한 물고기를 악전고투하며 힘겹게 해안가에 몰고 왔을 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 산티아고의 마음은 떨어져 나가 버린 살점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물고기와 싸워 끝내 잡고 끌고 왔다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해, 사력을 다해 어부로서의 할 일을 했다는 것. 그것에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인생의 파고를 고비고비마다 힘겹게 헤쳐온 삶.
여기에 다다를 때까지 놓치지 않았던 치열함.
그 하나로 자족한다. 그 누구의 말에도 연연하지 않는, 자기 스스로에게 가지는 자기 내적 충만감..
그것만으로 충분한 경지에 이르렀다. 산티아고에 다름없다.
다만 흔들리지 않는 내면에 따뜻하고 품 넓은 인격 수양은 계속 보태야 할 것이고, 호기심과 탐구심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고, 단단한 내면이 자칫 누구에게도 덕 되지 않는 완고한 고집으로 변질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뉴스에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노후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바야흐로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직장에서 은퇴하여 사회로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시기가 되었다고 한다.
베이비 부머 1세대로서, 나를 비롯해 내 또래들도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 외에 일반 회사 다니던 친구들은 퇴직한 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정년이 좀 긴 교사하고 있는 친구들도 하나, 둘 명퇴부터 시작하여 직장을 물러나고 있다.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물러날 때는, 그 노동의 멍에에서 풀려난 것에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동년배들이 많다고 연일 뉴스에서 말하고 있다. 몹시 안타깝다.
우리 세대들 참 열심히 살았다. 부모 잘 만난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먹고 입는 것조차 부족했던 집안에서 어렵고 힘들게 자랐다. 국가 자체가 가난했던 1960년대, 70년대를 뚫고 자라난 세대들이다. 오직 공부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절이라 부모들은 없는 가운데 악착같이 자녀들을 교육시킬려 하였고, 그래서 대학 정도의 학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길 바랬고, 가능하면 '사'자 달린 직업에 올라타기를 염원했었다. 그래서 초등학생들 선망하는 직업순에서 유투버가 최고의 소망하는 직업으로 부상했다는 현시점에서도 우리 베이비 부머 세대는 여전히 '사' 자 직업을 최고로 손꼽고 있다.
그렇게 없는 가운데 자라나서 없는 설움을 알기에 그들 부모가 했던 것처럼 자녀 교육에 올인하다 보니, 정작 본인의 노후 대비에 여력이 있을 리가 없다.
겨우 집 한 채가 전부인 경우가 많고, 열심히 부어둔 연금은 생계에 턱없이 부족하여 다시 또 일자리 찾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뉴스는 무척 가슴 아프다.
열심히 자녀 양육하고 살아온 동년배들의 안타까운 상황들을 보면서, 그나마 생계 위험까지는 가지 않고 이 정도의 여유로운 삶이라도 누릴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고 참 다행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물가는 몇 년째 계속 오르고 있고, 더구나 생활에 기본이 되는 먹거리의 물가 상승이 걱정될 정도로 올라가고 있어서 자칫 이 여유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저 딸아이에게 손 안 벌리고, 이 정도의 생활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러한 삶이 깨어질까 걱정이다. 당장의 생계 힘들어하는 동년배들께는 너무 송구하다.
내 삶도 걱정이지만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딸아이를 비롯해 청년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국민 50% 이상이 몰려 있는 수도권. 그중에서 서울의 집값은 더 이상 청년들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려, '집' 자체가 허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디. 더구나 지방에 살고 있는 부모 입장으로선, 도저히 어찌해 볼 방도가 없는 것에 허탈해진다.
