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나 Dec 03. 2021

불행은 찾아올 때 노크하지 않는다.

가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두었더니 코로나가 나타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중국행 원인 불명의 폐렴 발생이라는 기사를 보며 남의 일처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이 시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이 것 또한 지나갈 것이니 버티라고 말해 줄 뿐.

매번 이번엔 끝나겠지, 거의 다 끝났어라고 희망을 갖다가도 사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번엔 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오미크론.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나올 법한 악당의 이름 같았다. 무시무시한 악당은 다시 한번 버티고 있는 우리를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기세였다. 아니, 정말로 우리를 무너뜨렸다.


확진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견딜 비난의 무게였다. 너무 무거워 이대로 가라앉고 싶었다.


불행은 찾아올 때 노크를 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아이와 놀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위해 휴무를 조정했던 K, 기분이 다운된 내 웃음을 다시 찾아주려고 K가 하루종일 노력했던 날, 아이와 쉬지 않고 놀아주고 겨우 잠이 든 그 새벽에 불시에 찾아들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다음 날 오전 10시 전화 한 통이 온 후였다.

코로나가 곧 끝날 것이라 예상하며 자영업자의 길을 선택했던 K도, 이번 거리두기만 버티면 확실히 잡힐 거라고 참아왔던 가게 식구들도, 모두의 버팀이 K의 코로나 양성 소식에 모두 무너지는 듯했다.


여느 아침과 다름 없었던 날, 이 날따라 일찍 출근했던 K에게 전화가 왔다.


재채기 한 번 하지 않는데 양성이라고? 그럼 어린이집엔 뭐라고 해? 가게는?


유난히 자주 깬 잠자리가 뒤숭숭 해서였을까. 오늘따라 유독 아침에 못 일어났던 아이가 전조였던 것일까. 다시 현관 앞에서 아이 옷을 벗기는 동안 스친 수많은 생각들, 그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우습게도 코로나 판정을 받고 든 걱정은 K와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두려웠다. 도미노가 쓰러지 듯 차례차례 미칠 일상의 타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전화를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망설였던 것은 아이의 어린이집이었다. 이제 어린이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얽힌 아이들의 부모들에겐 뭐라고 사죄해야 할까. 

가족이 병에 걸려 미안합니다.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통할 리가 없었다.

내가 가늠한 견딜 눈총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르자 이 세상에서 튕겨져 나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이는 그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 행복해 보였다. 아이의 세상엔 코로나가 침투할 여지가 없는 듯했다. 그게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아이와 둘만 남은 집 안은 유독 조용하게 느껴졌다. 분명 무언가 일어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기다릴 수 없어 아이를 차에 태우고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매서웠다. 코끝이 빨개진 아이 손을 잡고 보건소에 쳐진 대기 라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에요, 2시에 다시 오세요.


꽁꽁 껴 입은 아이의 잰걸음으로 겨우 다시 집에 돌아오니 전화가 왔다.


동일 날 음성 결과를 받은 나는 백신 2차 접종자, 항체 보유자이기 때문에 자가격리가 면제된다는 것.

아이는 백신을 맞을 수 없기에 자가격리 10일을 해야 한다는 것.

오늘 중으로 보건소에서 아이의 PCR 검사를 할 것.

확진자인 K와 분리가 된 후부터 유효한 자가격리 기간이기 때문에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J가 생활센터로 가고 난 후부터 격리 일수가 카운팅이 된다는 것.

K의 입소가 늦어질수록 아이의 자가격리 기간은 무한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아이가 확진이 되지 않고 음성일 경우이다.

관할 지역으로 넘어간 후에 담당 공무원이 다시 전화를 줄 것이라며 전화는 끊겼다.


아이의 음성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것이 아이의 건강 때문인지 아닐 경우 이 이상 넘치게 될 비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우리 어디가?

코에 주사 맞고 얼른 오자. 코에 주사 맞고 오면 간식 줄게.


뒷 좌석에 앉은 아이가 물어올 때마다 아이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알지 못했다. 그저 엄마와 더 오래 있게 된 이 상황이 좋은 듯하면서도 전염된 내 불안이 아이의 얼굴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생각보다 코 속에 깊게 들어간 면봉 탓인지 아이는 검사를 끝내고도 가라앉지 않는 화에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다 끝났어. 괜찮아질 거야. 


찬 바람에 우는 아이의 코 끝이 새빨갛게 얼어갔다. 아이의 음성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것이 아이의 건강 때문인지 아닐 경우 이 이상 넘치게 될 비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피할 수 없는 노동의 시대 필연적 우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