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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Dec 05. 2021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나도 알아.

내가 겪은 K-방역

알고 있었다. 상대방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그저 권한이 없는 사람이 중간에서 지침과 말을 전하고 전하기에 느려지고 앞 뒤가 맞지 않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행정처리 과정일 뿐이었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내게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K님 재택치료하시나요?"

"네? 이송 기다리고 있는데요."


마치 첫날 전화를 받은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세팅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여태까지 K가 안내받은 내용, 내가 안내받은 내용을 전달했다.


"킴님도 K님이랑 분리되신 후에 PCR 검사 다시 한번 하셔야 수동 감시자가 되세요."

"네? 첫날 전화로 동시 검사로 음성이 나왔으니 수동 감시자로 이미 전환이 되었다고 안내받았는데요? 그러면 내일 다시 가서 받고 와야 하나요?"

"K님이 다른 곳으로 분리가 되시고 방역팀이 와서 집을 소독해야 검사를 하러 가실 수 있습니다."

"그건 또 언제 오는데요?"

"너무 밀려 있어서 확답을 드리기 어려워요."


답답했다.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 당장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이 상황이.

매번 전화가 오는 담당 직원마다 다른 말들이 얹고 빠져 정확한 지침조차 안내되지 않는 이 상황이.

철저하고 치밀한 줄만 알았던 K-방역의 민낯이 여실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아이와 킴님이 가실 수 있는 호스텔이 있나 알아봐 드릴게요."

"아니요, 남편이 다른 데로 가기로 했다니까요. 제가 가면 구급차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아, 그러세요? 아이와 킴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면 그곳에서 자가 격리하셔야 해서 격리 기간 동안 집으로 다시 못 돌아오세요."

"그건 얼마나 걸리나요?"

"그건 저도 확답드리기 어려워요."

"차라리 친정에 가 있어도 될까요?"

"그러면 킴님과 아이가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이동하실 관할 보건소로 또 넘겨야 하고.. 그게 또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방역팀이 와서 소독을 해야 제가 검사를 하러 나가실 수 있다면서요."


남편이 떠나야만 방역 소독이 가능하고, 방역 소독을 해야 내가 검사를 받고 아이와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보건소 직원의 말은 앞 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앞에 놓인 지침을 따라 읽고 있을 뿐일테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구급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해줄 수는 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거라는 보건소 직원의 말투에서 이대로 무언가를 바꾸었다간 결국 그만큼 받아야 할 전화도 많아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거치고 거쳐, 기간이 연장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도돌이표 같은 대화에 은행 업무를 위해 상담했던 AI 로봇을 떠올렸다. 동시에 방 안에서 K 역시 전화를 받고 다시 한번 열심히 상황 설명 중이었다.

다행인지 누군가 K를 이동할 관할지의 보건소로 이관했고 J는 현재 있는 지역의 담당자와 관할 지역의 담당자 둘 모두와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시게요?"


이동할 지역의 담당자가 다시 물었다. 자차가 안된다고 해서 구급차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제야 허가가 났다. 자차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K가 서둘러 짐을 쌌다.

떠나는 K의 등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있는 동안 아이에게 옮길까 눈치 주고 살갑게 건네주지 못했던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누군가의 잘못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이 그저 슬플 뿐이었다.


무사히 도착한 K에게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구급차 지금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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