우리 때는 그래도 꿈을 꾸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그 꿈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들도 더러 맞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감생심인 것 같다. 특히 수도권의 집값을 보면 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슨 수로 집을 장만한단 말인가. 그래도 한때는 하나 보다 둘이 나으니 결혼이라도 하면 달성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둘이 합하여도 웬만해선 장만하기가 힘든 거 같다. 서울에 집을 둔, 그러면서 경제적 여유가 아주 많은 사람들만 살아날 수 있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지경이니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싶다. 구질하여도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자존심 구겨 가며 서로 눈치 보며 연애하기도 결혼하기도 더더구나 아이 낳기도 다 싫은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높고 견고한 성벽 앞에서 탄식하며 영끌, 동학 개미, 서학 개미, 비트코인, N잡러... 우르르 몰려다니며 살아보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의 좌충우돌 몸부림이 눈물겹다. 피 끓는 청춘이 자칫 삶에 의욕 잃고 무기력하게 되는 건 아닌 지 심히 걱정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되도록 나라를 만든 그동안의 정부 이끈 인물들에 화나고, 지금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도, 실행도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정부에 못지않게 원망하는 대상들이 있다. 부동산 투기에 앞장선 부동산 투기꾼들이다. 그저 성실하게 노동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통해 하나씩 성실하게 부를 쌓아갔더라면, 모두가 이러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을까.
노동하지 않고 쉽게 돈 벌려는 소수의 그 탐욕이 탐욕을 낳고, 그렇게 50여 년 확대 재생산된 탐욕이 오늘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획 부동산, 중개업소들, 일명 빨간 바지 사모로 상징되는 떴다방 아지매들 등 부동산 투기꾼들에 대한 원망이 크다.
기껏해야 애 교육 시키고 집 한 채에, 부어 넣은 연금에 의존하는 정도의 삶이, 약삭빠르게 그들처럼 떴다방 기웃거리며 분양권 딱지 사 모으고 되팔고 하였더라면 서울에 떡하니 딸애가 두 다리 뻗고 지낼 집 한 칸은 마련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무능력한 것 같아, 성실하게 근로 소득에 의존하고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이익 좇는 걸 나무랄 순 없지만,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자신의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대한 성찰 없이 부(富) 축적에만 매몰한 나머지 결국은 자녀 세대들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투기를 통하여 쌓은 부를 자녀에게 두둑이 물려주는 사람들이야 전혀 개의할 상황 아니겠지만...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눈물 강인데 마음 편할까...
국가와 민족의 발전은 정부의 좋은 비전 제시와 그에 맞는 정책 시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 구성원인 국민들의 생활 태도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인간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 실현, 규칙과 법 준수 그리고 나아가서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고 실현하는 생활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자세로 삶에 임해 왔다면 우리 사회 전반을 휘감고 있는, 그래서 기성세대도 청년층도 모두가 힘든 오늘날과 같은 현상은 없었으리라 감히 생각한다.
국민들의 일상생활 자세에는 지도자 그룹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의 부름 받아 고위 관료직에 후보로 이름 올린 자들의 국회 청문회에서 보이는 여러 부정하고 부패한 천태만상의 이력들을 보노라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고, 어느 한 명도 법망에서 예외인 경우가 없는 것에 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지성 집단으로 일컬어지는 교수, 의료인, 법률인 집단에서의 행태도 실망스럽기가 마찬가지인 경우를 언론에서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그들의 부정하고 부패한 행위들을 보고 국민들이 따라 하고 합리화하고, 그것은 다시 아랫사람들에게로, 결국에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로 까지 확산되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태의 만연, 나아가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행위들까지도 백주 대낮의 공공장소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자 그룹들의 올바른 삶의 철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인 것 같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이 무너질 것 같다.
국가의 발전과 쇠퇴에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 자세가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그래도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으므로, 끝없을 것 같이 오르는 집값과 관련하여서는 정부의 지역 개발과 더불어 활발한 지역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투기를 예측, 차단하기 위한 정교한 정책 수립 및 실행이 부재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시스템만 마련되었어도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국토 개발이 시작된 70년대 초창기에는 우리 사회도 아직 자본주의가 미성숙 단계였으므로 부동산 투기와 같은 문제 발생을 예측 못할 수 있었겠으나, 그 이후 문제들이 불거져 온 세월이 50여 년인데, 아직도 뾰족하게 해결 못하고 있는 국가가 개탄스럽다.
