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자락에서.

한 발 도약을 위한 쉼

by AZ


영어로 기본적인 업무나 소통은 가능했지만,

전공한 것은 아니라서 크게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부서를 옮기면서

대표님도 다른 직원분들도

용기를 주고 잘할 거라 믿어주셨지만,

내심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직접 번역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기에

그럭저럭 일은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일을 하면서 그전에 겪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느꼈다.


뭔가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에서 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내가 내 작업물에 자신과 확신이 없는 상태는 엄청난 불안감과 압박감을 준다.


나는 그랬다.

그래도 일하면서 잘 적응했고

다행히 처리한 일들에 문제는 없었다.


그 상태로 일 년 정도 되었을까.

나이가 이제 29살이 되었던.

30살이 되기 전 인생을 다시 생각해 봤다.


지금껏 내가 한 일들. 이룬 것들에 대해서.

사실, 이루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했던 것뿐이었으니까.


Are you doing it to prove yourself
or
to improve yourself ?

최근 책에서 본 글귀인데 이때 했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일더미에 파묻혀

발전하고 있다기보다는 버티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살아있는 건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하루 종일 마주하는 건 모니터 속 글자들이었고.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직원들과 인사하는 것 말고는

인간적인 ‘나’의 모습으로 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20대를 보내면서

30대를 이렇게 맞이해서 이대로 지내는 게 맞는 걸까?

이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생각의 정리를 마쳤을 때

대표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휴직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영어 쪽 업무를 계속 담당할 거라면 조금 더 배우고 싶었고, 사실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리프레쉬도 하고, 공부도 할 겸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휴직이다 보니 기간은 길게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절차와 처리 상의 이슈가 있어

휴직이 아닌 일단 퇴사를 한 후 재입사하기로 변경되고 나를 대신할 두 명의 신입직원이 들어왔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와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이었고

두 명은 서로 동갑이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해주면서

꽤나 가까워졌던 것 같다.

금방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울 만큼.


퇴사를 하고 몇 주 가량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던 것 같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게 내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집에만 있으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하루정도는 괜찮지만 그게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나흘이 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달까.


어학연수는 캐나다로 가기로 했는데,

입학 날까지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 그전에 워크캠프라는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유럽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캠프를 가는 날까지도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집에만 있는 것이 보통 곤욕이 아니라

중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일을 하면서 커피를 참 좋아했는데

이왕 하는 거 커피숍에서 일해 보기로 했다.

그때 당시 커피숍 중에서 내가 아는 것 중 가장 흔한 게 스타벅스였고, 어렵지 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스벅에서의 근무 경험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집에만 있기 너무 힘들던 차에 하루 4-5시간 정도 나가서 일하는 시간은 너무 귀중했고 즐거웠다.

일을 마치면 좋아하는 음료를 하나 만들어 퇴근했는데 집에 가는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다.


카페라는 공간의 특성이 가져다주는 새로움도 신선했다.


회사에서는 해야 하는 일도, 만나야 하는 사람도 대부분 화면 속에 있었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동료들끼리도 회사 메신저로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마음만 먹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근무 환경은 매일매일이 내게 흥미로움으로 다가왔다.


매일 오는 일명 단골손님들과의 스몰토크라던지

이태원이라는 지역 특성에서 오는 외국인들과의 재밌는 일화라던지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바와 백룸이라던지.


유럽과 캐나다 일정으로 3-4개월 정도만 일하고 그만둬야 하는 게 많이 아쉬웠을 만큼.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나는 내 적성에 맞는 또 다른 일을 그때 이미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