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로, 칭기즈칸 기마상, 어워
'그는 신(神)입니다'
그의 답변엔 주저함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칭기즈칸에 대해서 몽골 국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물은 질문에 예상보다 더 강력한 답변이 돌아왔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4년간 외국 나들이를 못하다 보니 그 이전에 쌓인 항공 마일리지가 소멸 기한이 임박하여 부랴부랴 작년부터 캐나다, 프랑스 등 바쁘게 마일리지 소비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조금 남았더랬다.
그래서 떠오른 지역이 몽골이었다.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의 야생화를 보며 트래킹이 하고 싶었다. 마침 몽골 트래킹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 여행 카페 팀이 있어서 합류하여 다녀왔다. 3시간의 짧은 비행에 4박 5일간 다녀온 몽골 여행은 너무나 깊게 여운이 남아있다.
(칭기즈칸 국제공항 항공편 출도착 알림판)
오전 8시 30분에 출국하여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경이었다. 여자 입국 심사관이 무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되물으니 성냥개비 10개는 거뜬히 올릴 수 있을, 컬링 한껏 된 인조 속눈썹을 치켜뜨면서 '숙~소~'라고, 너무나 또랑 한 발음으로 '나 지금 친절하게 너네 말로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냐'는 듯, 한 글자씩 힘주어 말한다. 머무는 숙소가 어디냐는 뜻인 거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로부터 듣는 우리말을 때로는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당연히 우리말을 모르리라 짐작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국제 공용어인 '영어'일 것이라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우리말 '숙소'를 못 알아들은 이번과 같은 상황이 그렇다.
아무튼 우리 한국인이 얼마나 몽골을 다녀갔는지 반증하는 대목이다.
짐을 찾고 공항을 살펴본다. 규모는 작다. 각 항공사의 비행 출도착 시각이 뜨는 전광판의 글자가 낯설면서도 영 낯설진 않다. 러시아 글자체다. 낯선 땅에 왔음을 깨달으며, 몽골이 러시아 문자를 쓴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펼쳐지는 풍경이 '몽골이란 이런 곳이란다'를 바로 보여주고 있다. 버스를 타고 울란바토르 시내를 가는 1시간 20분 정도 내내 광활한 초원 천지이다. 속이 뻥 뚫린다. 이다지도 낯선 풍경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벌써부터 몽골이 마음에 든다. 참으로 잘한 선택에 뿌듯해진다. 가슴에 두고두고 인상 깊었던 터키의 광활한 아비시니아 고원이 떠오른다. 다시 달려가고프던 꿈을 몽골에서 이룬다.
(울란바토르 시내 마트)
점심시간이어서 현지 가이드는 식당으로 먼저 안내한다. 커다란 마트에 딸린 식당이다. 식사도 해결하면서 3일간 트래킹 할 테를지 국립공원 쪽은 마트가 없으니 트래킹 중 필요한 다과나 물품들을 구매도 할 수 있어서 이곳의 식당으로 정한 것 같다.
몽골인 가이드가 추천하여 나온 메뉴는 맛이 괜찮았다.
잘게 다진 양고기에 계란을 풀어 1cm 정도 되는 두툼한 두께의 부침개 형태로 나왔는데, 양념을 잘하여 양고기 특유의 냄새나 맛이 나지 않아 먹을 만했고, 어른 손바닥 보다 더 큰 크기로 양도 아주 푸짐하였다.
그런데 식당과 나란히 한국 식당이 있다. 한글로 적힌 식당 상호에 불고기. 비빔밥, 떡볶이 등 한국 메뉴를 적어 놓고 있고,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불고기를 먹고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자이승 전망대)
식사를 마친 후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자이승 전망대로 갔다. 주차장에서 내려 보니 가파르게 경사진 언덕배기 위에 전망대가 까마득히 보인다. 6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단다. 예전엔 그 계단을 모두 밟고 올라갔지만 이젠 전망대 아래에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단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몽골인 가이드의 추천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가이드 말대로 보드라우면서도 크게 달지 않고 맛났다. 가이드에게 신뢰가 간다.
