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 모나코, 생폴드방스, 칸느, 카시스, 마르세이유, 액상프로방스
국내 여행사에서 온 인원은 가이드 한 명 포함하여 모두 23명이었다. 동향인 대구 지역에서 같은 대학을 다닌 남편들과 부부 연을 맺은 아내 포함하여 12명이 두 커플은 대구에서 나머지 네 커플은 서울에서 정기적인 여행 일정으로 왔고, 여성 친구들끼리 5명, 부부 2팀 4명, 자매 한 팀이었다. 친구들끼리 온 다섯 명만 50대, 나머지는 자매 중 언니 70대를 제외하고는 가이드 포함 17명이 모두 60대였다.
그리고 관광 일정은 니스 동쪽 해안 지역의 에즈-모나코에서 니스, 그다음은 니스 서쪽으로 이동하여 생폴드방스-칸느-카시스 -마르세이유, 그리고 북쪽 내륙으로 이동하여
액상프로방스-아를-레보 드 프로방스-아비뇽-파리로 이어지는 코스로 7박 9일간 진행되었다.
첫날은 니스에 저녁 늦게 도착한 관계로 관광을 못하고 다음 날부터 관광을 하였다. 이번에 이용한 여행 프로그램은 자유 여행과 패키지여행을 결합한 형태의 상품이다. 즉 항공과 국내 이동 및 숙소와 식사는 여행사에서 제공하고, 일부 여행지는 가이드의 동반 입장 및 설명이 따르나 대체로 관광지에 도착하여서는 주요 핵심지에 대한 가이드의 대략적인 설명과 안내 이후 각자 시간을 갖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도시 간 이동의 편의는 제공받으면서 관광지 현장에서는 짧으나마 각자 희망대로 자유롭게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만큼 또 관광지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는 각자가 미리 계획을 잘 세워놓아야 주어진 시간에 효율성 있게 관광을 마칠 수 있다.
(에즈 빌리지)
(모나코)
첫날은 니스에서 출발하여 동쪽 해안 지역으로 에즈 빌리지, 모나코를 들르고 다시 니스로 돌아와서 관광을 마치는 일정으로 되어 있었다. 이미 에즈빌리지와 모나코는 혼자 먼저 들러보았지만, 그때 들르지 않았던 에즈 빌리지의 선인장 마을을 입장하여 관람하였고, 그냥 드라이브만 하고 차창으로 풍경 감상에만 그쳤던 모나코는 왕족들의 거주지인 대공궁과 모나코 대성당, 해양 박물관 등을 구경하고, 해안 식물원을 따라 산책도 해보았다.
(샤갈 미술관)
니스로 돌아와서는 가장 기대했던 것이 여행사팀과 함께 갈려고 미뤄두었던 샤갈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니스 시가지에서 약간은 벗어난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올리브 나무가 정갈하게 손질 잘된 잔디밭에 여유롭게 심겨 있는 정감 가는 정원에 건물은 그레이 색상에 단출한 사각형태를 이루고 있어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실내 전시 공간은 보수 관계로 일부만 개방되어 있었는데,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반원형 구조에 가로, 세로 폭 2~3m 정도 되는 대형 그림들이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같은 구약 성서 내용을 담고 전면에 전시되어 있었다. 태곳적 우주의 분위기를 풍기는 짙푸른 바탕색에 인물과 물체들이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으로 변주된 화폭은 색상에서 아우라가 압도적이었다. 한 발작 가까이서 들여다보노라니 성서의 내용들이 마치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잠결에서 옛이야기를 듣는 듯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창조와 인류의 탄생, 그리고 인간 사회의 원죄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꿈꾸듯 동화처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과 재주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리고 환상적인 색상과 형태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니 고맙기도 하다. 발걸음 옮겨 이동하면 환상적인 파란색 바탕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도 접하게 된다. 강렬한 남프랑스 지역의 내리쬐는 햇살, 그 아래 일렁이는 지중해 푸른 물결과 오가는 사람들의 밝고 환한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듯하다.
(생폴드방스)
다음 날인 5월 11일엔 이틀 연박한 호텔을 떠나 중세 요새 도시인 생폴드방스로 향하였다. 이곳도 이미 어제 홀로 다녀갔던 곳이지만 예쁜 지역이니 또 들르는 것도 좋았고, 가이드의 설명으로 몰랐던 내용도 알게 되어 좋았다. 어제는 들르지 않았던 샤갈의 묘지를 방문하였다. 샤갈이 이곳에서 두 번째 부인과 노년을 보내다 98세인 1985년에 생을 마감하였는데, 당시로선 장수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유대계 출신으로서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장수한 비결은 무엇일까. 평생을 그리워했다는 고향 비테프스크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풍성해서였을까. 부모님과 친지들과 동네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 내는 유대계 사회의 기독교와 음악, 춤과 의복과 관혼상제와 여러 관습과 그런 행위가 이루어졌던 공간의 지형지물 등, 어린 시절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이미지는 웬만하면 오래 기억된다. 그 기억 속에 행복한 기운이 많다면 아마도 그 추억을 화폭에 담는 매 순간들이 행복으로 충만할 것이다.
