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레보 드 프로방스, 아비뇽
액상 프로방스에서 1박을 하고 1시간 30분가량 서쪽으로 달려 도착한 곳은 고흐로 유명한 아를이었다. 로마 유적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곳으로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밤의 카페테라스'로 유명한 고흐의 카페였다. 그러나 카페는 문을 닫았다. 자주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장사가 잘되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주인은 굳이 장사를 할 이유를 못 느낄 만큼 벌었나 보다. 정작 카페를 그린 화가는 살아생전 궁핍한 삶으로 고통받았는데, 이런 아이러니가...
(아를 : 고흐의 카페와 주변 풍경)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고흐의 삶에 깊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먹먹한 가슴으로 문 닫은 카페의 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어 본다. 카페옆 기념품 가게에서 '아몬드 나무'와 '해바라기'가 직조된 쿠션 커버를 하나씩 구매했다. 버거운 삶의 수렁에서 헤매느라 그의 삶을 미처 몰랐을 때는 그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무겁고, 거친 붓 터치와 빙글빙글 도는 패턴은 가뜩이나 벅찬 삶에 정신 더욱 사납게 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삶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그의 고달팠던 생애를 알게 되면서, 10여 년 전 네덜란드를 여행했을 때 고흐 미술관을 찾지 못했던, 무지했던 자신을 뒤늦게 강하게 타박하게 된다.
화가로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형을 안타까워하며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고 태어난 자식에게 형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형을 존경하고 사랑한 동생 테오, 그러한 동생에게 수많은 편지로 자신의 그림에 대한 상황과 마음을 전하며 진심으로 의지 하였던 고흐, 그러한 두 형제의 깊은 우애에 감동받아 고흐의 그림을 살뜰히 챙긴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헌신은 고흐의 힘겨웠던 삶에 대한 동정과 더불어 그의 그림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 배경이다. 아마도 한가족의 깊은 사랑이 주는 뭉클한 감동이 전 세계인이 고흐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아를 : 리퍼블리크 광장, 원형 경기장)
키페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 골목을 따라 나아가니 시청사와 오벨리스크가 있는 광장이 나왔다. 아를 시의 중심인 리퍼블리크 광장이다. 이어서 카페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석조 건물의 골목을 지나간다. 삼사층의 붙어있는 건물들의 1층에는 의류, 가방, 보석, 기념품 등의 예쁜 제품들을 취급하는 자그마한 가게들과 빵과 디저트류를 취급하는 카페 그리고 마트, 약국 등의 상가들이 건조하고 빛바랜 석조 건물 아래서 오밀조밀 정겨움을 더하고 있었다. 골목을 나오니 탁 트인 공간에 눈에 익숙한 원형 경기장이 나타났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하게 하는 원형 경기장은 로마 시대 때 건축된 것으로 지금도 투우나 여러 공연을 한다고 하였다. 경기장 앞 기념품 가게에서 라벤더향 주머니를 몇 개 구입하였다. 해충 기피제로 이용해도 좋다고 하여 무거운 캐리어에 부담되지 않을 부피여서 지인들에게도 선물할 겸하여 구매하였다.
(아를 : 론강)
원형 경기장에서 아래에 있는 주택가 길목을 빠져나오니 론강이 흐르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어느 날 이 강 어느 한 어귀에 자리 잡아 그림을 그렸을 고흐를 생각한다. 파란색 하늘과 강, 그리고 노란 별빛과 가로등. 두 색의 오묘한 변주로 고요하고 정적인 밤이 살아 움직인다. 파란색을 좋아한다. 특히 짙푸른 파란색을 좋아한다. 우주 태초의 빛이 아닐까 짐작하는 그 신비하고 오묘한 빛이 왠지 좋다. 그러니 별이 빛나는 어느 날 밤의 짙푸른 론강을 그려낸 그의 그림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레보 드 프로방스 : 빛의 채석장)
이어서 아를에서 북동쪽으로 30분가량 달려 레보드 프로방스로 이동했다. 석회암 암석 지대인 알필( Alpilles) 산악 지대의 바위산의 한 언덕에 세워진 중세 시대의 동네로, 1998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의 하나로 지정될 정도로 골목골목이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한해 100만 명이나 다녀간다는 '빛의 채석장'에 들러 미디어 아트만 구경하였다. 중세 시대의 동네로 이미 에즈 빌리지나 생폴드방스 등을 보았기 때문에 동네 구경을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은 크게 없다.
'빛의 채석장'은 동네 건설을 위해 깊숙이 채굴하면서 생긴 버려진 빈 공간을 2012년에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시키면서 생겨 난 곳이라고 하는데, 주민 20명에 불과하던 곳이 각종 상점이나 레스토랑 등이 생겨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세잔느'의 그림들을 미디어 아트로 보았을 때 생생하게 느꼈던 감동이 오버랩되면서 몇 배나 큰 규모에서 사방으로 살아 움직이듯 연출되는 영상은 장관이었고, 더구나 좋아하는 모네의 작품이어서 감동은 더욱 컸다.
