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 앙티브, 니스 드라이브
오늘은 저녁에 국내서 출발해 오는 여행사팀과 합류한다. 빌린 렌터카 차량도 반납해야 한다. 반납하기 전 니스에서 생폴드방스, 앙티브를 거쳐 니스로 돌아오는 해안 드라이브를 할 생각이다. 즉 니스에서 서쪽 내륙과 해안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둘러본 후 차량을 반납하고 여행사팀과 합류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니스 해변에서 벅차게 보낸 시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 Hotel Lou Castelet- 니스 외곽에 위치)
식사를 하고 이틀간 묵었던 호텔을 체크 아웃한 후 짐 보관을 의뢰할 요량으로 오늘 여행사팀과 함께 묵게 될 호텔을 먼저 갔다. 호텔은 니스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외곽에 있었는데, 시골의 고요한 자연 풍경에 안겨 고즈넉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작고 소박한 비즈니스호텔에서 지내다 호텔다운 호텔에 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얼리 체크인은 안되고, 짐 보관만 된다고 해서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드라이브 모드로 들어갔다.
호텔에서 북동쪽으로 40분가량 거리에 있는 생폴드방스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행복했다. 맑고 파란 하늘 아래 도로에서 완만한 기울기로 접시꽃 같이 형성되어 있는 완만한 지대에 곳곳에 형성된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낮은 차창으로도 한눈에 환히 들어오는 예쁜 풍경을 아껴먹는 과일처럼 느리게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차를 몰며 바라본다. 도로도 한적하여 풍경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작년 캐나다 퀘벡 지역의 예쁜 동화 같은 마을이 떠올랐다. 퀘벡도 프랑스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니 그네들의 프렌치 감성이 동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폴드방스)
그렇게 행복한 시간 속에서 어느 삼거리에 도착하였고, 그곳이 생폴드방스가 있는 곳이었다. 생폴드방스는 에즈빌리지와 많이 닮은 동네이다. 다만 위치에 있어서 에즈빌리지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우뚝 솟은 지형에 형성된 마을이라면, 생폴드방스는 내륙의 완만한 분지에서 불룩하게 솟은 언덕에 형성된 곳이다. 중세 시대에 형성된 고즈넉한 석축의 건축물, 빙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완만한 산지와 군데군데 형성된 마을은 샤갈이 여생을 보낼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마도 다시는 못 올 거란 생각에, 물론 합류하는 국내 여행사팀과 한번 더 오게 되나 홀로 자유롭게는 못 올 거란 뜻으로, 마음 깊이 새기려 발걸음 옮기면서도 예쁜 경치를 몇 번이고 고개 돌려 보고 또 본다. 주택과 상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에즈빌리지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손재주 없는 입장으로선 구매 욕구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들의 재주에 감탄할 뿐이다.
(생폴드방스에 있던 인디고 주차장)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인디고 주차장(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에 아래로 향하는 길 따라가면 있음)에서 벗어나 예쁘다고 하는 항구 도시 앙티브로 향한다. 완만한 지대를 따라 나있는 지방도를 오를락 내릴락 하며 때로는 숲사이로, 때로는 마을 사이로 맑고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주황, 파랑, 하양의 멋진 콜라보 속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마치 천상에 초대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앙티브로 이어지는 내내 드라이브 길은 그렇게 행복한 선물을 주었다. 시간 되고 여력 된다면 정말이지 꼭 다시 한번 더 돌아와 드라이브해보고 싶다.
40여분 가까이 되어 앙티브로 진입했다. 진입하여 들어가는 도로 풍경만으로도 앙티브는 듣던 대로 예쁘고 깨끗하고 고급졌다. 니스보다 오히려 더 구미가 당기는 곳이다. 보다 더 넓은 도로, 더 넓고 고급지고 쾌적해 보이는 카페와 식당가인 이곳은 니스가 많은 관광객으로 좀 북적이고 상업적인 분위기였다면 보다 한적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카페나 식당으로 들어가 그 분위기에 젖고 싶었으나 주차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소심한 탓에 안전하다는 주차장 인디고만 고집하다가 결국 찾지 못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차 안에서 앙티브의 맛깔난 카페와 식당가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항구 쪽의 정박된 뽀얀 요트들과 하늘과 바다, 해변이 자아내는 풍경은 너무나 평온하고도 고결하여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말끔한 도로에서 중세 분위기 풍기는 예스러운 거리로 접어들었다. 구시가지인 듯한데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감성 돋는 분위기에 차에서 내려 이곳저곳 구경하고 싶은 욕구가 재발동 하였으나 눌러야만 했다. 햇볕이 너무 강렬했다. 시즌마다 예약 오픈 날짜 알려오는 남해의 사우스케이프 같이 고즈넉하고 한갓진 곳에 자리한 고급진 리조트와 푸른 잔디밭으로 단장한 골프장을 볼 때마다 입맛 다시면서도 햇볕이 싫어 골프도 중단할 정도이니 작열하는 햇볕 속으로 도저히 뚫고 다닐 엄두가 안 났다. 그리고 저녁에 조인하게 될 여행사와의 만남까지 얼마 안 남은 홀로의 시간을 낯선 곳에서 더듬거리며 조급하게 다니느니 익숙한 니스에서 그간의 여정 되짚으며 느긋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차 안에서 대략적인 감상을 하고, 드디어 대망의 본격적인, 이번 여행 목적의 가장 핵심인 지중해 해안 드라이브로 앙티브에서 니스까지 40여분의 드라이브 길에 나섰다.
