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투어 : 몽생미셸
이제 노르망디 지역 마지막 여행지 몽생미셸로 간다. 가장 많이 기대하였던 곳이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본 홀로 있는 외딴섬이 무척이나 고혹적으로 보였었다.
옹플뢰르에서 2시간 30분 남짓 남쪽으로 이동하여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섬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잘 포장된 도로를 약 10분 정도를 달려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파세롈 다리 너머 섬은 사방이 확 트인 공간에 홀로 회색빛으로 고요하다.
(파세롈 교량 위에서 바라본 몽생미셀)
(무수히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단단히 다져진 갯벌 위의 몽생미셀)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교량 위로 바람이 드세다. 사방으로 탁 트인 갯벌과 흐르는 강줄기 위를 훑고 오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인증숏을 찍는다. 가까이 다가간다. 단단히 다져진 건조한 모래바닥 한가운데 우뚝한 수도원은 오랜 역사를 고증하듯 퇴색된 색채와 노쇠한 기운으로 뙤약볕 아래서 묵묵하다.
(오믈렛 가게 라메르 풀라르)
(메인 거리 그랑 뤼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 상점들)
(마을에 있는 작은 성당)
(묘지위로 수도원이 보임)
높고도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으로 다가간다. 성벽 사이에 있는 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가니 메인 로드 그랑 뤼를 시작으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부터 여러 잡화를 취급하는 가게, 그리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들이 서로 마주 보며 좁은 골목을 알차게도 꿰차고 들어서 있다. 각 상점에는 남프랑스 중세 마을에서도 보았던 예쁜 그림이 그려진 간판들이 걸려있다. 글을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점에서 취급하는 제품을 그림으로 나타낸 전통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몽생미셸에서 유명한 오믈렛 가게 라메르 풀라르도 보인다. '어머니 풀라르'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은 순례자들에게 포만감을 주기 위해 계란을 최대한 부풀린 오믈렛을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골목에서 환상적인 중세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좁다란 길목은 경사진 언덕배기로도 계속 이어져 있다. 올라가니 묘지도 있고, 작은 성당도 있고, 정원도 있다. 아득한 옛날 높다란 성벽 안에서 희로애락의 일상을 보내었을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25명(2021년 통계) 정도라고 한다. 그중 대부분은 이곳을 관리하는 신부 2명을 포함해,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성직자들과 수도원 직원들 및 공무원들이라고 한다. 이곳의 상인들은 근처 마을에서 자동차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하고. 중세 시대 인구 규모는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수백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프간의 치열했던 전쟁인 백년전쟁 시기에는 많은 피난민의 유입, 기사들 및 기사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의 유입으로 인구가 급증하여 500명 정도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 이후에는 평균 200~ 250명이, 현대에는 30명이 거주해 왔다고 한다.
높고 견고한 성벽 안에서 오밀조밀 온기 나누며 영원처럼 살아갔을 사람들..
골목길을 끝까지 오르면 시끌한 일상이 이루어지는 마을이 끝나고, 위로는 섬의 상징인 수도원이 있다. 조용히 섬기는 신에 대한 묵도와 가르침에 대한 연구와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수도사들의 공간인 것이다.
수도원은 8세기에 아브랑슈(Avranches)의 사제였던 성 오베르(St Aubert)가 꿈속에서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 천사의 계시를 받아 예배당을 축조하면서 시작된다. 예배당 건설 후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서기 966년에 베네딕트 수도회의 대수도원이 세워지고, 수도사들이 들어와 살면서 본격적인 수도원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수도원은 영국과 프랑스를 마주하는 곳에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양국에서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범죄를 저지른 죄수를 가두는 교도소 (특히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수도승들을 모두 추방하고 섬 전체가 교도소로 이용됨)가 되기도 하다가, 19세기 후반에야 다시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을 되찾게 된다.
이와 같은 기능의 변천이 곳곳에서 건축적 특색으로 남아 오늘날의 경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수도원, 성당, 명상실, 순례자들의 공간, 창고, 귀족 및 왕족들의 접객실, 주택, 정원, 출입을 통제하는 관문, 성벽, 방어탑, 주택, 사람용 쳇바퀴 등이 그렇다.
