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사 갑니다

성장하는 회사와 나의 괴리감

by AZ


성산동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5명이 근무하던

정말 작았던 그 회사는

내가 재직하는 동안 총 3번의 이사를 했다.


처음 이사를 했을 때는

5명이 다 같이 이케아에 가서 탁자나 서랍장 같은 것들도 직접 보고 고르며 성장하는 회사를 자축하고 모두 들떠있었다.


큰 도약이었고 대표님 입장에서는 투자이기도 했다.

당산역의 멀리서나마 한강도 보이는

밝고 높은 건물의 4층에 입주했다.


입주 전부터 함께 가서 책상 배치도 함께 생각하고

어떤 게 필요할지, 어떤 색상을 포인트로 할지

정말 사소한 것까지 함께 의논해서 결정했다.


가족 같은 회사가 그런 걸까.

그때 우리는 뭐 때문에 그렇게 돈독했을까.

대표님이 잘됐으면 좋겠고, 회사가 커지니 내가 잘되는 기분이었다.


거래처나 클라이언트가 방문했을 때를 고려해서

책상 배치와 회의실 위치를 결정했고,

쉬는 공간에는 전자동 커피머신과 편한 소파도 두었다.


테라스 한쪽에는 안마의자도 두었는데,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여간 힘든 게 아니므로 안마의자가 정말 효자템이 아닐 수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6명이 되었고,

일부 직원이 들어왔다 나가서 7명이 되었다가 8명이 되었다가 다시 7명이 되기를 몇 번을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퇴사할 무렵 2명이 더 입사하고

내가 퇴사하면서 회사엔 결국 7명이 최종으로 남았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재입사했을 때

회사는 그 사이에 이미 한 번의 이사를 더해서 4층이 아닌 같은 건물의 19층에 있었다.


층만 올라간 게 아니었다.

사무실 사이즈가 이전의 두 배정도로 커졌고

회의실도 늘어났고 직원수는 3~4배 정도로 많아졌다.


당산에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고

가장 시끌벅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가산으로 이사를 했다.

가산으로 이사를 할 때는 각자 자기 책상의 짐만 정리했다.

컴퓨터와 모니터, 책상과 의자에 이름을 잘 붙여놓고

짐을 잘 챙겨 놓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가산의 사무실은 나에게 약간 삭막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당산과 가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를 만나면

’그래도 가산보단 당산이 좋았다‘ 라고 이야기한다.


당산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사람냄새가 났다면,

가산은 밖에선 조용하고 모니터 안에서 시끄러운

약간 미생스러워진 공간이었다.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잘된 일이고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회사를 다닐 때 가장 좋았던 시절을 묻는다면

나는 성산동 시절을 고를 것이다.


작고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어두운 사무실에

화장실은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겨울엔 추웠고

6시가 지나면 관리인이 건물 셔터를 내려버려서

야근하는 우리는 건물 뒤편의 쪽문으로 움직여야 했고

매일 10시, 11시까지 야근수당도 없이 일했었지만,


그렇게 일해도 서로 힘내자며 웃던 그 시절이 좋았다.


자율근무, 재택근무, 야근수당 등등

그런 거 하나도 없던 시절말이다.



마치 그런 느낌이다.

드라마에서 한 커플이 옥탑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함께 노력해서 점차 살림을 키워 나가는.


나중엔 근사한 아파트의 좋은 집으로 이사해 사는 이야기 같은 느낌.


그런데 단칸방에서 살 때는

살 부대끼며 오붓하고 단란하게,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고 웃으며 으쌰으쌰 하며 지냈지만


점차 살림 키워나가느라 서로 얼굴도 자주 못 보고

대화도 잘 안 하고 웃을 일도 거의 없고

가끔 대화하더라도 일 이야기만 하는 부부 이야기.


남들이 보기엔 좋은 집에 사는 성공한 부부 같지만

알맹이가 텅 비어버린 느낌의.


회사를 부부에 비유하는 게 어불성설 같지만,

나는 그 정도의 애정을 담았던 회사였다.


-


그렇게 애정하던 회사가

낯설어지고 멀어지는 느낌이 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회사가 커지면서

사람이 많아지고 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대화를 많이 하기보단

오더 같은 결정과 변화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릇이 작아서 큰 회사에는 맞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대화와 애정 없이 근사한 아파트에 사는 것보단

옥탑의 단칸방에 살더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면

그쪽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근사한 아파트에 가서도

서로 마주하고 대화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내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앞으로 내 일을 하면서 그런 게 가능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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