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를지 국립공원 트래킹 : 올레길 2코스
어워에서 테를지 국립공원 트래킹 코스로 가고 있는 중이다. 융단을 덮어 놓은 듯 보드라인 풀을 얹고 있는 초원과 산지는 계속 이어진다.
어느 순간 차창으로 동네가 보이고, 익숙한 장면이 포착된다. 보라색과 연두색 속에 선명하게 'CU'가 보인다. 미소가 번진다. 이런 시골까지 뻗어 있다니 대한민국 대단하다. 힘이 솟는다.
트레킹 코스에 가까이 왔다며 곧 내릴 거라고 한다. 초원 한가운데로 진입하여 버스에서 내린다. 점심으로 나온 제육볶음 도시락을 받아 들고 삼삼오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제육볶음도 부속 반찬도 모두 알차게 포장되어 있는 데다 맛도 좋다.
어제 점심부터 지금 도시락까지 맛난 음식들에 현지 가이드의 음식 선택에 별점 다섯 개를 준다. 맑고 푸른 하늘, 그 아래 넓은 초원에 빨간 버스 세워두고 맛난 오찬을 즐기는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사과와 아이스커피로 디저트까지 깔끔하게 챙겨 먹고 배낭을 정리하고 툴툴 자리 털고 일어선다. 드디어 몽골 초원의 트래킹 시작이다. 들판 가득 피어 있을 야생화 생각에 마냥 즐겁다.
(테를지 국립공원內 올레길 2코스)
오늘 걷게 될 트레킹 코스는 올레 2코스이다. 이번 여행에서 걷게 될 길은 테를지 국립공원 내 조성되어 있는 올레길 코스이다. 올레길은 제주 올레, 제주관광공사가 울란바토르시와 협업하여 만들어 놓은 트래킹 코스로 총 3개의 코스가 있는데, 오늘은 그중 제2코스를 걷게 되는 것이다. 2코스는 칭기스산을 중심에 두고 빙 둘러보는 순환 코스로 총 11km의 거리인데, 비교적 걷기에 수월한 곳으로 시간은 대략 4~5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출발에 앞서 버스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올레길 표식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개별로도 인증숏을 찍는다. 이번 투어 목적이 트래킹에 있는 만큼 드디어 걷게 되는 것에 신나는지 모두 생기 발랄하다. 23명 중에 2명의 50대와 60대 엄마와 함께 온 20대 1명, 현지 가이드인 30대 1명을 빼고는 나머지 19명은 모두 60대이다. 그저 신이 나있다.
드문드문 표시되어 있는 올레길 표식을 지나는 사이 망망대해처럼 넓게 느껴졌던 초원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멀게 느껴지던 왼편의 산은 서서히 다가온다. 말 공연장이란 곳을 지나고 자그마한 개울도 지나니 푸른 숲을 거느린 강이 나온다. 툴강이다. 넓은 초원 끝자락에 느닷없이 나타난 강은 넓은 강폭에 가득 물을 싣고 흐르고 있다. 물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며 너무나 투명하고, 강 너머 숲으론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목가적이다라는 표현은 이런 장면을 위해 있는 것일 게다. 풀밭뿐이라며 툴툴대던 아지매가 강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 취하기에 여념 없다. 조금 더 나아가니 소 떼들도 있고, 그 옆 울타리 너머에는 말 무리도 있다. 강 건너 이쪽 편 초원에도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가만.. 말들이 풀을 먹고 있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자기들의 식사 장면을 두고 풀을 뜯고 있다고 하면 기분 상해하려나...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야라고..
말 무리에서 재미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말들이 풀밭에 코를 박고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 중에 세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서서 지나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 말은 크기가 작다. 아마도 패밀리인 것 같다. 엄마, 아빠, 아기 이렇게. 지나가는 우리를 경계하는 듯하다. 강 건너 자기들을 공격해 올 위험한 존재들인지를 파악하고 있는 듯 미동도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 패밀리를 걸어가면서 우리도 눈을 떼지 않는다.
강력한 패밀리의 힘을 느껴본 순간이다.
툴강을 뒤로하고 앞으로 보니 완만한 언덕배기가 나온다. 이제 초원은 끝나고 산지로 접어든다고 한다. 완만해서 오르기 쉬우니 염려 마라고 한다. 앞의 전경을 보니 그런 것 같다. 마음에 든다. 트래킹은 하되 쉽게 느릿느릿 걷는 게 좋다. 그래야 주변도 둘러볼 몸도, 마음도 여유가 생기니까. 언덕길 입구에 역시 올레길 표식인 말 형상과 이정표가 있다. 사진을 찍는다.
완만한 길 옆으로 목조 주택이 있고 언덕 위로 뽀얀 게르도 보인다. 차창으로 멀리서만 보던 게르를 드디어 가까이서 본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초가집을 보는 기분이다. 너무 푸근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우리 할매라도 나올 거 같다. 등에 지게를 진 할배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둥근 초가지붕을 닮은 둥글둥글한 게르..
사람 생김새도 우리와 많이 닮지 않았던가. 이번 현지 가이드를 처음 보았을 때 한국인인 줄 알았다. 완전 한국인 얼굴이었다. 게다가 말까지 우리말을 우리처럼 하였다. 나중에 현지인이라고 했을 때 놀랐다.