(자이슨 힐 콤플렉스에서 자이승 전망대로 가는 통로)
(자이승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기념품과 몽골산 캐시미어 의류를 판매하는 매장이 나왔고, 그 앞을 지나 유리로 된 컬러풀한 통로를 통과해 나오니 아득하게 위로 계단이 나있다. 300개 정도 될 거라고 한다. 뙤약볕에 어질하다. 경사도 의외로 가팔라서 신경 곤두 세우며 계단을 오른다. 올라갈수록 전망대 기념탑이 점차 다가오는데 크기가 대단하다. 드디어 전망대 턱 밑으로 오른 지점에서 어깨를 찍어 내려 누를 것 같은 기념탑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 뒤돌아서니 울란바토르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는 시내를 향하여 거대한 깃발을 든 군인상의 기념탑이 원형 구조물을 뒤로 빙 두르고 있는 형태이다. 원형으로 된 구조물엔 2차 세계 대전 당시 몽고와 소련의 여러 상황들을 모자이크로 묘사하고 있다. 전망대는 몽골이 구소련군과 함께 연합군으로 참전,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1971년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구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이라고 한다.
(수흐바타르 광장)
이어서 울란바토르의 중심지인 수흐바토르 광장으로 갔다. 수흐바타르 광장의 명칭은 몽골 독립 영웅인 담딘 수흐바타르의 이름에서 유래하는데, 광장 가운데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있다. 기마상을 가운데로 두고 국회 의사당, 행정부, 법원, 은행, 미술관 등 주요 업무 기관과 문화 기관이 광장을 빙 둘러싸며 형성되어 있다. 울란바토르의 랜드마크 기능을 하는 광장은 국가적 행사, 문화 행사, 유명 가수 콘서트, 웨딩사진 촬영지, 각종 시위 등의 행사가 이루어지며, 일반 시민들의 주요 약속 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마침 광장 한편으로 하얀 텐트가 빙 둘러쳐져 있고 음악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는데, 국제 댄스 경연 대회 중이었고, 일본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광장 너머에 푸른 유리창으로 빛나는 높다란 빌딩이 우뚝하게 보인다. '블루 스카이'라는 빌딩으로 한국계 사업가가 건축한 호텔인데, 5성급 호텔로 시내에서 가장 고급진 곳이라고 한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글이 적힌 광고문을 부착한 냉동탑차가 서있다. 식당 홍보하는 문구인데, 익숙한 문자에 한국의 어느 동네에 있는 줄 순간 착각할 지경이다. 일명 몽골을 '몽탄 신도시'라고 한다더니 우리 일동은 신기하여 일제히 웃었다.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및 기념관)
이어서 독립 운동가이자 몽골 시민들에게 의사로서 찬사를 받았던 이태준 열사 기념 공원으로 간다. 기념 공원은 꽤 넓으나 열사의 기념관은 너무도 초라하게 자그마한 게르 하나가 전부였다. 열사의 독립 활동과 울란바토르에서 시행한 의료 활동 등이 좁은 공간에 사진과 함께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다행히 게르가 있는 넓은 공원 뒤쪽으로 새로운 기념관이 9월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있다고 한다. 2층으로 보이는 기념관의 외관은 준공 상태처럼 보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에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만큼 위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을 위한 대의에 임할 때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일제 강점기 민족 해방을 위해 활동하신 항일 독립투사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
존경하는 마음에 열사의 삶의 궤적을 좀 더 살펴보게 된다.
열사께서는 1889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셨으며,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 입학,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만나게 되고,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 졸업 후 일제의 독립투사 사건인 '105인' 사건을 피해 중국 남경으로 망명, 중국 혁명정당 인물들과 교류하셨고, 1914년에 비밀 군관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김규식(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 역임)과 몽골 고륜(울란바토로)으로 이동하면서 울란바토르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다.
열사께서는'동의의 국(同義醫局, '항일 독립운동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병원'이라는 뜻) 병원을 설립하여 중국에서 러시아로 오가는 항일독립투사들에게 숙식과 여러 편의를 제공하셨고, 도산 안창호 선생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담은 편지 교류,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 한인 사회당원의 비밀 당원으로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얻어낸 지원금의 독립투사들에게 전달 등 애국지사들에 대한 지원 및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활발한 항일 운동을 펼치셨다.
