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나 Jan 19. 2023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가성비

이미 생후 1년 전에 비행을 몇 번 경험했지만 아이의 기억 속에선 설탕 녹듯 사라지고, 아이에겐 이번의 비행이 처음이 되었다. 비행기가 무엇인지 얼마나 큰지 하늘을 난다는 게 얼마나 길고 지루한 일인지 아이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 자라면서 이번 여행이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다시 모든 것이 처음이 되버릴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떠나기로 결심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고르고 예산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또 다시 아이의 체력과 취향에 맞춰 일정을 수정하는 일을 하는 동안 하루 틈틈히 설레였다. 과정 중 무조건 설레이는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떠나는 일에도 아이와 함께면 양가 부모님을 안심시킬만한 이야기들을 해야만 했고 무언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가 함께 하는 여행이라 많은 우려와 걱정들이 따라 붙었다.


아이가 나중에 기억이나 할까? 어차피 기억도 못 할텐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가성비에 우려인지 모를 의문을 던졌다.  자신이 다섯 살이나 여섯 살때 가졌던 기억들을 헤짚어 보며 남은 게 별로 없으니 이 여행에 무슨 가성비가 있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억에 남지 않은 유년기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의식의 표면에 표류하지 않는 잊혀진 기억들이 내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주로 단편적인 이미지나 색상 순간의 감정들로 이뤄져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각이 더 많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어딜 가곤 했는데 장소에 대한 디테일은 빠지고 친구와 뭘 하며 놀곤 했는데라지만 상대방의 이름과 얼굴이 사라져 있는 식이었다. 그 중 유년시절을 덮고 있는 깊고 끈적한 무언가는 그저 가장 가까운 사람의 고생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던 불안함과 무력감이었다. 늘 닥칠듯 말듯 일보직전의 불행 속에 사는 것 같았던 그 기분이 유년시절의 기억과 함께 늘 불려왔다. 이 시절의 기억이 지금의 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어른들이 아무리 숨기려도 해도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 상대의 슬픔과 불안까지도.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행이 무엇인지 모를 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신기하게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집을 떠나왔다는 것도 한동안 이 곳에 머물것이란 것도 매일 새로운 일을 할 것이란 것도 여행 중엔 집에서 통용되던 규칙들을 조금 무너뜨린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의 미소는 거짓말을 하지 못 한다. 어른의 기준에서 좋은 것과 예쁜 것 이국적인 것들을 모를지라도 설레임은 내 것과 다를바 없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컸다가 가지 왜 돈 주고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건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채워주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일까 좋아할까 싫어할까 순수한 궁금증과 막상 아이가 선물상자를 풀었을 때처럼 좋아하면 나 또한 정말 선물을 준 기분이 든달까. 뭐든 부모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주려던 선물과 아이가 막상 받은 것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 과감해지고 용감해지는 과정들을 함께 겪었으면 했다. 조금 일정이 틀어지고 계획처럼 되지 않아도 실패가 아닌 새로운 어드벤처의 시작처럼 여길 수 있는 유연함을 당장 이 어린 아이가 갖길 바라는 건 욕심이고 그나마 바라는 건 이 여행이 앞으로 차근차근 쌓아갈 과정의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들조차 아이에겐 당장 필요하지 않고 그저 지금을 즐길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떠나보려고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