유럽의 고색창연한 동네에 가서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고 동화책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은 들지만 푸근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주택에 쓰인 재료나 주택의 모양이 너무나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여기 게르를 보고서 푸근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유사성의 유무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것 같다.
한참을 올라온 언덕 위에서 뒤돌아 서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길 아래로 툴강이 흐르는 푸른 숲이 보이고, 그 너머에 있는 산줄기까지 보인다.
가이드 말처럼 완만한 지대를 걷고 또 걷는다. 언덕배기 너머로 보이던 산도 지나고,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몇 겹의 완만한 산 아래로 푸른 숲과 툴강이 보이고, 그 너머론 평지와 낮으막한 산이 몇 겹으로 펼쳐져 있다. 역시 어워가 있다. 너무나 낯선 풍경 놓칠 수 없어 사진도 동영상도 분주하게 찍는다.
어떻게 산이 나무가 없을 수 있는지. 융단을 덮어 놓은 듯 매끈할 수 있는지.. 푸른 초지로 덮인 산에 황홀하기까지 하다. 몇 대의 푸르공이 달려온다. 풍뎅이 모양을 하고 앙증맞게 달려온다.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하고 이제 내려간다.
이제 거북 바위를 구경하러 간다. 바위는 정말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크기도 꽤나 크다.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른다. 가게는 기념품뿐만 아니라 캐시미어로 된 의류나 모자, 장갑 등 다양한 소품류도 판매하고 있다. 폭신한 야크 가죽으로 만들어진 앙증맞은 게르 모양의 기념품을 하나 사고, 역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마트에 가서 생수를 구입하였다.
(몽골 전통 의복 : 남, 녀, 아동복)
(몽골 유목민의 전통 음식 : 허르헉)
이후 유목민의 전통 가옥인 게르 체험 및 유목민의 음식인 허르헉을 저녁으로 먹으러 이동하였다.
전통 가옥인 게르는 현재 이용하지는 않고 체험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벽을 따라 두 개의 침대, 화구, 그릇, 옷 등이 너무 단출하다. 수시로 이동하는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얼마나 불안한 삶이었을까.. 마음 깊이 연민이 흐른다. 그러나 연민도 잠시, 좁은 게르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풍채 좋고 솟 커트한 한 여성이 어느샌가 귀퉁이에 가지런히 준비된 전통의상 중 하나를 골라 입고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몽골 중년 남성 포스였다. 옆에 있는 회원님께 여성 옷을 입어보라고 아우성 지르니 얼른 또 챙겨 입는다. 영락없는 몽골 부부의 탄생이다. 몽골 남성이 되어 버린 회원님이 몽골 아내로 분한 회원님께 부부 상황극을 펼친다. 순식간에 게르 안은 개그콘서트 장이 되어 버렸다. 얼른 또 한 명이 아동 복장을 하며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 분한다. 행복한 한가족의 탄생이다. 게르 안은 깔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뜻밖의 순간에서 이런 빛나는 순간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이런 순간이야말로 진정 우리 삶의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아닐까. 온몸 들썩이며 웃어 제끼느라 묵었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현지 가이드가 몽골 치즈와 수테차를 나누어 주는데 맛이 너무 이상했다. 모두 입에 넣다 말고 인상을 찌푸린다. 이런 걸 어떻게 먹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사위 같은 것으로 점괘를 보는 것도 보여준다. 모두가 돌려가며 점괘를 보았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재미로 볼뿐, 그렇게 게르에서의 민속 체험을 하였다.
이어 옆자리에 마련된 게르 안에서 몽골 전통 유목민의 음식인 허르헉을 먹었다. 양고기를 감자, 당근, 양파와 함께 넣어 푹 익힌 음식으로 담백하고 양고기도 부드러워 먹을 만했다.
이제 오늘의 숙소 게르로 간다. 게르에 도착하니 어둡사리가 지고 버스에서 캐리어를 꺼내 분주하게 각자 배치된 게르로 이동한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설렘 반, 급한 마음 반으로 열어 본 게르는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실내가 환하게 들어온다. 최신식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형태만 게르 모양일 뿐, 3개의 침대 및 침구류, 침대 탁자, 테이블, 냉장고, TV, 커피 포트, 양변기, 세면대, 샤워 부스, 타월, 세면도구 등 일반 호텔과 다를 바 없이 잘 갖추어져 있다. 캐리어를 넣어 두고 대략의 짐 정리를 마친 후 얼른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로 나온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빙 둘러본다. 게르, 초원, 산, 숲, 세련된 식당 건물, 병품처럼 든든히 옆으로 뒤로 막아주고 있는 바위산을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온몸으로 행복이 스며든다. 몽골에 몽글몽글 마음 젖어든다.
현지 가이드가 별 보기엔 조명이 밝아 좀 더 어두운 곳으로 가보겠다며 11시경에 밖으로 나오란다. 테라스에서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며 까만 하늘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는 별들을 치어다본다. 총총히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굳이 이동해 가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곧 쏟아질 듯 하늘 가득한 별들을 무수히 보았다. 그러나 그 별은 잠깐의 아름다운 순간에 이어 바로 덮칠 듯 압도하는 기운에 무서운 느낌이 더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이름답다는 별 나들이는 가지 않았다. 대신 게르에서 숙면에 들고 싶었다. 그렇게 게르에서의 첫날밤은 달콤한 잠으로 보내었다. 아주 오랜만에 야외에서 캠핑하는 기분 속에 잠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