고향 비테프스크를 생각하면 따스하고 자애로웠던 부모님의 눈길과 마을 사람들 사이 오갔던 정담, 골목을 내달으며 함께 뛰놀았던 친구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들판에서 묵묵히 풀을 뜯으며 순하게 금뻑이던 소와 말의 커다란 눈망울, 매에에 소리 내며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달리던 염소들의 모습,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첫째 부인 벨라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던 느낌 등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고향은 아름다운 하나의 동화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느닷없이 엄마가 놓고 가 한없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보내었던 국민학교, 중학교의 6년간의 할머니 집이 내겐 고향이 되어 버렸다. 세세히 파고들면 온갖 농사일로 고되고 부재한 엄마를 목매어 기다리는 한숨의 나날이었지만, 그 모든 고통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어서인지 고통이나 슬픔보다도 고향은 그저 하나의 동그란 전설의 공간으로 동동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아마도 샤갈이 그러했으리라. 더구나 부모와 함께한 생활이어서 어쩌면 더 행복한 유년을 보내었으리라. 그래서 어린 시절의 조그마한 마을의 모든 것을 추억할 때, 아늑한 요람처럼, 한 편의 동화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을 예쁜 색으로 화폭에 담으면서 무척 행복했었나, 그래서 그에게 그림이란 구원이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칸느)
이곳을 떠나 서쪽에 위치한 세계 3대 영화제 축제 공간 중 하나인 칸느로 갔다. 칸느는 니스와 마찬가지로 항구에 위치한 코트다쥐르 지역 중의 한 도시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은 이틀 후인 13일부터 개최하는 영화제를 위해 레드 카펫으로 유명한 계단 주변을 울타리를 쳐두고 시설 정비에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계단 옆에서 인증숏은 찍을 수가 없었고, 건물 내에 있는 굿즈샵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나와서, 이름하여 '명예의 거리'라 일컬어지는 건물 주변에서 바닥에 찍혀 있는 스타들의 핸드페인팅을 마국 LA에서 처럼 좋아하는 연예인의 것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해안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자니 도로 건너편에 도로를 따라 나란히 형성된 명품 브랜드 스토어가 거리(크로아제트가)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도 보였다. 중앙광장 앞 도로변을 따라 레스토랑, 카페들이 즐비한 가운데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가니 역시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 의류점 등 상가들이 경사진 골목을 따라 양옆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점심 식사로 예약되어 있는 식당도 마침 그곳에 위치해 있어서 오가는 길에 눈요기도 하고, 여름에 가볍게 들고 다닐 요량으로 에코백 구매도 하는 솔솔 한 재미가 있었다.
이때 구입한 에코백은 적절한 디자인과 색상을 고르니 재미있게도 '칸느'가 아니고 '모나코'라고 글귀 적힌 가방이었다. 아무튼 이 가방은 여행 내내 소품들 챙겨 넣어 다니는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비교적 좁은 지역에 시청, 중앙 광장, 팔레 데 페스티벌, 명예의 거리, 크로아제트가 등 구경거리가 모여 있고, 레스토랑, 카페, 일반 상가들도 함께 밀집해 있어서 도보로 잠깐씩 이동하면서 편리하게 구경할 수가 있었다.
(카시스)
칸느에 이어 향한 곳은 칸느 서쪽 해안 지역인 카시스였다. 2시간 30분 정도를 이동하여 도착한 카시스는 파란 바다와 대비되는 하얀 석회암의 절벽을 이루는 칼랑코 국립공원의 해안 관광이 주목적이었으나 보트를 타고 나가서 접근해야 하는데, 바람이 거세서 보트를 띄우지 못해 결국 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은 절벽 구경도 좋지만 보트 타기를 좋아하지 않는 입장으로선 공원 트래킹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네티즌이 올린 사진에서 트래킹 해보고 싶은 강한 욕구를 일으키는 풍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네는 전형적인 시골이었는데 주택들이 상당히 고급졌다. 가이드 말로는 가까운 지역인 마르세유의 부유한 사람들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어서 1시간가량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항구 도시 마르세유로 이동했다. 마르세유는 인구 약 90만 명 정도로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남프랑스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인구가 많아서인지 니스, 칸느, 앙티브 등에 비하면 도로나 시가지가 꽤나 번잡하고, 무언가 무질서해 보이고, 깨끗하지 않아서 크게 매력은 못 느꼈다.
(마르세유 구항구)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Notre-Dame de la Garde)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에서 내려다본 마르세유)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구항구(Vieux- Port de- Marseille) 선착장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항구를 따라 레스토랑과 노천카페들이 즐비하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오가는 관광객들로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이삼일 새 같이 다니며 친하게 된 광주에서 온 자매들과 자그마한 카페에 들러 정박해 있는 선박들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에 올라가니 한 눈으로 마르세유 항구가 환히 내려다 보였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중해와 마르세이유의 탁 트인 조망과 그 위를 가득 두르고 있는 두둥실 하얀 솜구름 떠 있는 맑고 파란 하늘이 너무 예뻐 여기서 찍고 저기서 찍고 앵글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셔터를 마구 눌러본다. 그러나 그 사진이 담은 풍경은 좀처럼 마음에 충족되지 않는다.