한편으론 개인의 삶 헤쳐오는데 진력하느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더 목소리를 내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자책도 해본다.
지금은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들 대로, 청년층들은 청년층들 대로 모두 살아가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지금은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심각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의 총체적 난국에 와 있는 것 같다.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 지역 소멸, 심화된 빈부 격차, 불안정한 행태들의 출몰. 기후 위기, 아슬아슬한 외교 관계, 경색된 남북 관계..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출생이라고 본다. 저출생은 당장 현실적으로는 노동력 부족, 인건비 상승, 상품이나 서비스 요금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인플레이션의 상승으로 저성장을, 그리고 크게는 우리 민족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결과를 낳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저출생의 원인과 방법을 생각해 본다.
저출생의 원인은 결혼 적령기의 연령들에서 결혼과 자녀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으로 발생한다. 이들 연령들이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달리 자아 행복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사고도 있겠지만 경제력 문제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결혼 적령기 청춘들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나왔다. 그들의 경제적 수준으로는 결혼도 자녀 출산도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얼마 전 발표된 통계를 보면 서울에서의 출산율이 가장 낮았다. 그만큼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집 값을 보라. 도저히 그들이 따라갈 수준인가. 집값이 비싸니 전세도 월세도 임대료가 높을 수밖에. 젊은이들에겐, 특히 일자리 찾아 지방에서 올라간 젊은이들에겐 '내 집 갖기'가 그림의 떡일 수밖에...
그래서 저출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지역 균형 개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빼면, 물론 수도권에서도 인구 감소 지역이 생겨 나고 있다고 하지만, 지방의 소멸화는 심각하다.
지방 농어촌은 물론 대도시도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지방의 경우는 1차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너도나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진학해 가는 데서 청년 유출이 많이 발생하고, 2차로는 대학 졸업한 청년들이 또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가면서 청년 유출이 많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청년 유출이 지방 소멸의 주된 요인이다.
그래서 지방은 청년층의 유출로 인구가 줄며 빈집이 늘어나고 지역이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반면 서울은 전국에서 몰려드니 갈수록 비대해지고, 따라서 아무리 집을 지어도 살 주거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더불어 집 값이 고공행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 발표에 의하면, 주택 공급 늘리려 가뜩이나 녹지 공간 부족해 숨 막힐 것 같은 서울에 그나마 남겨두던 자연 공간인 그린벨트까지 파헤쳐 집을 짓는 단다.
딸아이 집에 가느라 한 번씩 서울 올라갈 때마다 뿌연 대기에 갇힌 시가지에서 눈도 코도 목도 따갑고 칼칼하고 매캐하여 딸아이의 건강이 걱정되곤 한다.
딸아이를 비롯해 서울 시민들은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마음껏 숨 쉬며 푸른 녹지 공간에서 양질의 삶을 살고 싶어 할 텐데, 언제까지 자연을 갉아먹고 회색 빌딩을 늘려갈 것인지 정부의 근시안적인 땜질식 정책이 한심하고 안타깝다.
아무튼 그러므로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인구를 잡아야 된다. 그렇게 하면 지방 소멸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고, 서울 집값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답이 나온다. 지방에서 빠져나가는 고교 졸업생들을, 대학 졸업생들을 지방에 앉히게 하면 된다.
