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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Jul 11. 2024

내 옆에 있어줘요

그 말을 차마 못 해서


며칠 전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뒤늦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엄마는 글쓰기 숙제를 내게 해달란다. 주제는 행복한 순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엄마의 행복한 순간을 모르니 몇 줄이라도 써서 달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쭉 기분이 안 좋았다. 엄마 삶의 행복한 순간에, 삶의 행복한 순간에 우리 서로는 함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 속 뒤집어 놓으려고 태어났냐?" 성질이 난 그녀는 내게 소리쳤다. 나도 눈알이 빠지도록 그녀를 노려봤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해야 속이 후련한 건지, 나한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그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커서 이 집만 나가면 다시는 쳐다보나 봐라. 이런 악한 감정만이 날 가득 채웠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던 그녀를 이해하는 건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되니 모든 게 싫었던 그녀가 조금 이해됐다. 딸아이를 낳고, 난 그녀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추측에 의한 이해일뿐, 그녀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이해는 아니었다. 가끔은 화가 더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른이 되어서, 엄마가 되어서,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질문 앞에 서면 그녀를 두둔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원망하기에 그녀의 삶도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기에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행복한 순간에 내가 없다는 것이 심술이 났다. 짜증이 났다기보다는 심술이 난 것 같다. 뺏을 수도 없고 빼앗길 수도 없는 한순간의 기억인데, 그 속에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는 되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정말 더 슬프고 화가 나는 건, 내 기억 속 행복한 순간에도 그녀는 없다는 것. 그러나 살면서 부딪혔던 가지의 굵직한 사건에 그녀가 있다는 것 더욱 혼란스러웠다. 


행복한 순간에는 없고 불운한 순간에는 있다는 건 뭘까?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엄마가 있어 행복한 순간도 없었고, 기뻤던 기억도 없는 내 머릿속은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걸까? 고민해도 별달리 달라진 건 없었다. 내 머리가 복잡해 엄마와 연락을 안 한 지 며칠이 지났다. 


회사가 끝나고 집에 와 서둘러 아이들의 밥을 챙겼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에는 옆에 있어 주는데, 마음이 심란하니 해야 할 일이 자꾸 생각나고 눈에 띄었다. 궁둥이를 붙이고 밥상 앞에 있을 수 없었다.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데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내 옆에 있어 줘."
"응?"

"엄마 나 밥 먹는 동안 내 옆에 있어 줘."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딸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미소 얼굴로 말한다. 

"엄마가 옆에 있어주니까 너무 좋아." 


"엄마는 외할머니가 늘 바빠서, 바쁠 거로 생각하고 한 번도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네. 할머니한테 왜 엄마 곁에 있어 달라고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외할머니가 엄마를 별로 안 좋아해서 옆에 안 있어 준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할머니한테 한 번도 그렇게 요청해 본 적이 없었어. 싫다고, 밉다고만 했어."


"엄마의 행복한 순간에 내가 없어서 속상해요. 내가 행복했던 순간에 엄마가 없어서 미안해요.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마음은 전하지 못하고 화만 냈어. 엄마도 너처럼 이렇게 원하는 걸 말로 전했다면, 상처도 받지 않고 미움도 쌓이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왜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 말이 안 나올까?"


말하지 않으면 서로 알 수 없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말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런 엄마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고,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그렇게 내가 만들어져 간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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