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크웰 Nov 03. 2022

일일 출고량 20배 증가, 본격적인 '스케일 업'

(앞에서 이어집니다.)


일단, 주문이 아무리 많이들어오더라도, 재고는 충분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독점 라이센스 수입업의 특성상 미국 삼바존 본사에서 요구하는 매입량은 언제나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물량보다 많았기 때문에, 재고는 항상 매출  규모에 비하여 과하게 많았다.


하지만 폭주하는 전화기는 모두 차단했다. 전화기 코드를 뽑아버렸다. 그리고 신속하게 자사몰 메인화면 중앙에 주문폭주로 인한 전화상담 불가 공지를 올렸다. 한시간 가까이 연신 울려대던 전화벨이 멈추고 나서야 우리는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경험을 했다. 아니, 지금의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자사몰의 주문은 미친듯이 계속 들어왔다. 세상이 함게 미친것 같았다. 온국민이 아사이베리를 사지않으면 안되는 최면에라도 걸린것 같았다.


더욱이 당시 아사이베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었다. 검색을 하더라도, 홈페이지를 보더라도, 아사이베리에 대한 전문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었다. 


특히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것 중 가장 스펙이 좋은 제품이었다. 유기농이었으며, 미국 TOP 브랜드 제품이었다. 당시엔 해외 직구도 없었으니, 완전히 독점적인 구조에서 한국 시장에 폭탄처럼 떨어저 불타오르고 있는 수요를 모조리 받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오후가 되어서도 실시간 검색어는 좀처럼 사그러지지 않았다. 오전과 같이 1위는 아니였지만, 여전히 7번째로 랭크되어 있었다. 주문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몇시간째 계속되자,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이 많은 주문량을 이제 어떻게 출고해야 할 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이제 온라인 자동화의 영역에서 돌아와 사람이 직접 해처나가야할 물리적인 영역에서 고민해야만 했다. 당시 여러가지 고민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번째 당장 사용할 택배 박스가 없었다. 둘째 오늘 이 많은 주문을 출고할 인원도 없었다. 셋째 어쩌면 제품이 부족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러한 걱정은 두려움을 동반했는데, 이미 문의 게시판에는 전화불통에 대한 고객들의 무시무시한 불평과 협박과 같은 무시무시한 경고가 쌓이고 있었다.


결과 적으로 그 날 우리 모두는 밤 12시까지 포장을 했다. 점심 부터 시작한 포장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송장 프린터는 하루 종일 출력을 반복했고, 송장을 쌓아보니 어린이 키만한 탑이 될 정도였다. 택배 박스는 화물트럭 한 가득 주문했다.


용달차를 섭외하여 근처 창고에 있는 제품도 가져와야 했다. 그렇다. 한달분에 해당하는 출고업무량을 하루만에 쌓다보니 모든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쌓여있는 송장을 제품별로 분류하여, 단순 반복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창고 바닥에 일렬로 박스를 나열하여 제품을 집어 넣었다.


평소 테이블에서 차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초월하였으므로, 주로 바닥에 나열하여 보내기 하듯이 포장 작업을 하였다. 비상 상황이라 그런지 팀워크는  국가대표 못지 않았다. 모두들 사태의 심각성이 주는 긴장감에 텐션이 대단했다.


당시 이용하던 로젠택배 기사님께도 이 사실을 알렸다. 크게 놀라셨지만, 다행히 동료 택배기사님 차량도 함께 왔다. 한동안 매일 1톤 택배차량 2~3대 분을 출고했다.


4층에서 1층으로 제품을 내리고, 택배차에 싣는것도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5층 창문을 통해서 1층으로 빠르게 제품을 내릴지도 수없이 고민했다.


7시에 1차 물량을 보내고 나서, 다시 포장 작업을 시작했다. 12시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택배를 마치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주문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네이버에서 실시간검색어는 어제 오후 7쯤 사라졌기 때문에, 주문 폭주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다. 몇 분에 한건식 주문이 들어오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든 업무를 뒤로하고, 포장과 출고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도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없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A4용지 한장 가득한 수준으로 상세한 설명을 작성하여 홈페이지 전면에 게재하였다. 불편을 겪는 고객분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택배포장에만 몰두했다. 아르바이트생도 3명 왔으므로, 우리는 건물 옥상에서 제대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출고량은 적게는 500건 많게는 1000건에 달했는데, 인원 수급, 제품 수급, 부자재 수급 등에 따라 편차가 있었다.


다행히 5층에서 아랫 층까지 확장하면서 더 넓은 면적에 더 많은 택배박스를 깔아놓고, 빠르게 제품을 넣어가며 포장할 수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매우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고, 폭증한 물량을 해소하기 까지 약 10일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더 큰 볼륨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과거의 매출이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가 성장했던 것이다.


우리 이야기 밖에서도 시장은 무럭무럭 자랐다. 어떻게 소싱했는지 귀신 같이 빠르게 유사 제품들이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유기농 아니거나,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였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유지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을 지속했다. 격변의 시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을 강타한 아사이베리, 주문폭주의 생생한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