최대한 바다와 접하여 달리고 싶어 구글맵에서 유료 도로를 제외시키고 경로를 찾았다. 대체로 유료 도로는 톨게이트가 있는 고속도로인 경우이고, 고속도로는 해변과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톨게이트가 없는 국도나 지방도는 바다와 더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앙티브에서 니스까지 드라이브 길)
서서히 앙티브 시가지에서 벗어나며 어느새 사방 탁 트인 2차선 왕복으로 된 해변 도로로 들어왔다. 곧게 뻗은 도로 저 멀리 아득한 앞으로는 내륙 쪽으로 둥글게 들어가 호를 이루는 곳에 꽤나 큰 지역이 형성되어 있는 듯하였는데, 아마도 이 드라이브의 종점인 지역, 니스 해변이 아닐까 짐작하였다.
지중해 너른 바다는 맑고 파란 하늘 아래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차창을 모두 내린다. 차창으로 넘실대며 지중해 바닷바람이 들어온다. 그렇지... 이 바다 보려고, 이 바람맞으려고 왔지... 오랜 열망 끝에 다다른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다. 그래, 아직은 해낼 수 있어. 더 가보는 거야. 꿈을 세우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더 자신감을 갖자. 그러려면 건강해야지. 약해진 체력을 좀 더 강하게 키울 것을 다짐한다.
달려도 달려도 지치지 않고 지중해는 나란히 묵묵히 함께 달려준다. 맑고 파란 도화지에 흰구름 둥둥 띄우고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하늘, 너른 품으로 편안히 떠받쳐주고 있는 대지, 격려하며 칭찬하며 나란히 달려주는 바다... 세상에 오직 하늘과 대지, 바다뿐인 공간에서 홀로 우주 가득 채우는 시간을 맞고 있다.
꿈결 같은 시간이 흐르는 중에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종종 왕복 2차선 옆으로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에는 뙤약볕 아래임에도 심심찮게 바이킹 의상 풀 장착한 남녀들이 빨갛게 익은 얼굴로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씽씽 지나가기도 한다. 동년배로 보이는 여성도 지나간다. 놀랍다. 나이 타령 그만해야겠다며 정신이 번쩍 든다.
예기치 않았던 일로 24년 6개월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때 나이 48세. 지금의 나이로 보면 무척이나 젊고 예쁜 나이였다. 그러나 공항 상태가 된 정신은 한동안 길을 잃었었다. 삶을 송두리째 뽑히는 듯한 충격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회복하기에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충격의 잔영은 남아 있어 가끔씩 쑥 올라와 멍하게 만들 때도 있다. 어쩌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 중 하나도 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도 싶다. 이제쯤은 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는 무위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본인의 잘못이 아닌 제삼자의 잘못으로는 삶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신을 쏟을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집중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피해를 준 상대를 이기고, 더 발전된 자아로 나아가야 했었는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어쩌면 모른다. 충격만큼이나 비례하여 시간이 필요한지도. 아무튼 다행히 서서히 자아를 돌아보게 되었다. 삶은 그런 것 같다. 끝없는 도전과 응전. 적절한 응전을 못하면 도태되어 버리는, 일반 생물 세계의 법칙이 인생에도 적용된다는 것 말이다. 뙤약볕 아래 빨갛게 익은 얼굴로 열심히 페달을 밟고 가는 저 여성도 어쩜 세상을 향한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
바다와 조금씩 거리를 두고 점점 잘 관리된 가로수가 놓인 도로로 진입하며 서서히 건물들이 나타난다. 코트다쥐르 공항이 있는 지역이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처럼 반짝이는 건물들의 깔끔한 지역에 이어 까마득히 멀리서 보이던 그 지역인 듯 한 곳으로 들어섰다. 조금 더 나아가니 익숙한 건물과 거리가 나타난다. 드라이브 마지막 종점인 니스 해변이다. 얼굴 내미는 지중해를 보며 드디어 도착했다며 속으로 환호했던, 어제는 느긋하게, 그저께는 두리번거리며 걸었던 영국인 산책로를 옆으로 끼고, 개선장군이나 된 듯, 열망하던 모든 것을 이룬 흡족한 얼굴로 한껏 여유 있게 지나간다. 마침내 드라이브의 종점을 찍었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버킷 리스트 1번 지중해 지역 드라이브를 무사히 마쳤다. 두 갈래로 나누어 달려보았던 드라이브 길, 하나는 지중해를 끼고, 다른 하나는 내륙으로, 그렇게 달려보았다.