수도원 건설 된 지 1,000년 되던 해인 1966년에 수도사들이 다시 섬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베네딕토 수도회 수사들이 들어왔으나 2001년부터는 예루살렘 수도원 형제회 소속 수사들이 들어와 종교 생활 및 순례객과 방문객을 받고 있다고 한다. 1979년에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갯벌,
4만 ha의 광활한 갯벌 한가운데,
둘레 900m, 최고 높이 80m.
그 위에 얹힌 1300년의 건축물.
높고 두터운 성벽으로 스스로 가두어 온 세월.
지형지물도 감정이 있다면 오랜 세월 겪은 풍파를 어떻게 표현할까. 외롭게 우뚝 서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수도원의 내력에 감정이 깊이 이입된다.
(수도원이 시작되는 곳)
(수도원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수도원 예배당 첨탑 위로 황금색의 성미카엘 대천사상이 보임)
(예배당 올라가기 전 작은 테라스에서 내려다본모습. 파세롈 다리가 보임)
수도원을 출입하는 입구는 꽤 가파르고 웅장한 계단 끝에 있다. 내부로 들어가 예배당을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테라스가 나온다. 테라스 바깥으로 나오니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조금 전 버스에서 내렸던 교량과 넓은 갯벌이 까마득히 아래로 보인다. 고개를 돌려 위를 보니 수도원 예배당의 뾰족한 첨탑과 그 위 황금빛 성미카엘 대천사 모습도 보인다.
(서쪽 테라스와 연결되는 예배당 전경)
(서쪽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풍경)
디시 계단을 오르니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이 나온다. 수도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예배당 서쪽 테라스다. 테라스 치고는 꽤나 넓다. 운동장만큼 넓다. 재빨리 걸음 옮겨 테라스 난간으로 달려간다. 일망무제(一望無際), 가없이 펼쳐진 광활한 갯벌의 전개에 황홀하다. 탁 트인 풍광의 파노라마에 '나는 자유다'가 절로 나온다.
썰물시 채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은 강처럼 여러 갈래로 흐르고 있다. 남동방향으로는 갯벌 너머로 초원과 숲도 보인다. 멋진 풍경을 담으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한다. 보이는 만큼 담기지 않아 몹시 아쉽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예배당 내부)
(예배당 내부의 섬 모형)
예배당 내부는 분위기가 좀 다른 특성의 건축양식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한쪽은 두터운 벽에 작은 창문, 굵은 기둥과 그 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둥근 아치형의 낮으막한 천정으로 다소 폐쇄적이면서도 웅장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받는가 하면, 한쪽은 보다 얇고 높이 뻗은 기둥들과 뾰족한 아치형의 높은 천장과 좁다랗고 높이 뻗은 기다란 창문으로 되어 있어 보다 개방적이면서도 화려하고 숭고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전자는 로마네스크 양식, 후자는 고딕 양식이다. 창문은 고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색채 입힌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자연 상태의 유리 그대로이다. 이것은 수도승들이 대체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대다수의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성당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쉽게 성경을 알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성경의 내용을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던 방식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채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아찔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없지만 오히려 순수한 종교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려는 의지로 읽혀 더 좋다.
예배당 안에는 몽생미셸 섬의 작은 모형이 만들어져 있어 섬 전체의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성 미카엘이 괴물을 물리치는 조각상, 성 미카엘의 왕관, 성소를 장식하는 자수, 금실, 그림이 그려진 깃발과 성지 순례할 때 사용했을 금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 옛날 이곳에서 이루어졌을 수도승과 순례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회랑)
(정원)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회랑 기둥)
(회랑의 창 밖 풍경)
예배당을 나오니 수도사의 기숙사가 나오고, 이어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이 나타난다. 곧게 쭉 뻗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회랑은 푸른 잔디가 심긴 정원을 가운데에 두고 장방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포도 덩굴 같은 무늬가 윗부분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회랑의 기둥들은 두 개의 줄로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데, 두 개의 기둥은 한 발자국만큼의 간격을 두고 지그재그식으로 배열되어 있어 기둥 사이로 중정의 푸른 잔디가 살짝살짝 보인다. 쭉 뻗은 회랑을 걸어가며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잔디는 마치 기둥과 숨바꼭질하듯 아슬하면서도 재밌는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아, 회랑....
