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란 인사도 못했는데
작은 도시에서 남매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운이 좋게도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문화센터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무국 직원이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이면 강의실을 찾는다. 오늘 결석한 사람은 누구인지, 지난주에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번 주는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궁금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또 프로그램이 기획대로 잘 운영되는지,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는 어떤지 내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린다.
참여한 모든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한번 대화를 나누면 많은 분의 사적인 부분까지 대화하게 된다. 센터에 오는 분들이 40~60대 여성분들이 대부분이라 질문 하나면 술술 이야기 타래가 풀어진다. 맞장구 몇 번이면 우리는 이웃 같은 친근한 사이가 된다. 나는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자녀들은 어떤지, 어떻게 이곳에 와서 이 과목을 배우게 됐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언니 같고, 이모 같고, 동생 같은 마음에 한결 더 가까워진다. 한주라도 결석하면 왜 못 오셨을까 궁금하고 다음 과정이 시작될 때 다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수강생 중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그림을 배우고 싶어 센터에 오신 분이 계셨다. 배우는 게 너무 재밌다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고 하며 프로그램 만족도도 굉장히 높았다. 시작하기 30분 전에 오시고, 끝나는 시간이 너무 빨리 와서 아쉽다고 하시며 집에서도 연습을 엄청나게 하고 오셨다. 너무 재밌는데 그림을 그리니 등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다 누워있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그려왔다며 자랑스레 보여주시고 내가 멋지다고 호들갑을 떨면 수줍게 웃으셨다.
오늘 그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아서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한 달 전에 딸과 사위와 함께 여행 간다면서, 보고 싶어서 인사하러 왔다던 언니 모습이 떠올랐다. 좋은 곳으로 여행 간다고 우리 모두 부러워하고, 새해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새해가 되어 언니를 다시 만났다. 마스크팩 하나를 내밀어 감사하다고 받고 다음에 오시면 뭘 선물드릴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주에 언니가 오지 않았다. 검사를 했는데 어디가 안 좋다고, 병원에 입원하신다고 치료받고 오신다고 하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아 명절 지나고 전화드려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믿기지 않은 소식에 종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너무 재밌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나는 일어나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잖아. 지난주에 집에서 그린 거 보여줄까?"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전시회 때 내가 외근 다녀오는 사이 딸과 다녀갔다면서, 딸을 못 보여줘서 아쉬워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녀의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새로 생긴 취미에 빠져 행복했던 모습밖에 모르지만, 먼 길 가는데 배웅조차 못 했지만, 자꾸만 가슴이 먹먹하고,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앞에 얼룩이 진다. 잘 가라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이별이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