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아름다웠다.
소나기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었고
겨울이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민국가라는 말이 와닿을 만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었다.
덕분에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던 30, 31살의 잊지 못할 계절이 된 것 같다.
현지사람들도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여름을 경험하지 못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 조금 아쉽달까.
그곳에서 지내면서 사실 휴직이 아닌 퇴직을 하고 온 것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너무 그곳 생활이 잘 맞아서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을 알아보고 이민을 도와준다는 업체도 방문해 가면서 여러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땐 그곳에서 지내게 될 나의 미래가 어느 정도 그려지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다만, 한국행 티켓을 이미 구매해 놨었고
그때 사촌오빠와 친언니의 결혼식도 각각 곧 있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잠시 한국에 들어간 후에
정해진 일들이 끝나면 아예 이민을 목적으로 짐을 싸고 준비해서 다시 캐나다로 들어 올 생각으로 캐나다를 나섰다.
그땐 몰랐다. 코로나가 터질 줄.
한국에 들어와서 얼마 안 있어서 사촌오빠 결혼식을 가는데 중국 쪽에서 어떤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하와이에서 진행되는 바람에
해외 점염병 소식은 우리에게 꽤나 신경 쓰이는 뉴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행기에서 마스크를 쓴 건 우리 가족들 말고는 거의 없었다.
뉴스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았다.
그때 쓴 마스크를 몇 년간 벗지 못할 줄은 몰랐다.
하와이에서 결혼식과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고 언니 결혼식까지 마치는 몇 개월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코로나가 창궐했고 캐나다 이민은 당장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것은 애초에 계획했었던 일이기에
이민 계획을 엎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캐나다에서 그렸던 미래는 희망찼지만
코로나가 터져버린 현실에서 당장 이루기는 어려웠고,
예정대로 나를 찾아준 회사에겐 감사했다.
몇 년 만에 본 대표님은 뭔가 그대로인 듯, 달라 보였다.
그 사이 회사는 승승장구해 사무실은 훨씬 넓어졌고
직원은 3~4배 정도 늘어나 있었다.
나는 과분하게도 하나의 팀을 맡았고 팀장이라는 직급을 받았다.
그래도 새로 늘어난 그 많은 직원 중에
내가 퇴사할 때 입사했던 두 명의 직원이 모두 남아있었고 그나마 나를 알아봐 주고 반겨주어서
조금은 쉽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마치 정글에 혼자 들어가는 느낌이었으니까
익숙한 직원이 남아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어느 회사는 안 그러겠냐만은,
멀리서 보면 잘 성장하는 것 같고 잘 굴러가는 것 같지만
실상 안에서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전쟁 같기도 했다.
내가 그걸 알고도 굳이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간 이유는,
약속이 있기도 했지만, 대표님 때문이기도 했다.
대표님이 너무 잘해주셨고,
또 대표님의 비전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정식으로 재입사하기 전에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표님의 고민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회사나 전쟁 같은 건 매한가지일 테니까.
그렇게 같은 회사인 듯 어색한 사무실에서
2회차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설렘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회사가 큰 것도 있었고, 직원이 많아진 것도 있었지만,
내가 새로 받은 직급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그 회사도 그랬다.
같은 회사였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