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투어 : 에트르타, 옹플뢰르
노르망디 지역을 투어 하는 날이다. 영국해협을 끼고 바다 건너 영국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의 여행이다. 여행사와는 아침 7시에 트로카데로 광장에 있는 카페 클레베(klebe) 앞에서 만났다. 차량은 9인승의 작은 SUV이다. 부부와 딸로 이루어진 가족 한 팀, 50대 여성 세명의 친구팀, 기사, 가이드 이렇게 함께 탑승하여 이동하였다.
1시간 정도 이동하여 휴게소에서 각자의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규모는 작으나 휴게소는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의 편의점처럼 빵, 샌드위치, 샐러드 등 각종 먹거리와 주전 버리도 있고, 간단한 생필품, 기념품, 의류도 판매하고 있고, 빵과 함께 커피를 추출하는 머신을 갖춘 카페도 있다. 담백해 보이는 빵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여 먹었다. 빵도 커피도 맛나다. 더구나 아침이 아닌가. 파리에서 겨우 한 시간 정도 벗어났을 뿐인데, 날씨는 희끄무레 안개로 뿌옇다. 약간 쌀쌀한 기운마저 돈다. 쌀쌀하고 뿌연 대기에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침 커피를 카페와 편의점과 휴게소 바깥을 두루두루 살펴가며 마신다.
(파리에서 에트르타 가는 도로)
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는 끝없을 듯 곧게 평탄하게 뻗어 있다. 어쩌다 완만한 곡선으로 도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나라에 비하면 직선이나 다를 바 없다. 운전하기에 너무나 좋은 조건의 도로이다. 혹시 기회 된다면 파리 근교 투어를 렌터카를 운전하여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곧 에트르타에 도착한다고 한다. 파리에서 3시간 여를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왔는데 산이 없다, 온통 평원이다. 너르디 너른 들판에 동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간혹 주택 한 두채 정도 보이다가 또 한참을 가야 겨우 동네가 나타난다. 들판에 간혹 소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일 뿐 동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넓은 들판을 누가 농사짓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이 없는데 농사를 어떻게 지을까..
(에트르타 주차장과 주변 주택단지)
드디어 에트르타에 도착했다.
오늘의 여정은 에트르타, 옹플뢰르, 몽생미셸 순이다. 에트르타의 대기는 짙은 회색이다. 차에서 내리니 공기는 초겨울 마냥 차갑다. 추울 거라고 따뜻이 입고 오라는 예고가 있어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봄 외투에 안으로는 히트택 기능의 긴 상하 내의와 기모 셔츠를 입고 왔으며, 목도리까지 칭칭 목에 둘러 마치 추위와 한바탕 싸울 기세의 복장을 하고 거리로 나선다.
마을은 우리의 영덕 후포항처럼 작은 어촌이다. 음산한 날씨 때문인지 짙은 회색 지붕의 주택들로 이루어진 동네는 전반적으로 칙칙한 느낌이다. 밝고 투명한 파란 하늘과 하얀 솜구름 그리고 주황색 지붕으로 이루어진 지중해 연안의 남프랑스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이다. 남프랑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필시 이와 같은 날씨의 지역에 사는 주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 탓인지 동네는 우리와 또 다른 두 팀 정도의 관광팀 외에는 주민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비까지 섞여 내리는 추위에 외출은 엄두를 못 내고 모두들 문 꼭꼭 닫고 집안에서들 있는 모양이다.
(에트르타 해변 : 왼쪽-엄마 코끼리 바위, 오른쪽- 아빠 코끼리 바위)
(아기 코끼리 바위- 엄마 코끼리 바위 뒤편에 있음)
(에트르타 마을 전경)
인상파 화가들이 좋아한 고장으로 스케치 주요 대상으로 삼았던 코끼리 가족 바위 중 바다로 풍덩 코 떨구고 있는 엄마 바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언덕에서 코 빠트리고 있는 아빠 코끼리 바위가 해변에서도 보인다.
보다 가까이에 있는 엄마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빗방울인지 파도에서 떨어져 날아온 물방울인지 세찬 바람에 축축한 물기까지 섞여 날씨는 더욱 기세등등하다. 가이드 말로는 노르망디 지역 날씨는 대체로 이렇단다. 까마득히 오래전, 학교서 열심히 가르쳤던 내용이 떠오른다. 형태를 달리하여 매년 시험에 출제했던, 그 편서풍대 지역에 지금 서있다. 서쪽 바다에서 동쪽 내륙으로 쉴 새 없이 불어대며 바다 습기를 실어 나르니 대기가 축축하고 싸할 수밖에. 갈수록 냉기는 심해져 살을 파고 들어오는 듯하다. 대충 봤으니 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4시간 가까이를 달려온 거리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코끼리 가족 모두를 가까이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서 언덕으로 바람에 날려갈 듯한 몸을 가누며 올라간다. 엄마 코끼리 바위 뒤로 안 보이던 아기 코끼리 바위도 보이고, 저 멀리 따로 있는 아빠 코끼리 바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엄마 코끼리 바위의 등쯤 되는 언덕에 올라서니 영국해협은 낮으막히 내려앉은 회색 가득한 대기 아래 무척이나 사납게 물결을 일으키며 뭍으로 쉴 새 없이 달려든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기세는 바다 건너에 영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생각났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을 무너뜨리고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발판 역할을 하였던 작전. 작전이 시행되었던 날은 1944년 6월 6일. 여행하고 있는 오늘은 5월 17일이니 비슷한 일기 상황이었을 테고.
