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

by AZ


먼저 우리 부모님에 대해 조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엄마는

누가 봐도 내향형 인간의 표본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엄마가 큰소리 내는 모습은 기억에 없다.

책을 좋아하는 소녀이며, 여름 가디건을 만들어 주실 정도로 손뜨개질도 잘하셨다. (지금은 눈이 아파서 못하신다)

엄마는 술과 고기를 안 드시며, 빵과 회를 좋아하신다.


아빠는

누가 봐도 외향형 사람으로 목소리가 큰 편에 속하고 손이 거칠고 섬세하지 못하다.

빵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고, 매일 고기를 드실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신다.

음식을 짜게 드시는 편이며, 술을 좋아하시고 모임에서 술을 마시면 모두를 끌고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이렇게나 다른 분들인데, 두 분은 참 조화롭게, 나름대로 잘 살고 계신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다. 자기 주변에 나이 든 부부 중 우리 엄마 아빠가 가장 사이가 좋으신 것 같다고.


아빠는 참 외향적이고 즉흥적이라 어느 날 갑자기 바람 쐬러 간다고 지방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엄마랑 회 먹으러 가야겠다며 인천으로 급 떠나시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온 가족을 데리고 전국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참 많기도 하다.

그땐 흔하지 않은 차박도 많이 했던 것 같고

여름이면 물놀이 가고

가을이면 산에 가서 밤나무를 털어 밤을 땄던 기억이 좋다.


엄마는 그저 그런 아빠를 묵묵히 따라나섰으며,

(사실 아빠에게 따로 불평하셨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 항상 따라나서신다)

본인은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일주일에도 여러 번 고기를 구워주시고 고기반찬을 해주셨다.

(엄마는 먹지 않으니 먹는 사람들은 먹기만 하라며 고기는 항상 엄마가 구우셨다.)


어릴 땐 아빠도 참 옛날사람이고 가부장적이라 고지식하다고만 생각했다.

엄마도 마찬가지라 답답하게 느낀 적도 많다.


그렇지만 이제 나도 나이가 들고 보니

나는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을 잘 모르지 않는가.


어느 날엔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해맑게 웃으며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낯선 느낌이 들었지만

덕분에, 그 사진 속 소녀의 삶을 마치 타인인 양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 사진 속 소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나이를 생각해 본다.

내향적인 그 소녀가 아이들을 키우고 시집살이를 견디며 한 집안의 안사람으로 살아가는 삶도.


하기 싫은 일들도 많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다.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났다.

방을 나와 주방 쪽으로 가는데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주방 안쪽 구석에서 혼자 쭈그려 앉아 울고 계셨다.

대충 계산해 보면 그때의 엄마 나이 40대 초반..

지금 우리 언니 또래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당황했다.

영문을 몰랐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못 본 척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그때 엄마가 뭐 때문에 울고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그때 다가가서 뭐라도 했어야 했을까.

한 번씩 후회가 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다.

외면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분명 보드라웠을 그 손엔 굳은살이 생겨가고

자연스레 가슴속에도 굳은살이 생겨 단단한 아줌마가 된 것 같지만,

여전히 알고 보면 소녀 같은 모습을 간직한 여인이다.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도 본 적이 있다.

친구분들과 나무 아래에서 당당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계셨다.

아빠 또한 낯설도록 젊은 모습이다.

사진 속 그 청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웃고 있었을까.



아빠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으셨다.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하지만 그 옛날, 어렵던 시절 아버지를 잃은 장남.

장남 역시 어렸겠지만 더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더 이상 어리기만 할 수는 없었던,

자연스레 그 집안의 어린 가장이 되었을 소년.


어리고 젊은 나이에 전국을 돌았다던

그 소년의 삶 또한, 지금의 나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엄마는 조용하지만 표현조차 잘하지 않으시고

아빠는 투박하지만 표현조차 거친 느낌이다.



한 번은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던 어떤 분이 엄마를 참 좋아했었다고.

그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왜 아니겠는가.

물어보진 않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젊은 시절을 보냈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겠지.


두 분은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지만,

살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하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지금의 내가 그렇듯,

지금 우리가 그렇듯,

엄마 아빠도, 부모이기 전에 잊지 못할 꽃다운 청춘의 시절들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렇게 다른 시간들을 보낸 두 사람이 어쩌다 만나

나의 부모님이 되어 서로 다름을 맞춰가며 살아온 모든 날들을 포함하여


나는 두 분을 여러모로 존경한다.




엄청 부유하진 않았어도

우리 형제들은 운이 좋게도 두 분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 같다.


그 사랑의 표현 방식이라는 것이 두 분이 참 달라서

한쪽에선 맵고 동시에 다른 쪽에선 달기도 했고,

어떨 땐 딱딱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어릴 땐 동생이랑 참 많이 싸웠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아빠에게 혼이 났다.

심하게 싸운 날은 일명 ‘사랑의 매’를 피할 수 없었다.


그날은 좀 많이 싸웠던 모양인지 엉덩이를 많이 맞은 날이었다.

(보통은 한두 대 중 선택하는데 그날은 조금 더 맞은 것 같다)


맞은 게 억울한 건지 아직도 싸운 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엉덩이가 아파서인지

엉엉 울며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엉덩이가 아파서 똑바로 누워 자지 못하고 엎드려서 자고 있었는데

잠결에 문득 시원한 느낌이 들어 살짝 잠에서 깼다.


엄마였다.

엄마가 속상해하면서 불 꺼진 우리 방에 들어와

불도 켜지 않고 엉덩이에 약을 발라 주고 계셨다.


그때 느낀 감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따뜻함과 안정감이다.


근데, 아픈 엉덩이는 또 그대로 아빠에게 받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우리를 혼내고 나면 또 그대로 속상해했다.

아마 아빠라면 엄마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을 거다.

가보라고.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혼은 내지만 (나쁜 역할은 하지만) 속이 여려서 혼자 속상해하고

직접 챙기는 건 쑥스러우니 남에게 부탁해서 챙기는.



어릴 땐

달고 뭉클하고 부드러운 것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둥근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다정함이 언제나 둥글게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