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지 못한 다정함에 대하여.

by AZ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짐을 내려놓고

반나절만에 보는 고양이와 아주 오랜만에 만난 듯 각별한 인사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조용히 들어오신다.


엄마도 별 말은 없다.

특별히 할 말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밥은 먹었는지, 내일은 몇 시에 나가는지, 그저 그런 질문들이다.

어떨 때는 방에 들어와 아무 말 없이 괜히 방 이리저리 물건들을 치우시기도 한다.

처음엔 엄마가 뭐 할 말이 있으신가 싶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엄마가 뭘 하시는 건지 안다.

그저 내가 궁금한 게 아닐까.

사실은 오늘은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어떤 하루였는지 궁금하신 게 아닐까.

그저 말로 물어보지 않을 뿐, 온몸으로 물어보고 계신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 엄마에게 수다쟁이가 되어 본다.

오늘은 누굴 만났고, 일하면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또 뭘 먹었고, 내일은 이런저런 일이 있다면서.


별 일이 아니지만 가끔은 별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듣는 엄마가 즐거웠으면 하기 때문에.

엄마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일까.


엄마는 내게 조용하고 잔잔한 다정함으로 다가오신다.

내 옆으로 와서 별말 없이

그저, 있는다.


가끔 힘들고 피곤하고 슬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그런 엄마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조용히 다시 나가시곤 했다.

분명 아쉽고 서운하실 텐데, 전혀 말하지 않고 전혀 티 내지 않고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러면 내 방엔 엄마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느낌이다.

그럴 때 나는 엄마에게 참 둥글지 못한 딸인 것 같다.



아빠도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비슷하다.


내가 집에 들어와,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면

“그래, 얼른 쉬어라” 혹은

“밥 먹어라 “ 혹은

아무 대답이 없으실 때도 많다.


그리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셨다.

아빠가 관심이 없는 걸 아는데, 관심을 보이는 행동들 같은 것.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근래에 일이 너무 많고 힘든데,

쉬는 날조차 계속해서 잘 쉬지 못 한 날들의 연속인 적이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오늘만큼은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오랜만에 방에서 TV를 켜고 무언가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내 방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빠가 오셨다.


“혼자 뭐 그렇게 맛있는 거 먹냐?”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내가 주더라도 아빠는 먹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 취향의 음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달라는 것처럼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하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것 같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는 씁쓸하게 나가셨고

마찬가지로 내 방엔 아빠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그 잔상 때문에 마침내 깨달았다.

그게 아빠의 관심이자, 애정 표현이었다는 것을.



의외로, 진짜 용기가 필요한 것.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일기에 온갖 후회의 말들을 적었다.



그동안 바빠서 쉬지 못했던 나는 피곤한 내 몸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온전히 쉬는 것만 생각했다.


집에 거의 붙어있지 못했다는 것을,

부모님과 마주할 시간도 적었다는 것

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는 딸이 오랜만에 집에 있어서 좋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한 거다.

(별로 할 말도 없지만 그저 내 방에 들어오는, 그런 행동들 말이다)


그 날 저녁에

나는 아빠의 둥글지 못한 다정함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아빠 나름대로 다듬고 다듬었던 다정함이었을 수도 있다고.


아빠도 나랑 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내가 쉬는 날이면 아빠가 종종 물어보곤 했다.

“오늘은 뭐 안해?”

“아니 오늘 어디어디 가야돼. 근데 왜?”

라고 되물어보면

“아니~ 어디 놀러가서 맛있는거 사줄라고 했는데 안되겠네”

라고 하셨다.


참 아이러니하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께 사랑해요 라는 말도 종종 하고 잘했었는데,

왜 얼굴 보고 살고 있는 지금은 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더 둥글게 말하지 못했을까’하고

후회한 바로 그 순간에

죄송하다는 말을 왜 전하지 못했을까.


왜 남들에겐 쉬운 사과의 말이 부모님께는 어려운 걸까.


어린 조카가 생각났다.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입을 삐쭉 내밀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려 웅얼웅얼하던 모습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도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는 그런 아이인가 보다.

나는 언제쯤 부모님께 다 큰 자식일 수 있을까.


사랑한다고, 예쁘게 말하지 못해 죄송했다고,

혼자 후회하지만 말고

그때그때 그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

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먼저 드러내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화요일 연재