이와 같은 날씨에 익숙하지 않다면 날씨 자체에서 먼저 무릎 꿇을 것 같다.
(에트르타 내륙 목초지)
(에트르타 주차장과 주변의 카페)
언덕 앞으로 펼쳐지는 드센 바다의 광풍과는 달리 고개 돌려 내륙의 뭍을 보면 저 멀리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완만한 초록의 고원지대가 너무나도 평온한 풍경으로 시침 떼고 있다. 울고 웃고 가 한 자리에서 모두 관찰된다. 빠르게 여기저기 풍경을 훑어보고 내려온다.
여러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있고, 카페와 레스토랑도 두어 개 있어서 날씨만 좋으면 천천히 해변도 거닐고, 언덕 위에서부터 평화로워 보이던 초지까지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를 보면서 산책하는 것도 좋을 듯한데, 역시 여행은 날씨가 받쳐주어야 한다.
(에트르타에서 옹플뢰르 가는 길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에트르타에서 옹플뢰르로 가는 도로)
이어서 남쪽에 있는 옹플뢰르(Honfleur)로 가는 길 역시 하늘은 회색이고, 도로는 여전히 직선에 평평하다.
간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가한 2차선의 사골길로도 달린다. 때론 사이클링 좋아하는 국민들 답게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자전거를 달리는 바이킹족들도 있다. 참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국민들이다. 땡별 내리쬐는 지중해 앙티브 해변 드라이브길에서도, 경사 급한 생폴드방스 오르막 산간 도로에서도 목격한 모습을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보게 된다. 참 좋아 보인다. 국가 지탱하는 저력의 한 단면으로 읽힌다.
(옹플뢰르 구항구 전경)
2시간 가까이를 달려 남쪽으로 내려와 도착한 옹플뢰르는 꽤 큰 항구 도시이다. 에트르타가 바다를 향해 전면이 노출된 곳에 위치해 있는 반면에 옹플뢰르는 내륙으로 길게 들어간 만에 자리해 있다. 따라서 배가 출입하고 특히 배가 정박하는 선착장으로 이용하기에는 바다가 좀 잔잔한 옹플뢰르가 나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항구로 기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발전한 곳이다. 그 흔적으로 구항구(Vieux Bassin)에는 15~6세기에 건설된 4~5층의 주택 및 건축물이 항구를 따라 한치의 틈도 없이 바짝 붙어 일렬로 줄을 서서, 오래된 건물의 낡고 퇴색된 색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앞의 물결 잔잔한 바다에는 소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어 노르망디 특유의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색채의 건물 앞에서 하얀색으로 포인트를 찍으며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항구의 자유로움을 풍기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보았던 뉘하운 운하의 항구와 많이 닮아 있다.
(옹플뢰르 구항구에서 들른 식당)
점심시간 즈음에 도착하였던지라 식사부터 하였다. 번잡한 거리에서 한 발자욱 물러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식당은 바깥으로 대여섯 개의 테이블을 두고, 실내는 다섯 개의 테이블을 둔 아담한 식당이었다. 파스텔톤의 사랑스러운 색감으로 인테리어 된 실내만큼이나 주문하여 나온 메뉴들도 모두 내용물이 신선하고 알차고 맛까지 있었다. 이 지역의 특산 음료인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시드르(cidre, 사이다의 유래라고 한다)를 곁들였는데, 좋아하는 스파클링처럼 달콤한 데다 사과 맛이 아주 살짝 스치며 색감까지 예뻐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장이 선 옹플뢰르 구항구 선착장)
마침 장날인가 보다. 선착장 상가들 앞으로 하얀 파라솔이 줄을 선 듯 배열해 있다. 그 아래 이동형 선반 위에는 인쇄한 가격표와 함께 옷, 스카프, 가방, 신발, 기념품 등 온갖 잡화들이 올망졸망 전시되어 다소 조용한 항구 분위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꼭 우리 시골의 5일장을 보는 것 같아 정감을 느끼며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해 본다.
(옹플뢰르 구항구 골목 상가)
옹플뢰르 항구를 기념품으로 제작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가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물건을 탐색한다. 엽서, 모형, 마그네틱, 열쇠고리, 사진, 접시받침 등 참 많기도 하다. 적당한 것을 고르지 못한 채 선착장 뒷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두 명 정도가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좁다란 골목 양쪽으론 건물들이 오밀조밀 형성되어 있다.
