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수채화

니 지금 몇 살이고?

by 태윤상학

비가 온다. 보슬비다. 바깥은 온통 뿌옇다. 베란다 밖 아파트 단지도, 멀리 높던 산도 모두 사라졌다. 간밤 늦게 후다닥 기습적으로 내리던 비에 또 야행성 게릴라군 속말하며 잦아든 빗소리로 잠들었더랬는데, 천지를 뿌옇게 김으로 가득 채운 걸 보니 밤새 꽤 내렸나 보다.


민소매 옷차림에 서늘한 기운 느껴 창문을 닫는다.

6월 부터 석 달을 내리 열어 놓았던 창문이다.

뜨거웠던 파티는 끝났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내달았던 잔치는 끝났다.

문을 꼭꼭 닫는다. 걸쇠마저 올려 잠가야 하나..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안으로 침잠할 때가 되었다.


"니 지금 몇 살이고?"


바로 아래 동생에게 묻는다.

너무나 또렷했던 동생의 나이가 이젠 희미하다.

유독 긴 터울의 자매들이다.

여섯 살, 일곱 살, 네 살...

우리 네 자매의 터울이다.

그 바로 아래의 동생이

여섯 살 아래인지, 다섯 살 아래인지 헷갈려

뿌연 바깥을 내다보며 물어본다.

6살 아래였다.


엄마는 참 겁도 없었다.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 동생을 업고

큰 길가에서 숨바꼭질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장~깨이~ 뽀시~'(가위, 바위, 보의 경상도 사투리)

울산 복산동의 한 길가였다.


기다란 작대기를 휘젓고 다니던 이상한 할아버지

(아이들을 데려다가 보리밭에서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의 주인공으로 무시무시했었던 인물) 등장하면

벼락같이 달아나는 친구들 꽁무니 따라

동생을 업고서 죽어라 뛰었던 장면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국민학교 3학년 시절..

하교해서 집에 오면

집 앞 건물 아래턱에서

두 손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고 앉아 있던 동생이

얼른 일어나 달려오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목을 빼고 기다렸을 동생이 너무 안타까워

어쩌지 못했던 시절이다.


엄마는 그렇게 겁이 없었다.

한두 살 배기를 일곱 여덟 살 등에 맡겨두고...

네댓 살 되는 꼬맹이를 혼자 두고...

늘상 나갔다.

곤궁했던 삶을 떠받쳐야 했던

엄마의 고달팠던 삶이 아프게 떠오른다.


문을 꼭꼭 닫고

안으로 침묵해야 할 시간

문득,

아득한 시절이 떠오른다.


가을의 서막을 함께 하고 싶어진다.

60년을 함께 하고 있는 삶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는 존재

창 너머 오고 있는 계절을

함께 맞이하고 싶다.


"물회 먹으러 온나"

"그래.. 그런데 여기 비 온다. 거기는 어떻노?"

"여기도 오락가락한다."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그렇고, 내일 갈게.

내일은 여기도 거기도 괜찮네"

" 그렇네.. 그럼 내일 온나~~"

"그래. 먹고 영덕 가자"

" 조~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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