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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Oct 18. 2021

엄마와 청소

나 안 갈 거야.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의 뒤를 가만히 잘 쫓아가고 있던 나는 영문을 모른다. 아이에게 화내 보기도 하고 잡아끌기도 하고 집에 가면 사탕을 주겠다고 달래보기도 한다. 결국 화가 난 나는 아이를 바닥에 놓고 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아이는 울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 고집을 물려받은 인지라 울면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느리게 한 발짝 한 발짝 아이에게 멀어져 가면서도 뒤통수에 놓인 아이에게 계속 시선을 보냈다. 아이도 그 시선을 분명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어나질 않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는 심산으로 아이에게 한 마디씩 건넨다.

엄마 쫓아가야지. 엄마 가 버린다.

물론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더 세차게 울었다. 마치 엄마가 날 두고 가요라고 주변에 알리 듯. 결국 누군가 아이에게 다가서 사탕을 손에 쥐어 주었을 때야 화끈거리는 뒤통수를 참지 못 하고 아이에게 돌아섰다.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안아달라 두 팔을 벌렸다. 화가 나 아이를 거칠게 안아 들자 주변에서 느껴지던 따가운 시선이 내게 거둬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윽박지르지 않았다.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아이를 거칠게 잡아끌긴 했지만 결국 들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당간당 좋은 엄마의 선 위에 머물렀다.


엄마와 청소는 더럽게 잘 어울렸다


'모두가 엄마가 처음이다,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을 울리던 간지러운 기분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래도 처음인 엄마에게도 갖춰야 할 필수 덕목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세상 제일 청결함이었다.


엄마의 세간살이는 머금은 시간만큼 낡았지만 늘 깔끔하고 가지런했다. 화장실에선 정기적으로 락스 냄새가 났고 장판은 더러워질 새 없이 반질반질했다.

이불 빨래를 하는 엄마, 가스레인지의 기름때를 수세미로 닦아내는 엄마, 오리걸음으로 장판 위를 걸레질하는 엄마, 이불 빨래를 하는 엄마, 베란다 물청소를 하는 엄마. 청소를 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든 낯설지 않았다.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부터 향긋한 섬유 유연제까지 모든 냄새가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와 더러움은 어울리지 않았다. 엄마와 청소는 더럽게 잘 어울렸다.


분노, 게으름, 더러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대부분의 단정치 못 한 단어들은 엄마와 어울리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나와는 제법 잘 어울리는 수식어들이었다.

나는 웃다가도 분노 스위치가 눌리면 무섭게 화내는 '욱'하는 사람이고, 일이 닥치기 전까지 미루다 재빠르게 해내지만 어딘가 허점을 남기고 마는 대충대충 한 성격이었다. 당연히 게으르고 내 방은 필연적으로 더러운 경우가 많았다.



반면 아이의 방은 무균실처럼 깨끗해야 했다. 매일 저녁 목욕시키고 보송이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야 했고 아이가 기어 다닐 때는 아침저녁으로 두세 번씩 걸레질을 해야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강도는 덜해졌지만 여전히 아이와 관련된 것들은 깨끗하고 책이 쌓인 내 방은 창고와 다름없다. 그래도 합격.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해받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말해야 공감받을 수 있다. 밤마다 잠투정으로 한 시간씩 울어대던 아이를 나는 포기하고 울게 내버려두었다 돌아온 타박은 네가 엄마냐는 것이었다. 엄마 실격.

내 밥 한 끼 챙겨 먹는 것도 번거로웠던 내게 아이의 밥을 세끼 챙기는 건 가장 큰 도전이었다. SNS의 매 번 다른 세 가지 반찬을 올리는 엄마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겨우 한 두 가지 반찬을 준비하던 나는 마음을 비우고 이에 만족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석연치 않았다. 간당간당했다.

늘 동그랗게 말려만 있던 김밥을 싸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내가 만든 김밥은 꽉 뭉쳐지지 않아 쉽게 흐트러졌고 터지거나 밥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한 입에 안 들어갈 정도로 뚱뚱했다.

엄마면서 이것도 못해라고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그 김밥을 아이의 도시락 통에 담을 순 없었다. 결국 남은 재료들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대신 싸줘. 이것도 아직 간당간당한 걸까?


때로 내 노력이 극성과 치마폭이란 극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내 모든 것을 여과 없이 흡수했다. 그것은 몸짓이기도 언어이기도 했다.

아이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단순했다. 사과는 사과이면서 애플이기도 했다. 그 백지가 너무 신기해 가끔 영어로 말을 시키고,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었는데 내게 남편이 너도 결국 어쩔 수 없구나라는 식으로 말했다. 좋은 엄마와 극성인 엄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영어에서 시작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첫 번째 두 번째 어린이날 심지어 크리스마스도 그냥 넘겼다. 아이를 가진 지인이 그래도 어린이날인데,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라며 너무 했다를 말 뒤에 삼키는 것 같았다. 무심한 엄마가 되었다.


매일 누군가 나를 채점했다.

그것은 나였다가 아는 이였다 모르는 이 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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