(론 지역의 샤토네프 뒤 파프의 와이너리)
이어서 론강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 업체 중 하나로 특히 교황의 와인이라 불리어지는 와인 생산업체인 샤토네프 뒤 파프(CDP) 와이너리를 방문하여 시음하였다. 업체 측에서 3종류의 와인을 시음용으로 내어 주면서 와인 마시는 방법 등을 시연해 보여주었다. 술을 잘 안 마시는 편인 데다, 그래도 가끔 분위기에 따라 마시는 와인도 깔끔하고 담백한 화이트 와인이나 약간 달달한 스파클링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시음용으로 나온 적포도주들이 맛이 좋은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맛이 있다며 본인들 용으로 또는 선물용으로 많이 구매를 하였다. 특히 부부 동기 모임에서 온 일행 12명과 다섯 명의 친구들로 온 여성분들은 매 점심과 저녁 식사 때마다 와인을 주문하여 마실 정도로 주당들이었는데, 역시나 많이 구매를 하였다.
(아비뇽 : 론강 변 '아비뇽(AVIGNON)' 조형물과 주변 식당)
이어 오늘 일정의 마지막 코스이자 남프랑스 마지막 여행 지역인 아비뇽으로 향하였다. 해그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저녁 식사를 하게 되는 식당이었다. 식당은 론강을 비스듬히 앞으로 두고서 울창한 숲 안에 자리하고 있어서 따가운 햇살에 지친 여정에 편안한 쉼표를 주어 좋았다. 입구 머리 위로는 커다란 현수막에 캠핑 공간도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론강 앞의, 이곳이 아비뇽임을 알려주는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는 글자 'AVIGNON' 앞으로 가서 모두 다양한 포즈로 인증숏을 남겼다.
강변에 위치한 식당이라 일종의 유원지에 있는 느낌이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주방장의 솜씨는 꽤나 좋았다. 나오는 메뉴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의 달콤한 디저트까지 맛나게 먹고 호텔로 향하였다. 내일은 아비뇽 대성당과 아비뇽 교황청, 그리고 생 베네제 다리 구경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구경을 마치면 오후에는 파리행 테제베를 타면서 남프랑스와는 작별하게 된다.
(아비뇽 : 아비뇽 교황청)
남프랑스 여행 마지막날의 해가 밝았다. 조식을 먹고, 짐을 꾸리고 출발한 곳은 여고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운 '아비뇽 유수'가 있었던 역사적 사건의 공간 아비뇽 교황청이다. 중세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1000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종교인 기독교. 그 기독교의 수장인 교황이 황제의 권력에 밀려 거처를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사건. 1309년부터 1377년 다시 로마로 돌아가기까지 약 70년간 7명의 교황이 이곳에서 역임했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얼마나 강하게 느꼈는지 짐작하게 할 정도로 높은 성벽에 요새처럼 지어져 있다. 비기독교인으로서 대략 인지하고 있는 바로 본다면, 하느님을 신봉하고 그래서 하느님이 보우한다는 신념을 가진 종교의 수장이 지내는 곳이 요새화되어 있는 것에서 기독교에 대한 강한 회의를 새삼 또 느낀다. 그 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하기사 어디 기독교만 그런가.. 종교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접할 때마다 종교의 기능을 떠올리게 된다.. 역으로 황제가 교황한테 당했던 카놋사의 굴욕도 떠오르며, 그 치열했던 암투를 벌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튼튼한 요새로 안심했을 공간에 쉼 없이 관광객이 넘나들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인생무상이란 생각이 절로 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발걸음에 잠시 힘이 빠진다.
(아비뇽 : 론강과 생 베네제 다리)
이어 가이드는 우리를 론강으로 이끈다. 넓고 고요한 론강으로 이끈 것은 12세기에 만들었다는 아치교 형태의 다리인 생 베네제 다리 때문이었다.
800여 년 전에 생 베네제라는 청년의 꿈에서 본 신의 계시와 관련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 다리, 아치가 원래는 22개로 건설되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와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모두 소실되고 지금은 4개만 남아 있는 상태로 다리 한 곳에 청년을 기념하는 작은 예배당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상한 힘을 발휘하는 인물들과 관련한 유물이나 유적들을 간혹 접하게 된다. 의심 많은 나잇대에 이르면서는 예수나 부처의 영험한 행위조차 고개 갸웃거리게 되면서 더불어 맞다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들이므로 진심으로 경이롭게 바라보거나 숭배하게 될 터인데, 대체로 설마 쪽으로 결론 내리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본 적 없는 낯선 나라의 아득한 옛 인물인 생 베네제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그마한 예배당에 들어가 두 손 모으고 기꺼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신심이 참 부럽다. 아무튼 이 다리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도에 아비뇽 교황청과 더불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8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다리 아래를 말없이 흐르고 있는 평온한 론강 위로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하얀 솜구름만큼이나 여유롭게 유람선들이 유유자적 오간다. 하늘도 강도 사람도 완벽하게 평화로운 날이다. 안식을 기원하는 수많은 신도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성 베네제의 영혼 덕분일까..