지중해 드라이브 코스는 푸르고 고요한 지중해를 옆으로 나란히 동무하여 차창으로 넘실대며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 들이키며 니스에서 에즈 빌리지, 모나코, 앙티브, 코트다쥐르 지방의 자연을 최대한 누리고자 한껏 천천히 차량을 몰아 보았다. 그리고 니스에서 생폴 드방스, 앙티브로 가는 내륙 코스는 지중해 해안 드라이브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행복을 주는 코스였다. 완만하거나 평평한 고원 지대를 따라 능소화 같은 주황색 지붕을 한 주택들이 군집을 이루며 초록의 숲에 둘러싸여 형성되어 있는 마을들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쩌면 그다지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해안 드라이브가 시원하게 탁 트인 지중해를 끼고 달리는 동안 무한한 자유를 숨 쉬게 해 준 공간이었다면, 니스에서 생폴드방스, 앙티브로 이어지는 길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 속을 달리는 기분에 젖게하는 공간이었다. 생폴드방스로 가는 내륙 지역도 코트다쥐르 해안지역도 정말이지 다시 한번 더 돌아와 꼭 드라이브해 보고 싶은 곳이다.
(니스 주유소의 모습- 유종별로 색상을 표시해 둠)
꿈을 실현한 뿌듯한 마음을 안고 차량을 반납하였다.
반납하기 전 주유를 한다고 생각해 놓고선 어느샌가 까마득히 잊고선 사무실 바로 직전에서야 생각이 났다. 주유하러 갈려니 번거로워서 그냥 반납하겠다고 했더니, 주유비가 비싸다며 넣고 와도 된다며. 선텐 잘 된듯한 피부의 남미계로 보이는 직원이 '너 진짜 괜찮냐'는 표정으로 세 번이나 묻는다. 진짜 비쌌다. 직접 주유하는 것보다 3배 가까이 비쌌다. 차량 인수할 때 결제하였던 렌트비(보험료 포함)와 보증금은 모두 결제 취소되고, 렌트비와 주유비를 합한 금액으로 새로 결제되었다.
생폴드방스 가는 길에서 마주 오는 트럭과 좁은 길에서 만나 조심히 지나가면서 오른쪽 뒷부분이 도로 옆 설치물에 약간 긁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스크래치가 났던 모양이다. 새로 생긴 자국을 직원이 지적하였다. 풀커버 보험 가입하였다고 하니, 그렇다며 본사에 보내는 보고서에 기록을 해야 한다며 그냥 기록만 하고, 비용은 청구되지 않았다.
여행 떠나기 전 렌터카 관련하여 정보를 검색했을 때 차량 보험이 종종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렌터카 중개 업체(트립닷컴, 클룩 등)에서 차량을 렌트할 때 보험도 함께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경우, 렌터카 영업소에서 추가로 보험 가입을 강요한다든가, 보증금을 즉각적으로 반환해주지 않는다든가, 불친절 등의 여러 가지 굴욕적인 일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외국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서 가격이 비싸긴 하였지만 렌터카 업체에서 차량 렌트와 더불어 그들이 제공하는 보험도 함께 가입하였다.
이번에 이용한 렌터카 업체 알라모(alamo)는 한국에도 취급하는 업체(총판)가 있으나 프랑스 지점은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알라모 본사 사이트에서 렌터카 예약과 보험 가입도 함께 하였다. 보험은 풀커버로 가입하였다. 아무튼 이렇게 가입했던 덕택인지 영업점에서 차량 인수 및 반납할 때 직원도 친절하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머물던 숙소를 산책하면서 길가에 있는 주유소를 보니 주유소에는 유종별로 색상으로 따로 구분도 해두고 있고, 렌터카 차량 주유구에도 차량에 주유해야 할 유종도 표시되어 있어서 주유하기에 헷갈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니스 해변 감상- 홀로 감상하는 마지막 풍경)
차량을 반납하고 과제를 해결한 듯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해변으로 갔다. 영국인 산책로 오가며 산책로 아래로 바닷가 자갈밭에 자리 깔고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렇게 바다 바로 앞에서 지중해를 느껴보리라 했었던 것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파도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해변 가까이 자갈밭에 챙겨 온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홀로 남프랑스 지중해를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오랜 꿈을 이룬 충족감에 달콤하고 편안함으로 바다가 다가온다. 약간의 자신감을 갖게 되어 계획도 시도도 잘해보았다는 자평을 하면서 슬며시 새로운 꿈도 꿔본다.
생각은 제 마음대로 흘러 온갖 상념으로 하염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떠날 시간이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이틀을 묵었던 호텔에서 가까이 있는 중앙역, Jean Medicin 역으로 갔다. 티켓을 판매하는 기계가 있어서 보증금 2유로 포함된 티켓을 카드로 결제하니 카드 형태로 된 티켓이 톡 튀어나왔고, 그렇게 공항행 트램을 탔다. 20분 정도 지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제 여행팀과 만나면 홀로의 니스 여행은 끝이다. 왠지 앞으로는 홀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더 많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