두 줄의 기둥이 만들어내는 단순한 공간일 뿐인데, 어디에서도, 어느 각도에서도, 그 단순함의 미학이 장엄하고도 화려하고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회랑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감탄에 젖어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수도사들이 명상과 사색을 하며 거닐었으리라..
회랑을 지나 수도사들의 대식당으로 들어간다. 채광을 위해서인지 창문들이 촘촘히 나있는데, 좁고 높은 창문으로 이루어진 장방형의 공간이 무척 아름답다. 고딕 양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아하고 고혹적이며 화려한 아름다움이다. 창 밖으로는 넓게 펼쳐지는 갯벌의 전망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식탁의 배열은 묵언 수행을 하는 수도원이었기에 식사 시간에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식탁을 배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할 때는 일절 대화가 없었으며, 수도사들이 한 명씩 번갈아 가며 기도문을 낭독한 가운데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모든 순간이 오로지 하느님께만 향하고 있었던 수도승들의 삶에 숙연해진다.
3층 구조로 된 수도원은 대식당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귀족 및 왕족실, 순례자의 숙소, 기사들의 방, 창고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수도사들의 유골 안치소)
(도르래)
(도르래 옆 창에서 내려다본모습. 파세롈 다리가 보임)
수도사의 유골이 안치된 곳으로 오니 옆으로 엄청나게 큰 도르래가 보인다. 아래에서 위로 생필품을 끌어올리던 물자수송용 이란다. 그런데 그 가동 방식이 끔찍하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으로 섬에서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이 쫓겨난 후 약 70년간(1793~1862) 수도원은 거대한 교도소로 바뀌었는데, 그때 유배온 죄수들이 도르래의 대형 바퀴 안으로 들어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달려서 작동시켰다고 한다. 신성한 수도원의 기막힌 용도 변경의 한 증거물이다. 물자 오르내리는 장면을 관찰했을 옆 창으로는 올라오면서 보았던
갯벌과 섬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다니는 도로, 그리고 더 너머로 섬으로 오기 위해 셔틀버스를 승차했던 곳의 레스토랑과 카페 등 건물들이 있던 푸른 숲이 아득히 아래로 보인다.
(수도원 외곽의 정원)
(성곽에 앉아 있는 갈매기)
수도원 내부 구경을 마친 후 바깥으로 나와 수도원 건물을 둘러싸고 예쁘게 조성되어 있는 정원을 따라 내려온다. 곳곳에서 저 아래의 광활한 갯벌이 보인다. 성곽의 한 모퉁이에서 갈매기와 대면한다. 사람에 익숙한 듯 날아가지 않는다.
(수도원 입구로 향하는 웅장한 계단)
(수도원과 마을이 나누어지는 곳. 계단 위로는 수도원 아래로는 마을)
(갯벌을 걷는 사람들)
이제 수도원 구역에서 마을로 내려온다. 수도원으로 들어갈 때의 입구가 건너편으로 보인다. 성 밖서 고개 들어 쳐다보았던 높고 견고하게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던 성곽 위를 걸어 내려온다. 성곽 이쪽저쪽에서 전개되는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부지런히 고개를 도리질한다. 이쪽의 수도원은 점차 멀어지고, 저쪽의 갯벌은 더 가까워지고 있다.
갯벌의 질감과 조류의 물결을 진하게 느끼고 싶은 걸까. 순례객들인지 일군의 사람들이 갯벌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모습이 정물로 보이다가 점차 물결처럼 일렁인다.
(성곽 위를 걸으며 보는 마을 )
(성곽 위에서 올려다본 수도원)
(성곽 위에서 내려다본 섬 출입문 주변 모습)
순례객을 맞이하던 주택들이 카페, 호텔로 변신한 위로 뾰쪽한 수도원 건물이 어느새 아득히 위로 보인다.
