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또라이 보존의 법칙

by AZ


누군가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싶을 때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는 그런 말이 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이 결국엔

사회가 꾸준히 공공의 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그런 거다.

일명 “또라이”라고 불리는 어떤 직원이 퇴사를 하면

기존에 있던 다른 직원이 갑자기 새로운 “또라이”가 되는 것이다.


과연 그 새로운 또라이가 기존에 없던 새로 들어온 직원일까? 아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기존에 있던 또라이에게 묻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또 퇴사하면 기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또라이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회사에는 얼마큼의 또라이가 있을까.

그리고 그 또라이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그 사람들은 정말 또라이일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독특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독특하다는 건

나랑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무리에서 다른 색을 띠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무리에서 다른 색을 띠고 있다는 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위험하다.


가만히 보면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또라이로 낙인찍어두면

반대로 다른 팀원들은 돈독해진다.


어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가끔은 팀 단위로 그런 일이 있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또라이로 낙인찍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자신이 속한 무리의 결속을 가져오니까.


그런데 이게 학교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와 다를까?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대놓고 또라이로 찍지는 않으니까.


보통은 어떤 팀에서 한 사람,

혹은 다른 팀의 누군가,

혹은 그냥 다른 팀 전체,

어떨 때는 다른 회사(거래처 등)의 누군가.


그래서 그 당사자는 모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게 근본적으로

왕따와 비슷한 이유로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은 힘들고, 매일매일이 지치고,

무언가 탓하고 싶지만

정확히 뭐 하나를 딱 집어 탓 하기는 어려운.


그 사람 오늘 봤어? 오늘 또 그러고 있더라.

회사에서 맨날 왜 저러나 몰라.

아니, 일은 왜 그렇게 해? 그 사람 때문에 일이 안 되잖아.

말은 왜 그렇게 하나 몰라.

일을 왜 그렇게 못해? 진짜 싫어.


가끔은 정말 이상해서 이상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라고 그런 사람을 경험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정말 정신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다름을 틀림으로 분류하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면 불편해한다.


그리고 불편함은 가시가 되고,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지 않음에도

내가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는 그 가시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슬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에 공감해 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나는 그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이건 결국 내가 틀리지 않다고 증명받은 것과 같은

그런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들었던 또라이들의 이유도 참 다양하다.


일을 하면서 듀얼모니터로 게임을 하는 직원.

비슷하게 입사했으나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한 동갑내기 상사에게 말투가 기분 나쁘다며 다른 팀원들도 다 들리는 자리에서 대놓고 화를 내던 직원.

회사 메신저나 공식 메일에 전혀 공식적이지 않은 말투를 사용하던 직원.

제일 막내이면서 사람들에게 은근히 반말을 하며 하대하던 직원. 등등등


(그리고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또라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상 알고 보면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들도 많다.

예를 들면, 당연히 회사에서 게임을 대놓고 하는 행동은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그 사람이 게임 번역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게임을 플레이해 볼 필요가 있었다면?

물론,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조금 느리지만 그만큼 실수없이 꼼꼼히 처리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일처리가 빠르지만 디테일이 떨어져서 2차, 3차 추가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멀티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단순작업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다 다르다.

다 각자의 장점이 있고 누구나 단점이 있다.

그래서 ‘팀’ 안에서 각자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 나갈 수 있게 서로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완벽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실은 조금만 알려고 노력해 보면,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조금만 다가가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안 한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은 거니까.

비난하는 게 필요하고 그게 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친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식을 좋아했다.

일이 아닌 사석에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게 되는데, 오해는 결국 불화를 가져온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걸 되받아 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공감이 쉽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공감은 나쁜 공감이 될 수도 있다.


중간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 같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틀리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자신이 옳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나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니 그 덕분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더 완벽하게 보완되기도 하고

다르기 때문에, 아니 다른 덕분에

다양한 분야가 다채롭게 발전하기도 했다가 융합되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닐까.


나와 같은 사람들만 있는 세상은

편하고 좋을 수 있지만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

다름이 없는 세상을 과연 사람들은 바랄까?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분명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공공의 적이 가지는 사회적인 공익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다름을 틀림으로 배척하는 세상보다는

다름을 더 쉽게 인정하는 세상이

더 발전하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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