그들을 지방에 머물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인데,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자리는 지역 출신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이를테면 지역 고졸출신이나 지역 대졸 출신들에게 70~80%로 배정하는 등 지역우선배정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마지막은 결국 일자리 따라 찾아가게 되어 있으니 이렇게 지역 출신을 우선 배정하는 것은 이미 공기업에서도 실시하고 있는데, 그 비중을 현재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기업의 지방 진출에 대폭적인 법인세 감세나 면제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지방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방 소멸과 서울의 집값도 어느 정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지방은 기업 이전에 따른 지역 개발로 부동산 투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문제 차단을 위한 대책도 정교하게 수립, 시행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산업 현장 곳곳에서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베이비 부머 1, 2차 세대들의 은퇴가 늘어나는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년층들의 고용지수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동력 문제도 일정 정도 해소하면서 베이비 부머들의 가계 안정과 청년층들의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현재에서 정년을 3~5년 정도 연장하고, 대신에 연장되는 기간에 있어서 보수와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를테면 기존 근무 시간(8시간)의 절반 시간(4시간)으로 줄이고 임금도 절반으로 삭감하는 것이다.
그 깎인 근무 시간과 임금을 청년층들을 고용하여 쓰자는 것이다. 즉 기존 경력자는 오전 시간을, 청년층은 오후 시간을 교대로 근무하고, 기존 근무자의 임금을 반반씩 나누어 갖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동력은 유지되면서 고령층에게는 계속적인 생계의 안정성을, 청년층들에게는 실업 구제의 효과를 어느 정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기존 직장인들의 불만은 많을 것이지만 당장 은퇴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차피 퇴직하여 다른 종류의 직장을 찾아 나서야 하는 형편이라면 이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청년층들도 임금이 불만스러울 수 있으나 마냥 실업 상태보다는 이 방법이 나을 것이다.
물론 현장에 적용했을 때 실무적으로 번거롭고 복잡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에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행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은 보완해 가면서 해결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 졸업 후 인생에 처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더랬다. 졸업하던 1984년 당시를 돌아보면, 1980년 들어서부터 베이비 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사회로 배출되던 시기였고, 이에 비해 사회전반적으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적 상황이었다.
잠 못 들며 뒤척이던 날들의 절망이 아프게 떠오른다.
6개월 가까운 밤을 그렇게 보내었다.
지난 7월 통계에 의하면 젊은 층들 중에서 일없이 쉬었다는 대졸 출신이 무려 400만 명을 넘겼다고 하며 20, 30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통계에는 군입대자, 전업 주부, 임시 휴직자 등 여러 요소들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긴 하나 일단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다.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꿈으로 젊은이들이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라도 더불어 활력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라가 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왠지 모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설국을 끝없을 듯 달리는 자본주의 열차 안, 극명하게 대조되는 계급... 결국 무너지는 거밖에 더 남았나..
영화 한 장면이 어른 거린다.
누구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다시는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청춘은 집안의 경제적 곤궁으로 너무나 고독하고 암울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궁핍은 결혼해서도 계속되었었고, 50대 중반이 되었을 때서야 겨우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인생이 어떻게 설계되었던지, 경제적 궁핍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더 힘들었던 정신적 고통도 함께 동반자처럼 따라다니다가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온 지 겨우 요 몇 년이다. 이제 겨우 안식을 찾았다.
겨우 한숨 돌리고 커피 즐기고 있다.
그래서 많이들 청춘을 부러워하며 돌아가고파 하는 것 같은데, 내겐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만 하여도 끔찍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여 힘들게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을 볼 때마다 가슴 저린다. 아득히 먼 옛날, 한줄기 희망조차 보이지 않던 캄캄한 시절, 보들레르를 끌어안고 음습한 구석으로만 파고들었던 젊은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내라고 박수 보낼 자신 없다.
시스템이 힘내봤자 에너지만 소모되게 만드는 세상인데 무슨 박수를 보내라 말인가.
그저 먼 훗날 살아온 삶 되돌아보았을 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아서 후회 남는,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하는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유롭게 매일을 즐기다가도 국가와 민족의 담론으로 들어가면 우울해진다.
그래서
'It's ok.'이다가도 ' It' s not ok' ' 가 되고
'Enough'이다가도 ' Not enough'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