(롱샹 궁전 Palais Longchamp)
그리고 다음으로 다녀간 19세기 건축물인 롱샹 궁전은 다소 어수선하고 번잡한 시가지에서 뜻밖의 보석 같은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로마 시내에서나 있을 법한 고풍스러운 분수대에서 뿜어져 솟구치는 시원한 물줄기와 반원형 건축 구조가 나무와 꽃들과 어우러져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에 완벽하였다. 너무 예뻐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 찍기에 분주했다.
묵었던 호텔 주변으로 밤에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튿날 일행 중 남성분이 밤에 주점을 갈려고 호텔을 나섰다가 호텔 앞에 자리 잡고 있던 노숙자들, 꽤나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고 한다, 에 겁을 먹고 나가지를 못했다고 했다. 가이드는 예전부터 큰 항구로 기능한 곳이다 보니 불법이민이나 난민들이 많이 유입하는 곳이고 따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였다.
(액상프로방스)
이어서 마르세이유에서 30km 정도 북쪽 내륙에 있는 액상프로방스로 갔다. 액상프로방스는 기대를 많이 한 곳이다. 좋아하는 화가 폴 세잔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가 마지막을 보낸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고흐, 모네, 르느와르,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한다. 고흐의 그림은 그의 고통스러운 삶이 안타깝도록 잘 반추되어서, 모네의 그림은 편안한 자연 풍경 때문에, 르느와르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리고 세잔의 그림은 특히 '생트빅투아르산'을 좋아하는데, 선명하고 청아한 색감과 간결하면서도 힘차고 생동감이 있어서 좋아한다. 그런 화풍 때문에 대체로 정물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과를 주요 대상으로 그려낸 그의 정물화는 좋아한다. 그래서 당연히 폴 세잔과 관련된 곳, 이를테면 세잔의 아뜰리에를 포함한 화가들의 언덕, 세잔의 길, 세잔의 무덤, 그라네 미술관 등의 방문을 기대하였고, 방문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두 방문하지를 못했다. 마르세이유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온 후인 데다 여행사에서 단체로 구시가지와 생소뵈르 대성당 그리고 미라보 거리 등의 안내 후 주어진 자유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도 한번 마음 내 보려고 쳐다보았던 화가들의 언덕은 따가운 햇살과 경사진 언덕으로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그래서 광주 자매들과 미라보 거리의 상가와 카페들을 좀 더 구경하고 한 노천카페에 들러 여행의 기분 한껏 올려주는 알코올 약간 가미된 오렌지 빛 음료에 알딸딸해져 파란 하늘 솜구름만큼이나 부풀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었다. 로마시대부터 온천이 많기로 유명한 물의 도시답게 분수대가 곳곳에 있어서 햇볕 따가운 날에 온 시가지에 시원하게 뿜어지는 분수를 상상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마라보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부부 12명 일행 중 한 남성분이 마침 생일이어서, 식당에서 축하의 의미로 예쁘게 장식한 칵테일 잔에 불꽃 뜨겁게 피어오르는 귀여운 축포를 꽂아 축하해 주었다. 실내는 생일 축하 노래로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흥겨운 분위기 놓칠세라 바쁘게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생일 당사자분께 선물로 드렸더니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나이 70을 앞두고도 순수할 수 있을까. 생일 맞으신 그분은 참 순수하셨다. 어린아이 같았다. 파리에서 일행과 헤어지고 혼자 남아 여정을 더 보낼 것이란 걸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는지, 혼자 남는 것에 대한 쓸쓸함을 위로하며 서운해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표현이 과하다고 느꼈는지, 얼른 정이 많아서 그렇다며 미안함 묻은 표정으로 말하며 혹시나 오해할까 봐 재빨리 남편의 일을 수습한다. 그분의 말씀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언행으로 미루어 마음 따뜻한 분의 순수한 인사로 알고 감사히 받고 있었는데, 아내는 남편의 체면을 알뜰히 챙긴다. 어쩌면 주책없다며 핀잔을 주거나 돌아서서 라도 남편에게 잔소리 해댈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을 감싸며 챙기는 모습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행복한 부부는 그 이유가 있다.
여섯 명 부부 커플 중 다섯 분의 아내는 버스 앞 좌석을 고정 좌석으로 착석하였는데, 이 부인은 혼자 뒷좌석의 남편들 좌석으로 와서 남편의 옆 좌석에 앉아 승하차시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살뜰히 챙겨주었다. 남편의 다소 엉성한 몸차림과 옷매무새를 그렇게 살뜰히 챙겨주고 있었다. 생일 파티 동영상을 부인 휴대폰으로 전송하면서 부인의 전화번호가 남아있었던지라 휴대폰에 카톡 프로필이 뜬다. 부부가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네들의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해와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부부의 모습에 여행길이 좀 더 포근해졌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부부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관계 맺고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 서로에게 그러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따뜻해지는 하루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내일은 아를을 간다. 기대가 많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