그러나 러시아의 적백색 내전으로 몽골을 점령한 백군파 수장 운게른 슈테른 베르크와 함께 동행한 일본군 장교 요시다에 의해 체포, 가택 연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운게른의 부하에 의해 무참히 처형되었다고 한다. 열사의 나이 38세였다. 이 사실을 독립기념관장인 김형석이 이곳에 와서 접한다면 무어라 말할까. 열사의 행적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광복이 연합군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망발하는 그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의 생생한 증거이다.
열사께서는 의료 활동을 통하여 몽골 국민에게도 두터운 신임을 받으셨다고 한다. 몽골 마지막 국왕인 보그드칸(Bogd Kahn)의 어의로서도 활동하셨고, 당시 몽골 국민 70% 이상이 감염된 성병(매독)을 절멸시키는데 크게 공을 세우시는 등 고륜 사람들은 열사를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 대하듯 존경하였다고 한다.
1919년에 열사는 몽골 최고 훈장이었던 '에르데니인 오치르('귀중한 금강석'이란 뜻)'를 받았다고 하는데, 당시 외국인에게 수여된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열사의 활동은 1990년 3월 26일에 성립된 한몽 국교 수립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 교민은 3,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에서는 이태준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했다.
현재의 열사 기념 공원은 몽골 정부가 2001년에 무상으로 부지를 제공하였으며, 게르 형태의 열사의 기념관은 2006년에 개관을 하였다. 다가오는 9월 개관 예정으로 지금 한창 공사 막바지에 있는 신축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충으로 건축되고 있다.(9월 4일 개관하였음)
100여 년 전 이국만리 낯선 이곳으로 와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열사의 애국심과 희생에 가슴 뭉클해진다.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열사처럼 행동했을까 자문해 보면 자신이 없다. 아마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들을 국민과 국가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며 그 희생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훈처가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독립기념관이 있는 이유이다.
(몽골 전통 공연장)
기념 공원을 나와 몽골 전통 공연을 보러 간다. 대체로 민속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시간이 지루할 뿐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가 없었고, 새벽 일찍 일어나 떠나온 여행이라 부족한 수면이나 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상대로 무대도 객석 좌석 수도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국내의 80년대 영화관 같은 분위기였다. 자리에 착석을 하고 무대에 악기를 든 공연자들이 올라오고, 악기 연주가 시작되는 걸 보고 바로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결에 듣고 있노라니 장엄한 악기 연주와 가수들의 대지를 깨우는 듯한 이상 야릇한 발성의 음색과 리듬에 이끌려 저절로 눈이 떠졌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자세를 바짝 앞으로 당긴다. 몇 안 되는 현악기, 타악기, 관악기의 합주 그리고 그 합주에 맞춰 부르는 가수가 읊조리는 곡조는 현란하면서도 애잔하면서도 장엄하다. 지구 태초의 소리가 있다면 이와 같으리라. 하늘, 땅 천지를 울리며 원시의 초원을 내달리는 야생마들, 종횡무진 대지를 호령하는 칭기즈칸의 모습이 스친다. 넓은 초원을 가르는 바람과 여기저기 떠돌아야 하는 유목민의 애달픈 삶도 묻어 있다. 마두금과 기타 전통 악기의 합주와 지하에서 땅을 뚫고 올라와 온 천지의 기운을 응집하고 퍼뜨리는 주술 같은 노래(훔미, 장가(長歌))에 깊이 매료되었다. 감상에 빠져 사진 촬영도 잊었다.
너무나 낯설어 충격받은 전통 음악에 넋 놓고 있다가 나와 호텔로 간다. 호텔에 딸린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세상에나... 외국 호텔에, 그것도 꽤나 큰 호텔에 한식당이 있다니.. 몽골에서의 우리 교민의 파워를 느끼는 순간이다. 구워져 나온 삼겹살에 상추와 된장찌개까지 완전 국내 식당과 같다. 상추가 너무 고소하여 놀랐다. 국내산 상추보다 맛나다. 된장찌개도 맛있었고 곁들여 나온 밑반찬들도 모두 맛있어서 또 한 번 감탄하였다. 국내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8월 18일(월),
몽골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오늘은 여러 가지 기대가 많이 되는 날이다. TV 영상으로만 보던 넓은 벌판에 들어선 칭기즈칸의 어마어마한 기마상도 기대되고, 넓은 대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돌무더기에 꽂혀 펄럭이는 천조각의 어워도 그렇고, 무엇보다 야생화 가득 핀 테를지 국립공원 트래킹이 기대가 많이 되는 날이다. 낯선 풍경에 대한 기대로 흥분된다.