골목을 오르며 밑에서 치어다보던 건축물의 3~4 층 부분을 이제 성곽 위에서 눈높이로 어깨 나란히 하며 구경한다. 바다 위를 지나온 축축한 갯바람 흔적이 켜켜이 지붕으로 벽으로 남아 있다. 묵직한 회색 기와에 기울기 심한 삼각형의 지붕을 한 가옥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빼곡히 정겹게 들어서 있다. 탁 트인 전망을 옆으로 두고 있어서인지 답답한 느낌이 없다. 그저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이어서 참 좋다.. 아마도 이런 곳에 사는 이들이 우리 경주 양동 마을 같은 오래된 한옥 마을을 방문하면 이와 같은 감정이지 않을까. 아주 낯선 , 그래서 좋은 감정 말이다.
따라다니던 높은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하얀 솜구름도 두둥실 떠다닌다. 지평선은 아득히 멀고, 아기자기한 마을 위로 수도원은 장엄하다.
마을을 에워싼 든든한 성곽 위서 풍경을 영원처럼 느낀다.
성곽 귀퉁이 둥근 망루에서 가슴 벅찬 풍경에 감탄 조용히 삼키는 동안 수도원의 암울했던 아픔은 까마득히 잊는다.
생각해 보면
수도사들의 치열한 삶이 녹여진 공간인 것을.
공격해 오는 영국군과 종교 개혁파와 싸웠을 수도사들의 결기에 찬 항전 의지가 깃든 곳.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던 그네들의 순결한 종교적 신심과 의식을 지키려 했던 곳인 것을
(갯벌을 걷고 나오는 사람들)
성곽을 나오니 갯벌을 걸었던 무리들이 발을 닦는다.
왠지 몽생미셸을 온전히 느꼈을 것 같아 그들이 부러웠다. 걸어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다에 고립되는 섬
그 위에 만들어진 수도원
천여 년의 세월을 굳건히 견뎌내고 있는 섬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너무나 고혹적인 곳,
몽생미셀(Mont Saint-Michel,성 미카엘의 산)
(파세롈 다리 위에서 승하차하는 무료 셔틀버스)
(레스토랑, 주차장, 셔틀버스 승하차 지점 등이 있는 곳 )
(레스토랑 지구에서 쿠에농 강 하구 수문을 건너면 나오는 초지에서 바라본 몽생미셀)
(석양 무렵 파세롈 다리에서 바라본 몽생미셀)
섬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전 셔틀버스를 승차하였던 식당가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노르망디가 유제품으로 유명하다고 하여 식전 빵과 곁들여 나온 버터를 맛보았다. 원래 버터를 안 좋아하여 호텔 조식에 흔히 나오는 버터도 안 먹는다. 그런데 너무 맛있어서 3개나 먹었다. 깔끔하면서 고소하였다. 옹플뢰르에서 구매한 버터 먹을 생각에 남은 파리 일정이 그것만으로도 어깨 들썩여졌다. 식사 후 가이드가 사진 촬영 장소로 좋은 곳을 안내한다. 해 질 녘 풍광이 좋단다. 식당에서 6~7분 정도 걸어가니 쿠에농(Couesnon) 강 하구 수문이 나온다. 둑을 지나니 수도원에서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던 푸른 풀밭과 숲이 나왔다. 멀리 섬이 보인다.
(쿠에농 강 하구 수문 쪽에서 바라본 몽생미셀)
해는 서서히 지고 있다. 시간은 9시에 가깝다. 우리 한국인 그룹 몇 팀도 열심히 사진 촬영 중이다. 이 팀 저 팀 차례를 기다려 이쪽저쪽서 찍는 중에 노을은 노랗고 빨간색을 변주해 가며 더욱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어느 정도 찍은 다음엔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섬 앞으로 갔다. 처음 섬에 들어올 때 내렸던 파사렐 교량 위에서 노을 진 섬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는다.
밤 10시,
붉은 노을 속에 수도원은 검은 실루엣으로 잠긴다.
웅얼웅얼 그 옛날 수도승의 묵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투어를 끝내고 10시경 출발하여 파리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2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