(아비뇽 교황청 주변 풍경)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온 뒤 광장 뒤쪽 골목에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였고, 그 후로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교황청 앞 광장부터 다시 찬찬히 살폈다. 한때는 서슬 퍼랬을, 그래서 아무도 얼씬도 못했을 교황청 앞 광장에는 의자 잔뜩 내어놓고 성업 중인 노천카페들이 있고, 뒤쪽 골목으로는 식당을 비롯하여 기념품 가게, 의류점, 알록달록 한 라벤더 비누 가게 등 여러 상가들도 있고, 극장과 동심 자극하는 회전목마도 있어서 어린 시절 향수에 젖게도 된다.
(아비뇽 교황청 앞 카페 풍경)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끝낸 후 노천카페 한자리를 찾아 앉았다. 권력의 암투를 벌였던, 그러나 사라져 버린 인물들과 더불어 공간적으로 머나먼 나라의, 아득히 먼 시절의 역사에 깊이 심취해 듣고 있었던 여고 2학년의 어느 세계사 시간이 떠오르며
에소포레소 한잔을 강하게 들이켜고 싶었다.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카페에 자리해 있는 사람들 모두 인생무상에 덮여 공허하게 느껴진다. 공허함에 젖어 있는 테이블 앞으로 모델 포스의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뽀얀 코카서스 청년들은 왜 모두 쥴리앙상이지? 여고 시절 미술실에서 보았던 쥴리앙상은 너무 높은 콧대로, 너무 큰 눈망울로, 너무 예리한 턱선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냥 데생하기 좋게 만들어진 조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메뚜기처럼 일정 빡빡하게 관광했던 예전에는 별로 못 알아보았던 것을 이번에는 알게 되었다. 뽀얀 유러피안 청년들은 대개가 쥴리앙상과 같다는 것을. '참 조물주도 정성 가득 들여 만들었네'라고 생각하며, 종업원에게 에스프레소를 한잔 주문하는 새 인생무상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생각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원.. 아니 아직은 정신이 건강하다고 우겨본다. 그런 외모에도 허무에 빠져 공허 어쩌고 저쩌고 했더라면 우울증 환자에 가깝지 않을까라며...
(아비뇽역 : 테제베 승하차역)
집합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장에서 모여 이제 아비뇽역으로 간다. 파리로 떠나는 것이다. 이로서 7박 9일간의 남프랑스 여행은 끝났다. 버스는 끝없을 듯 펼쳐지는 평야 지대를 달리고 달린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아마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르게 전개된 들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서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좀처럼 역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 역이 있단 말이지? 대체로 빽빽한 건물들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 우리의 역과는 달리 너른 들판만 보일 뿐 역이라는 구조물은 보일 기미가 없었다. 광활한 들판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 따라 사라진 어린아이들처럼 가이드의 속임수에 낯선 어딘가로 끌려가는 기분마저 드는 묘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웬 건물이 불쑥 나타났다. 너른 들판에 갑자기 나타난 구조물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 곳에 아비뇽역이 있었다. 태양은 작열하는데 커다란 온실처럼 둘러싸고 있는 유리 천장의 역내는 에어컨을 작동시키지 않아 찜기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시원한 카페를 찾기 바빴다.
기차가 오고 일행들은 각자의 캐리어들을 싣고 승차를 하였다. 기차가 출발하고, 케리어 도난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는 말들이 있어서 돌아가며 캐리어를 지키기로 의논하는 와중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프랑스 여성이 한국인이냐고, 발음 또랑한 우리말로 묻는다. 우리 모두는 깜짝 놀라서 맞다고 하니,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며, 한국어 공부도 하였고,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고, 반려견 이름도 '사랑'이라며 막걸리병, 남산 타워 등 한국의 상징물이 그려진 입고 있는 셔츠 자랑까지 마치 '한국 자랑 대회' 나온 사람 마냥 숨 가쁘게 들려주었다.
k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하더니, 문화 강국으로 자존심 높은 나라의 국민으로부터 그 현상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무척 감격스러웠다. 이젠 정말이지 어깨 당당히 펴고 자랑스럽게 다녀도 되겠다.
기차 실내의 좌석 공간은 우리 ktx 보다는 좁은 듯했다.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휙휙 지나가는 속도로 ktx 보다 빠른 느낌을 받았다. 이제 2시간 30분 정도 북으로 달려가면 우리 여정의 끝 지점인 파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