(울란바토르에 입점한 한국 상가들)
(트레킹 점심 도시락으로 제육볶음을 받았던 식당)
(울란바토르 외곽 : 시내에서 칭기즈칸 기마상 가는 길의 외곽)
(천진벌덕에 있는 칭기즈칸 기마상)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이동하여 먼저 칭기즈칸 기마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너르디 너른 벌판에 기마상이 홀로 우뚝하다. 몹시 외로워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큰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높이 40m, 250톤의 철강을 들여 만든 세계 최고 크기의 기마상이라고 한다.
(칭기즈칸 기마상 1층 내부)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나게 큰 장화가 실내를 장악하고 있는 장면과 마주친다. 천장에 닿을 듯한 장화(고틀)는 230마리의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뒤 벽면 아래로는 말채찍도 보관이 되어 있다. 벽면 뒤로는 몽골 풍경화 및 미술품이 벽면을 따라 전시되어 있고, 전통 의상 대여점과 기념품샵이 자리해 있다.
(칭기즈칸 기마상 상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좁은 통로의 계단을 밟고 기마상 정상으로 올라간다. 드디어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비스듬히 치어다보며 대면하게 된다. 영웅의 모습 그대로다. 대륙을 종횡무진 내달렸던 사나이의 비범함과 기개가 넘쳐흐른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뛰어난 인물에 관한 얘기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 말마따나 어쩌면 그는 신(神) 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의 행위로 인해 사라져 간 무수한 존재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편안하지 않다. 각각의 존재들이 하나의 우주였을텐데.. 역대 일본 총리들이 참배하는 신사(神社) 신위의 주인공인 2차 세계 대전의 주범들, 코로나 공황으로 허우적 대고 있는 지구 상황과는 아랑곳 않는 듯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전쟁 일으킨 러시아의 푸틴, 느닷없는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에 으름장 놓으며 위협하는 트럼프.... 과거에서 현재로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도 그렇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라 약육강식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평가는 양가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칭기즈칸 기마상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
혼란한 마음인 채 기마상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너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타고 왔던 버스를 주차해 놓은 주차장이 초원 가운데 너무나 생경한 공간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았을 때 초원과는 동떨어진 이질감으로 무척이나 생경하게 보이던 기마상처럼.
복잡한 마음은 360도 뻥 뚫린 초원으로 까마득히 사라진다. 심란한 마음일 때 유목민들은 이렇게 풀었으리라. 뻥 뚫린 초원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칭기즈칸 기마상 1층 내부에 전시된 미술품)
계단을 밟고 다시 내려와 1층의 둥근 벽면을 따라 전시된 그림을 감상한다. 초원, 게르, 말, 낙타, 산 등 몽골 자연을 그린 풍경화가 너무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런 그림들 사이에 돋보이는 미술품에 깊이 빨려 들어간다. 기괴하고 요란스럽다. 낮은 채도와 명도, 또는 강렬한 보색 대비의 색채에 사람, 말, 낙타 등이 꽃, 식물,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자유롭게 여기저기 박혀 있다. 때론 짙은 청록색의 색감에 샤갈 그림처럼 자유롭고 몽상적이며 피카소 그림처럼 입체적이고 해체적인 그림은 무척이나 기괴하고 낯설다. 그림 가득 풍기는 샤머니즘 기운에 무섭기 조차 하다. 원시의 대지에서 온갖 재난을 겪으며,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천지를 관장하는 자 뿐이었으니, 그를 섬기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읽힌다. 민속 공연에서 들었던 낮게 또는 높게 천지를 뒤흔들 듯 읊조리던 가수의 희한한 발성의 노래 가락, 흠미와 장가가 풍속화와 하나기 되어 주술걸 듯 맴돈다.
