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나 Dec 04. 2021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기분이다.

자가격리 이틀 째

하루가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보건소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쁜 듯했지만 아직 아이의 음성 문자를 받지 못 한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는 믿기지 않는 듯 어린이집 안 가요라 물으며 재차 확인했다.

남편은 이송을 기다리며 방 안에서 홀로 격리 중이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며 아이를 마중을 받았던 사람이 이제는 보균자,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인 양 격리의 대상이 되었다.

문자 한 통에 어제까지 마주 보며 얘기했던 사람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비닐장갑을 끼고 문 틈으로 식사를 건네 받았다. 화장실로 가는 틈 아이를 보고 싶어 빼꼼히 나온 고개에 얼른 들어가라며 핀잔을 줬다. 병이 무서웠다기보다는 병에 걸려 사회에서 격리되는 피곤함을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를 묶던 하나의 족쇄에서는 풀려났다.


9시가 넘어 아이가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자마자 어린이집에 전화를 했다.

음성이래요, 다행히 폐원 아니에요.

서로 무엇이 죄송하고 무엇이 고마운지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 사과하고 선생님은 계속 감사하다고 했다. 누군가가 아픈 일에 그저 단순히 걱정하고 위로해주지 못하는 이 시국 자체가 촌극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 맺혔다. 이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이제 이것이 어떤 아이와 학부모도 엮이지 않고 나 혼자 오로지 책임져야만 하는 과정임이 이리 안도될 줄이야.

 어제 요란스럽게 뛰었던 심장 박동이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차분해졌다.


가라앉은 기분에 몸이 적응하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창문을 열고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차례로 돌리고, 새 침구로 갈아 끼우고, 아이의 장난감들을 세척하고, 온 집안을 쓸고 닦는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한 대청소였다.

오전 내내 집안일을 하고 틈틈이 끼니를 챙기고 아이를 챙기고. 일은 끝나지 않았다. 빨래를 하면 또 빨래가 있고, 밥 때는 또 다가오고, 아이는 아직 혼자가 싫은 나이였다. 닦고 닦고 닦아도 어디에든 세균이 있고 바이러스가 있을 것 같았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에 앉아 있으면 코로나에 걸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허리가 고통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상이 당연했던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들은 어떻게 이런 하루들을 버티고 살아왔을까. 매번 여기저기 쑤시다고 했던 엄마의 투정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오후까지 연락이 없다 마침내 K에게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첫날 받았던 연락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모두 다 재택치료로 전환이 되었다면서도 생활 지원센터에 입소가 가능하나 엄청난 대기로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K의 자가격리 10일이 끝나는 동안 어린아이의 추가 감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아이의 자가격리 10일이 추가로 이어져 아이가 20일 동안 집 안에만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다면 오늘 오전 확진된 다른 지인과 함께 격리 생활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자차로는 이동 불가능, 구급차로만 이송 가능하여 또 무한정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눈치 없이 아빠가 있는 방문을 계속 열려고 하는 아이를 괜히 꾸짖기만 했다.


그래, 뭐든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

최악의 상황이 되어 아이가 양성이든 내가 양성이 되어 격리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불행은 찾아올 때 노크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