건너편 동네인 생트아드레스가 고향인 모네와 그 모네에게 야외에서 그리는 풍경화법을 인도한 스승이자 친구인 외젠 부댕의 고향 영향인지 1층 상가엔 예쁜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들이 의외로 많아 좁은 골목의 분위기를 밝게 돋우고 있다. 이외에도 빵, 디저트, 아이스크림, 치즈, 와인, 장식품, 의류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선착장에서 본 장터보다 더 활기차게 장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각 상인들은 꽤 큰 규모의 선반에 온갖 종류의 치즈, 햄, 소시지, 채소, 과일 등 선착장 앞의 장터에서의 소규모의 잡화품과는 달리 주로 먹거리를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규모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지역 주민들은 이 장날에 육류 및 가공품을 대체로 구매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옹플뢰르 구항구 지도)
(생트 카트린 성당. 건물 앞으로 장이 서있음)
(생트 카트린 성당내부 : 선박 바닥 모양의 천장)
(생트 카트린 성당과 종탑 주변)
(위 생트 카트린 성당과 주변 풍경을 그린 그림
왼쪽 - 외젠 부뎅, 오른쪽- 모네 )
(리외트낭스 (Lieutenance) 건물 )
(리외트낭스 건물 출입 통로)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
(옹플뢰르 시청)
장터 안쪽으론 장터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종탑이 있다. 생트 카트린 성당 (Église Sainte-Catherine)의 종탑이다. 맞은편으로 성당 건물이 있다. 15세기에 나무로 지어졌다고 하는 성당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 특히 천장 부분이 마치 선박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선박 건조 당시 배를 만드는 장인들의 참석 영향이라고 한다.
이곳은 소들을 많이 키우는 관계로 유제품이 많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특히 버터가 맛이 있고,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음료인 시드르와 와인이 맛있다고 하며 와인과 관련하여 공부 중이라는 가이드는 특별히 맛난 상품을 취급한다는 가게를 안내해 준다. 주인장은 우유 버터, 밤 버터 등을 맛을 보여 줬고,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시드르와 와인을 알코올 농도가 다른 4 종류를 시음시켜 주었다.
버터는 모두 맛이 있었으나 특히 우유 버터가 맛이 좋아서 하나 구매하고, 알코올 함량 낮은 시드르는 내 몫으로 그리고 딸아이를 위해서는 시드르 보다 약간 도수가 있는 와인을 하나 구매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건물이 하나 보인다. 리외트낭스 (Lieutenance) 건물로 구항구 도개교를 관리하던 사무실이란다. 옆의 출입 통로가 아치형으로 멋스러운데, 오른쪽 벽면에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 이란다. 1604년에 앙리 4세의 왕명을 받고 캐나다를 탐험해 지금의 퀘벡시를 발견, 건설한 인물이다.
가이드는 대략적인 안내를 마치고 1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을 주었다. 구매한 것들은 모두 가게에 맡기고 각자 동네 구경에 나섰다.
(구항구 외곽 주택 단지)
(자르뎅 퍼블릭)
(구항구 도개교 앞에 있는 선착장)
성당 앞 골목에 위치해 있던 가게에서 나와서 건너편 골목으로 가보았다. 골목은 입구 쪽에 손님들로 붐비는 카페와 식당들 몇 개만 북적이고 영업을 할 뿐 더 안으로 들어가니 1층 상가들은 폐업한 듯 한산하였다. 단지 윗 층인 2, 3층에 주민들이 거주하여 조용한 주택 단지로만 기능하고 있는 듯하였다.
조용한 골목 끝을 빠져나오니 조금 전 옹플뢰르 구항구로 진입하기 위해 지났던 도로가 나온다. 도로 건너편에 꽤나 큰 공원이 보인다. 자르뎅 퍼블릭(Jardin Public, 공공정원)으로 큰 규모에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서 정원의 맛만 본다. 정원 맞은편의 도로를 따라 깔끔하게 형성된 2, 3층의 고급진 주택가를 지나니 꽤 폭넓은 항구가 나온다. 그 옆으로는 대관림차가 있어서 유원지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걸어가니 회전목마와 도개교가 있는 구항구 쪽이 나온다. 앞서 본 선착장은 도개교를 사이에 두고 구항구 전면에 있는 곳이었다.
(옹플뢰르 구항구의 이모저모)
(덴마크의 뉘하운 운하의 항구. 2017. 8.)
이렇게 한 바퀴 빙 둘러 구항구로 들어가니 2시경인데 벌써 장터는 물건들을 거두고 차에 싣는 등 파장하는 분위기이다. 잿빛 흐리던 하늘이 간간이 햇살이 보이곤 하더니 어느새 뭉개 구름 사이로 해가 쨍하게 나왔다. 그 찰나를 놓칠세라 고풍스러운 항구의 모습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낮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과 어둡고 칙칙한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카페들이 야외 테라스 테이블 위로 펼쳐놓은 하얀색, 빨간색 차양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조금은 더 밝았던 덴마크 뉘하운 운하의 항구 모습이 더욱 연상된다.
두어 시간 머물고 가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하룻밤은 묵고 가야 할 곳이다. 여명의 시간, 안개 자욱한 선착장을 보고 싶다. 그 시간을 가져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어서 오늘 투어 마지막 지역인 몽생미셸 섬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