기마상이 있는 이곳은 칭기즈칸의 고향 천진벌덕이다. 몽골 건국 800주년 되는 기념으로 세워졌는데 기마상은 칭기즈칸이 태어난 곳인 흐느티 지역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몽골이나 우리나 인간의 보편적 감성은 비슷한가 보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말이다.
이제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간다. 3일 동안 트래킹을 할 곳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야생화를 볼 생각에 무척 설렌다. 가는 길에 어워를 한 곳 들렀다. 미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신산스러운 장식이 깔끔하고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선 무척 정신 사납게 하기 때문이다. 옷마저 레이스 나풀나풀거리거나 러블리하게 리본 장식 들어간 것을 사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옷을 입은 여성들을 보면 무척 신기하고 부럽다. 아무튼 그렇다.
그러나 TV 영상으로 본 몽골 초원 지대 언덕의 펄럭이는 천조각은 나를 유혹했다. 고단한 일상을 달래려는 유목민의 아픔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나를 위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칭기즈칸 기마상에서 30분쯤 지나왔을까, 가이드가 안내한다. 어워가 곧 나올 거라고, 보고 갈 거라고.
(어워)
위대한 영웅의 거친 삶에 대한 여운이 가시기 전에 너무나 갑자기 어워가 나타났다.
상상대로였다. 어워는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넓은 고원 위에 우뚝 홀로 서서 손짓한다.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어서 오라고.. 말없이 위로해 준다. 치유되는 기분이다. 사물에서 이렇게 위로를 받다니..
세 바퀴를 돌면서 소원을 빌면 들어준단다. 돌지 않아도 들어줄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돌무지를 돌며 소원을 빈다.
미신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믿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새 사업 시작할 때마다 엄마는 점집에 다녀오셨다. 국민학교 1, 2학년 꼬맹이가 세상 무엇을 알겠는가. 그런 꼬맹이인 나를 앉혀 놓고선 이번에는 아버지 사업이 잘 된단다고를 매번 말해주어 마음 들뜨게 해 주셨다. 엄마의 점집에 대한 신앙은 평생이셨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미신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아버지가 골재(모래) 채취업을 새로 시작하셨는데, 엄마가 또 점집에 다녀와서는 아버지 일 잘 될 거다. 시끄러운 일 하면 잘된다고 했다. 트럭이 시끄럽잖아 라며 말씀하셨다.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였더랬다. 그러나 골재 공급 후 받았던 어음은 기업이 차일피일 대금 미루며, 끝내 부도로 이어져 모두 휴지 조각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찬란한 미국 유학 꿈도 접으면서 미신과는 완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신산스러운 천조각이라고 외면했을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몽골 고원을 감도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한데 모여있는 것 같다. 온 우주의 기운이 응집해 있는 것 같다. 펄럭이는 어워의 기운을 온몸 가득 받는다.
(어워 주변 물품 판매대)
신령스러운 이워 옆에는 재미나게도 텐트를 쳐놓고 몽골 전통 의류와 모자, 스카프, 장갑 등 소품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상들의 위치 선정은 옳았다. 쇼핑 좋아하는 여성들 아닌가. 소원 빌고 난 후 하나같이 쇼핑에 열중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서나 필요할 밍크 모자도 사는 사람이 있고(저렴한 10만 원 가격에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겨울에 시베리아 여행 가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장갑, 스카프, 양말, 판초 등 물건을 싹쓸이하듯 구매를 한다. 소재가 캐시미어이거나 야크면서도 저렴하고 색상이나 디자인도 좋아서 살만하였다.
(어워 주변 독수리 체험장)
옆에 독수리 3마리를 거느리고 남녀 두 명의 조련사가 서있다. 호기심 있는 사람들이 그네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독수리를 팔에 얹고 사진을 찍는다. 신기한 체험을 해본다. 넓은 초원의 창공을 휘저으며 유목민과 한 몸으로 살아온 하늘의 황제... 몽골은 사람도 동물도 모두 하나로 엮인 세계다.
(어워 주변 풍경)
독수리와의 사진 촬영을 끝내고 주변의 너른 초원과 초원을 부드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너무나 이국적인, 너무나 몽골스러운 풍광을 그냥 갈 순 없지 않은가. 한참의 사진 촬영 후 테를지 국립공원 트래킹 코스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